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저널=오학준 SBS PD] 시카고대학에서 공부하는 친구를 방문한 적이 있다. 숙소에서 도심으로 가기 위해 버스를 자주 이용했다. 대학병원 앞 이스트 57번가 정류장에서 4번 버스를 타면 다운타운까지 한 번에 갈 수 있었는데, 며칠간 같은 버스를 타니 흥미로운 풍경이 눈에 띄었다. 출발할 때만 해도 승객 대다수가 아프리카계 미국인이었으나, 도심에 가까워질수록 백인이 점차 늘더니 종점에서 내릴 때면 백인들 틈바구니를 비집고 내려야 했다. 건물의 높이와 반비례하는 버스 안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숫자는, 분리된 도시의 풍경을 함축하고
[PD저널=김지원 EBS PD] 근래 2년간 초등학교 2학년 교실을 장기 관찰했다. 한 번은 지방의 한 도시에서, 한 번은 군 단위 지역에서. 교육 프로그램을 많이 했지만 초등학교 아이들을 보는 것은 오랜만이어서 촬영 전에는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았다. 함께 하는 촬영 감독도 마찬가지여서, “초2면 애기나 다름 없는데 잘하고 말고 할 게 뭐가 있을까. 다들 예쁘고, 착하지 않을까. 공부랄 것이 특별히 뭐가 있을까” 라고 우리끼리 과연 잘 찍을 수 있을지, 긴장 반 설렘 반으로 첫 촬영을 떠났더랬다.요즘의 초등학교 2학년은 국어와 수
[PD저널=오학준 SBS PD] 신혼 가구들을 들이기 위해 오랜만에 방을 정리하니 안 입는 옷들이 꽤 쌓여 있었다. 옷에 별다른 관심이 없어 그리 많은 돈을 쓰지 않았는데도, 시간이 흐르니 처리하기 난감한 양의 옷들이 쌓였다. 나누거나 물려줄 사람도 없어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상태가 괜찮은 옷들만 모아 집 앞에 놓인 의류 수거함에 밀어 넣었다. 이 옷이 필요한 사람이 어딘가, 누군가 있을 거라는 막연한 믿음은 입지 않을 옷들을 쌓아두었단 죄책감을 줄여줬다. 한동안 그 사실을 잊을 정도로.글을 쓰기 위해 친구가 만든 다큐
[PD저널=장세인 기자] 이승준 감독이 연출을 맡은 영화 이 크라우드펀딩 오픈 3시간 만에 목표액의 100%를 달성했다.2019년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임명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을 담은 '성찰적 다큐멘터리'라고 을 소개한 제작사 켈빈클레인프로젝트는 개봉에 앞서 상영관을 확보하기 위해 펀딩을 추진했다. 25일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텀블벅에서 시작한 펀딩은 현재(25일 오후 4시 30분 기준) 까지 1591명이 참가했고, 목표액 5천만원의 173%에 달하는 8천 659만원이 모였다. 전국 10만명 시사회를
[PD저널=오학준 SBS PD] 평소의 정치적 신념에 반하여 선거에 임하는 사람들을 비합리적인 선택이라 비판하기는 쉽다. 정치인들에게는 이권, 유명세, 자리를 찾아갔다고, 정당에는 승리를 위해 가리지 않고 손을 내밀어 덩치 키우는 데만 집중한다고, 유권자들에게는 감정이나 기분에 따라 대표를 뽑는다고 말하면 된다. 선거가 끝난 이후 저잣거리에 남은 말들은 대부분 이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말들 너머에 무엇이 남는가?‘선거의 기쁨과 슬픔’ 이상의 고민이 필요하다. 빈번한 ‘월경(越境)’이 이루어지는 정치의 풍경을 꼼꼼히 훑어보고
[PD저널=오학준 SBS PD] 파시즘은 대중으로 하여금 결코 그들의 권리를 찾게 함으로써가 아니라 그들 자신을 표현하게 함으로써 구원책을 찾고자 한다. 대중은 소유관계의 변화를 요구할 권리가 있지만 파시즘은 소유관계를 그대로 보존한 채 그들에게 표현을 제공하려고 한다. 파시즘이 정치적 삶의 심미화로 치닫게 되는 것은 당연한 역사적 귀결이다. – 발터 벤야민, (1936)독일의 철학자 발터 벤야민은 1936년 발표한 에서 영화와 같은 새로운 형태의 대중예술에 내포된 가능성과 위험성을
[PD저널=오학준 SBS PD] “다른 사람이라면 발표하지 않을 만한 도발적인 글을 써 둔 게 혹시 없나요?” 2012년 11월에 창간한 영국의 잡지사 의 편집자는 인류학자 데이비드 그레이버에게 기고문을 의뢰하면서 이렇게 물었다.정치적 목소리를 활발하게 낸 여파로 재직하던 대학에서 해고당한 후 “학술적 망명” 상태였던 그는 이 청탁에 “어떤 직감”을 바탕으로 한 편의 글을 답으로 써 보냈다. 그 글은 신생 잡지사의 홈페이지를 마비시켰고, 순식간에 수많은 언어들로 번역되어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의 씨앗이
[PD저널=오학준 SBS PD] 相識滿天下 知心能幾人(상식만천하 지심능기인). 얼굴 아는 사람은 세상 가득하지만 속마음을 아는 이는 몇이나 될까.김소영의 를 읽으며 영화 속 영지를 떠올렸다. 한문 학원 교사 영지(김새벽)는 은희(박지후)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먼저 물어보는 유일한 어른이다. 그는 안정적으로 보이던 세계가 조금씩 무너지던 1994년, 마치 아무 일도 없는 듯 무심히 살아가는 어른들을 보며 고통스러워하던 은희를 살게 하는 버팀목이었다. 그가 남긴 작은 말들은, 은희가 부서진 파편에 발을 다치지
[PD저널=오학준 SBS PD] 어깨에 단단히 고정하고, 숨을 고른 후 방아쇠울에 검지를 집어넣고 두 번째 마디를 천천히 구부리면, 육중한 반동이 온 몸으로 퍼져나간다. 귀를 틀어막아도 머리가 울릴 정도로 큰 소음이 가라앉는 데엔 시간이 꽤 필요하다. 사격장에 적막이 감돌 때까지 적어도 열 번은 이 일을 반복해야 한다. 예비군 훈련 사격에 불과하지만, 피가 낭자하는 1인칭 슈팅 게임을 꾸준히 반복하며 게임 패드의 트리거 버튼을 빠르게 누르는 데 익숙해지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게임은 고작 손가락 마디 하나의 근육을 키워줄 뿐이지만
[PD저널=김승혁 기자] MBC , KBS , , KBS 전주 등 7편이 제258회 이달의 PD상 수상작으로 선정됐다.한국PD연합회 이달의 PD상 심사위원회는 28일 출품작 심사를 거쳐 수상작 7편을 결정했다.TV 시사교양 정규부문을 수상한 MBC (연출 김동희, 작가 정이랑)는 지난 8월 13일, 8월 20일 2부에 걸쳐 솟구치는 아파트 집값에 과몰입한 대한민국 실태를 MBC 아카이브를 활용해 ‘다큐멘터리 드
[PD저널=손지인 기자] 방송작가를 비롯한 방송 비정규직 처우 개선을 위해 모인 ‘방송작가친구들’이 '연대를 통해 미디어의 불공정 관행을 타파하겠다'고 밝혔다. 15일 서울 여의도 KBS 신관 앞에서 ‘방송작가친구들’ 대표 제안자들이 주최한 방송작가 및 방송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연대 기자회견이 열렸다.‘방송작가친구들’은 지난 5월 방송작가를 비롯한 방송 비정규직 문제 공론화 및 처우 개선 등을 위해 노동인권저널리즘센터, 노회찬재단, 전국언론노동조합, 전태일재단 등 노동시민사회단체들이 모여 결성한 단체다. ‘방송작가친구들’의
[PD저널=오학준 SBS PD] “일단 뭔가를 밝히면 작가의 사생활이 작품을 완전히 압도해버려. 그리고 나는 내 개인사가 예술을 장악하기를 원치 않아.” 의 저자 캐시 박 홍은 최종 원고를 수정하는 단계에서 친구 에린의 비극적인 가정사를 언급한 대목을 삭제했다. 작가의 목소리 그 자체에 귀를 기울이기보다 작가에게 벌어진 사건들을 통해 그의 목소리를 대강의 ‘이미지’에 녹여 받아들이게 만들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소수자의 정체성을 지닌 이들은 이 ‘이미지’의 위협에 더 취약하다. 구체적인 이야기는 그들이 지닌 정체성에
[PD저널=오학준 SBS PD] 명왕성이 행성 지위를 잃은 지 15년, 나는 여전히 시카고 애들러 천문대에서 산 자석을 냉장고에 붙여두고 있다. ‘Revolve in Peace’라고 쓰여있는 그 자석은 소심한 항의 차원에서 구입했던 것인데, 2006년 1월 뉴호라이즌스호가 태양계의 가장 마지막 행성을 탐사하러 떠난다는 사실에 들떠 있던 나를 얼마 가지 않아 크게 실망시킨 장본인들이 항의 대상이었다. 그 중 한 명이 천문학자 마이크 브라운이다. 그는 명왕성보다 멀리서 태양을 공전하는 천체들을 발견한 사람인 동시에, 명왕성의 행성 지위
[PD저널=박수선 기자] KBS가 UHD방송 활성화를 위해 5G망과 UHD 지상파 채널로 수신이 가능한 다채널 및 모바일(9-2, 9-3) 시범방송을 오는 19일부터 연말까지 선보인다. KBS는 "채널 9-2는 7월 19일부터 올림픽 경기를 방송하고, 이후에는 K-Culture를 대표하는 채널로서, 24시간 방송 중 평일 오후 6시부터 9시까지 3시간 동안 한국의 문화, 여행, 예술을 본격적으로 다룬다"고 설명했다.채널 9-3에서는 독도 영상과 보이는 라디오를 만나볼 수 있다.UHD 다채널 시범방송은 UHD TV와 지상파 UHD 수
[PD저널=오학준 SBS PD] 칼럼을 즐겨 읽는 편이지만, 정작 칼럼을 모은 책을 살 땐 망설인다. 칼럼은 정세에서 떼놓을 수 없어서 시간이 지나면 그 짜릿함이 휘발되기 마련인데, 책으로 묶어 나오려면 꽤 긴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예외가 있다면 칼럼이 다루는 문제가 현재 진행형이고, 그 문제를 대하는 필자의 자세가 낡지 않았을 때다. 새로이 건져낼 온당한 감각들이 있다면 꽂아둘 가치가 있다. 바바라 에런라이크의 도 그렇다.이 책에는 그가 1980년대부터 2010년대에 이르기까지 40년 가까이 다양한 잡
[PD저널=김승혁 기자] 가 성매매 사건 뉴스에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부녀 이미지가 들어간 일러스트를 썼다가 비판이 쇄도하자 실수였다고 사과했다. 의 해명에 조국 전 장관은 법적 대응을 시사하는 등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조국 전 장관은 지난 2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의 온라인 기사 캡쳐 화면과 함께 "제 딸 사진을 그림으로 바꾸어 성매매 기사에 올린 조선일보, 그림 뒷쪽에 있는 백팩을 든 뒷모습의 남자는 나의 뒷모습으로 보이는데, 왜 실
[PD저널=오학준 SBS PD] 흥미로운 기사를 봤다. 라는 제목의 기사였다. 높아진 국격을 체감하려던 찰나 기사는 삭제되었다. 글에 언급된 전문가들이 실은 버추얼 유튜버와 애니메이션 등장인물이었다는 사실이 금세 들통났기 때문이다. 커뮤니티에 돌아다니는 장난스런 게시물을, 사실 확인조차 없이 긁어서 만든 기사의 흔한 운명이었다. 허무맹랑한 내용조차 확인하지 않는 소홀함을 마주하는 일이 하루 이틀 일은 아니다. 그들은 기자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정작 진리에 대해선 무관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