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韓流)바람에 실려 말레이시아와 베트남의 드라마PD들에게 한 달간 강의를 하고 왔다. (*행정적으로 기록한다면 말레이에 본부를 둔 ABU 산하기관 AIBD =Asia-Pacific Institute of Broadcasting Development)초청으로 아시아지역 순회강의를 하고 온 것이다.) 그 곳에서 만난 드라마PD들은 한국 방송인과 한국 드라마
영화계에 무서운 '괴물'이 나타났다. 출현 20일만에 대충 국민의 1/4을 삼켜버렸다고 한다. 영화를 이데올로기전파 수단으로 동원하던 레닌 시대에나 있을 법한 사건이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다. 옛 러시아의 그것이 동원이었고 압제였다면 이것은 자발이고 또 다분히 경사스런 일이다. 그러나 천만관객시대에 모두가 기쁜 것은 아니다. 영화감독 김기덕이 그 대표적 인물
방송 현장에서 일어난 일들을 사진과 함께 애기해볼까...하고 웹진을 통해 여러분을 만나게 된 양자영PD입니다. 처음 여러분과 만나면서 마음은 200% 설레는데 얼마나 생생하게 현장을 잘 전달할 수 있을지는 저도 기대됩니다. 다만 저의 소박한 바램은, 촬영 현장에서 찍은 한 장의 사진을 가지고 사진 속의 디테일을 통해 여러분과 함께 공감할 수 있는, 느낄 수
“지상파 방송 광고에 대한 제도적 정비는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라는 인식에서 출발해야 한다. 중간광고는 케이블TV와 위성방송 등에서는 이미 허용되고 있는 제도로서 중간광고의 도입은 지상파 방송사에 대한 특혜가 아니라 광고시장 내에서 지상파 방송사에 대한 비대칭 규제를 해소하는 조치라고 본다.”- 문철수 한신대학교 광고홍보학과 교수 “지상파 방송사의
최근 들어 방송 환경이 급격하게 변하고 있습니다. 케이블, 위성을 비롯한 뉴미디어의 본격화로 지상파 방송의 입지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고, 외주 제작사와 거대 기획사와의 관계도 예전 같지가 않습니다. 거기에다 IPTV, VOD와 같은 새로운 기술의 등장으로 방송과 통신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통신재벌과도 경쟁해야 한다고 하니, 금방이라도 지상파가 망할 것처럼
최근 가열되고 있는 시청률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지상파 방송사들이 파격적인 편성 전략을 택하고 있다. SBS는 10일 첫 방송되는 수목드라마 (연출 이현직, 부성철)를 10, 11일 이틀 동안 하루 두 편씩 총 4편을 연속 방송한다. 연휴 기간에 드라마를 하루에 두 편 연속 방송하는 일은 종종 있었지만, 두 편씩 이틀 연속 방송하는
‘규율이 엄한 일사분란한 군사주의적 국가체제’ 북한에 대한 이미지는 대게 이렇게 정리될 것이다. 북한에 가기 전 내 생각도 마찬가지였다. 과연 그럴까? 2004년 2월 말 평양에서 열린 [일본해의 부당성에 관한 남북토론회]에 참석했다가 남한의 역사학자들과 평양인근의 덕흥리고분을 참관했다. 덕흥리고분은 현재 중국 베이징인근인 유주지역의 지방장관이었던 ‘진’이
5년 전 중국 산뚱성의 칭다오를 찾아 갔을 때 정인화 할아버지 이야기를 처음 들었다. 팔순이 넘은 한국의 기업가인데, 회사수익 중 상당부분을 종업원들의 복지를 위해 써서 현지인들의 칭송이 자자하다는 것이었다. 때마침 “화류 속의 한류”라는 제목으로 중국 속의 한국인들의 활동 모습을 취재하던 나에게는 흥미 있는 아이템이 아닐 수 없었다. 현지 한국인 경제단체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 시대를 알린 ‘2007 남북정상선언’이 발표되던 4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 마련된 남북정상회담 서울 프레스센터를 찾았다. 1300여명에 달하는 내외신 기자들의 2박 3일간의 열띤 취재경쟁을 카메라에 담았다. ▲ '와! 정말 많구나!' 출입기자 등록 수만 어림잡아 1300여명. 자리에 앉아서 기사를 쓰는 기자들만 해도 족히 500여명은
요사이 시간이 참으로 빨리 지나간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생각해보면 갓 입사해 조연출로 설레는 마음을 안고 프로그램에 배치된 지가 바로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세월은 입사17년차를 바라보며 달려가고 있었다. 추웠던 겨울이 가고, 서서히 따사로운 봄의 기운을 느끼는 2월의 오후, 책상 모퉁이에서 문득 나는 어떠한 속도로 달려 왔는가 하는 궁금증이 이는
영화 속 음악은 극중의 분위기를 좌우하며, 때때로 영화자체보다도 관람객의 주목을 끌기도 하는 주요 요소다. 그러나 가끔씩 영화를 보다보면, 충분히 나설 수(?) 있는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조용히 뒤에서 극중 분위기를 이끌어 내고 있는 아주 겸손한 음악의 존재를 발견하곤 한다. 어찌나 겸손한지 영화를 보고 난 뒤, 곧바로 그 음악을 다시 들려줘도 해당영화와 멜
유력신문사의 회장으로 있다가 주미대사가 되어 활동하던 중 모대통령후보에게 친족재벌그룹의 불법선거자금을 전달한 게 도청당해 중도하차했던 이가 다시 그 신문사 회장이 되었다. 그가 그 수치스런 일로 미국 대사자리를 물러나 귀국하던 '05년 말, 인천공항에서는 우리 언론사에 길이 남겨야 할 사건 하나가 일어났다. 어느 정당 소속 사람들이 그이의 귀국 길목을 막아
대통령 선거가 70여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이를 보도하는 언론의 태도에 대한 중요성이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한국언론재단(이사장 정남기)이 지난 5월 전세계의 관심 속에 84.77%의 투표율을 보이며 대선을 치른 프랑스의 대선보도를 살펴보는 토론회를 개최한다. 한국언론재단은 10일 오전 9시30분부터 3시간 동안 서울 프레스센터 외신기자클럽에서 프랑스와 국내
KBS, MBC, SBS 확인없는 앵무새 보도 9월 24일부터 29일 주간 가장 큰 이슈가 되었던 것은 한나라당의 이명박 후보와 부시의 면담관련 소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를 보도한 모든 언론은 그 사실 여부에 대해 확인도 없이 한나라당의 발표에만 의존하여 앵무새처럼 전달하고 있을 뿐이다. 뿐만 아니라 절차상의 문제, 시기적인 부적절성, 대선에 미치
김만식씨 진술은 보도연맹원 처형과정에 직접 참여한 헌병대 초급간부의 첫 증언으로 큰 의미“최초의 보도연맹원 처형은 한국전쟁 발발 사흘 만에 강원도 횡성에서 이뤄졌다.”“처형 명령은 무전을 통해 대통령의 특명으로 받았다” “6월 27일 경 헌병사령부를 통해 대통령 특명으로 분대장급 이상 지휘관은 명령에 불복하는 부대원을 사형시키고 남로당 계열 및 보도연맹 관
돌아보는 방송 80년, 지난 10년의 궤적 올해는 방송 80년을 맞는 해다. 1927년 당시 경성방송국에서 최초의 방송(라디오)을 했던 것에서 기산(起算)한 것이다. 물론 일제 강점기의 방송이라 정체성에 관한 시비가 없지 않지만 미디어사의 측면에서 1920년대에 방송을 시작했던 의미는 상당하다. 학계에서도 ‘근대방송 80년 한국방송 60년’과 같은 식으로
최근 일제강점기에 이완용, 송병준 등 친일파들이 축재한 재산에 대해 국가귀속결정이 내려졌다.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가 내린 결정이다. 이번에 해당되는 재산은 이들 후손이 보유한 토지 총 25만 4906㎡(추정시가 63억원)이다. 예의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은 러일전쟁 이후 1904년에서 1910년까지 한반도 주권을 일본에 내주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