[PD저널=오학준 SBS PD] 도서관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처럼 책을 사랑하지 못했을 것이다. 좁은 집들로 자주 이사하다 보면 책을 구입하는 게 꽤 사치스러운 일이라는 걸 쉽게 깨달을 수 있으니까. 지금껏 도서관은 한 번도 나를 거부하지 않았다. 언제나 가까이에서 나에게 가진 것을 내주었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릴 때마다, 마음 속 도서관은 넓어졌다.도서관이 나를 조건 없이 환대했기에, 도서관이 홀대 당하는 모습은 고통스럽다. 특히나 책과 도서관을 두고 씨름하는 한 자치단체장의 말들에 어려 있는 완고함은 걱정스럽다. 도서관과 책은 불
[PD저널=오학준 SBS PD] 일어나자마자 화장대 밑으로 발을 밀어 넣고, 발가락을 꼼지락거린다. 엄지발가락 끝에 서늘한 감각이 느껴지면 있는 힘껏 구부려 하얗고 차가운 기계에 고정시킨다. 심호흡을 하고, 당겨낸 물건 위에 올라서면 숫자들이 빛을 내기 시작한다. 늘어나던 숫자가 멈추고 나서야 오늘도 실패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체중’을 인류가 문제로 삼은 건 그렇게 오래된 일이 아니다. 저울의 역사야 인류 문명의 역사와 궤를 같이하지만, 사람이 저울 위에 올라 자신의 체중을 관리의 대상으로 삼은 지는 고작 400년 남짓일 뿐이다.
[PD저널=오학준 SBS PD] 스마트폰이 없는데도 느껴지는 ‘유령 진동’에 한동안 시달렸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중요한 연락을 놓칠까 불안했던 걸까? 주기적으로 허벅지 바깥쪽 근육이 미세하게 떨렸다.허둥지둥 몸을 더듬다 주머니가 비어있다는 사실을 깨닫자 공포가 밀려왔다. 잃어버린 걸까? 못 찾으면 어쩌지?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질 때쯤, 소파 틈새에 꽂힌 스마트폰을 발견한다. 부리나케 달려가 화면을 두드리면, 심심한 알림 창이 나를 비웃는다.중독자의 증상이었다. 밥을 먹을 때에도, 사람들과 이야기를 할 때에도, 영화를 볼 때에도
[PD저널=오학준 SBS PD] 소설가 어슐러 르 귄은 레프 톨스토이의 의 첫 문장 “모든 행복한 가족은 고만고만하게 행복하고, 불행한 가족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가 훌륭하긴 하지만 그 말을 뒤집어야 더 진실되다고 말했다. “불행한 가족이 구조적인 의미에서 다 똑같고, 행복한 가족은 기적적인 예외라면 어쩔 것인가?”아늑해야 할 집이 돌연 지옥이 되고, 나를 지켜줄 보호자가 돌연 가해자가 되는 경험은 비단 창작물 속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영화 의 잭 토렌스는 아들을 죽이는 데 실패하고 미로 속에서
[PD저널=임경호 기자] 영화계에서 불을 지핀 '공정한 보상' 이슈가 방송계로 확산되고 있다.한국영화감독조합(DGK)이 최근 아르헨티나 넷플릭스에서 지급받은 보상금 6500여만 원의 수령자를 찾아나선 게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DGK에 따르면 보상금은 2011년부터 아르헨티나 넷플릭스에서 서비스된 한국 영상 저작물 500여 편의 2021~2022년 수집(방송)분에 대한 것으로 영화, OTT 콘텐츠와 함께 방송사에서 제작한 영상 저작물이 포함됐다.영상저작물로 거둔 수익을 제작사가 독점하지 않고 창작자에게 적절히 배분해야 한다는 '공정
[PD저널=오학준 SBS PD] 취재를 하면서 느낀 건, 인터뷰란 결국 취재원과 PD가 벌이는 게임이란 거다. 한편엔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 줄 이를 찾는 취재원이, 반대편엔 좋은 이야기를 가진 사람을 찾는 PD가 있다.두 사람의 목적은 서로 같았다가도 달라진다. 게임 초반부엔 취재원이 유리하다. 매력적인 이야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PD가 유리해진다. 말할 내용과 말하지 않을 내용을 고를 권한이 있기 때문이다.서로 완전히 신뢰하는 경우는 드물다. 취재원은 PD가 자신에게 불리한 이야기를 할까 의심하고, PD
[PD저널=이봉우 미디어인권연구소 뭉클 객원연구원] 우리 언론의 보도를 통해 한일 정상회담을 보면 남의 나라 일 같은 착각이 든다. 보도량은 많지만 받아쓰기와 중계 보도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대표적으로 정상회담에서 다른 현안들이 거론됐다는 소식을 꼽을 수 있다. 2015년 위안부 합의 복원, 독도 영유권 문제,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후쿠시마산 수산물 수입 규제 철폐, 2018년 초계기 갈등 등 기시다 총리가 일본 측 요구를 윤석열 대통령에게 전달했다는 내용이다.다수의 일본 언론은 물론 기하라 세이지 관방장관까지 보란 듯이 이를 공
[PD저널=박수선 기자] 일본이 정상회담 과정에서 ‘위안부’‧독도 문제를 언급했다는 일본 언론의 보도로 ‘조공 외교’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20일 아침신문에서도 정부의 명확한 해명과 대응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온 가운데 조선‧중앙일보는 언론플레이를 한 일본에 화살을 돌리는 모습이다.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일본의 사과 표명이 없었던 정상회담 이후 ‘위안부’ 합의 이행, 독도 영유권 언급이 나왔다는 일본 언론 보도까지 나와 논란이 거세다. 당초 두 사안은 논의된 바 없다고 했다가 확인할 수 없다는 식으로 말을 바꾸는 정부 당국
[PD저널=박수선 기자]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가 지역·중소방송사 콘텐츠 경쟁력 강화를 위해 올해 48편을 선정해 36억원을 지원한다. 방통위는 지역밀착형(정규·시사보도) 분야, 경쟁력 강화(정규·특집·파일럿) 분야, OTT 등 신유형 콘텐츠 분야에 접수된 기획안 심사를 거쳐 48편을 지역·중소방송 프로그램 제작지원 대상작으로 선정했다고 8일 밝혔다. 지원작 중에선 지역MBC와 지역민방, 해외 방송사들이 공동제작하는 프로그램이 눈에 띈다. KNN을 포함해 9개 지역 민영방송사가 공동제작하는 는 경쟁
[PD저널=오학준 SBS PD] 2004년 12월 시카고의 브룩필드 동물원에선 특별한 사건이 있었다. 30살의 암컷 고릴라인 뱁스가 신장질환으로 고통받다 죽음을 맞이했는데, 직원들은 그의 시신을 바로 거두기 전에 동물원의 전통을 따랐다. 뱁스의 동료 고릴라들을 그의 곁에 모은 것이다.뱁스의 자식인 바나는 그의 손을 잡고 배를 어루만지다, 자신의 머리를 뱁스의 팔에 뉘였다. 미동도 없는 엄마의 몸은 한참이나 쓸었다. 바나를 따라 다른 고릴라들도 그의 곁에 머물렀다. 사육사인 멜린다 프루엣 존스는 이를 고릴라들의 경야(Gorilla’s
[PD저널=오학준 SBS PD] 작년 9월, 오세훈 서울시장은 국무회의에서 ‘외국인 육아도우미 도입’ 정책을 제안했다는 글을 SNS에 올렸다. 낮은 출산율로 인한 한국의 인구 소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비교적 경제적 부담이 덜한 외국인 가사 도우미를 공식적으로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하자는 것이다. 한국인 육아 도우미를 고용하면 월 200만 원 이상의 비용이 들지만, 싱가포르인 가사 도우미는 월 30~70만 원 정도면 고용이 가능하므로, 맞벌이 가정의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게 서울시장의 계산이었다.그 말이 맞는지 틀리는지를 따져보기
[PD저널=오학준 SBS PD] 스물여섯의 엄마는 앞으로 38년간 이어질 간병의 끝이 이런 모습이리라고 생각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지적장애 1급으로 진단받은 딸의 곁을 지키기 위해 간이침대 위에 몸을 누이고, 불면증에 시달리면서도 노트에 빼곡히 간병일지를 적어가며 딸의 상태를 살피던 엄마였다.자유로이 움직일 수 없는 딸에게 자기 삶을 내어준 대가는 예상 밖으로 가혹했다. 암으로 인해 딸의 몸 상태가 급격히 나빠지자 엄마의 마음은 무너졌다. 상황에 내몰려 딸을 죽이고, 자신도 따라 죽으려다 미수에 그쳤다. 검찰은 엄마에게 살인죄로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