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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속 체벌 장면의 이면
  • 관리자
  • 승인 2007.02.15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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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이른바 ‘체벌카페’라고 불리는 가학·피학 카페를 초등학생이 운영했다는 보도가 충격을 주었다. 이 사실도 충격적이지만 이러한 카페의 이름이 ‘체벌’이라는 점은 방송의 입장에서도 생각해볼 만한 대목이다. ‘체벌’이란 용어의 사용이 단순한 은어 사용을 위해서만은 아닌 듯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들이 가학·피학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보는 동영상의 적지 않은 양이 포르노적 장면이 아닌 그냥 체벌 장면이다. 아이들에게 실제의 체벌이 공포의 대상이라면, 영상물이나 작품 속의 체벌을 포함하여 놀이로서의 체벌이 공포를 동반한 짜릿한 육체적 쾌감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음을 확인하게 하는 것이다. 따지고 보자면, 병원놀이에서 아이들이 즐겨 재현하는 주사 맞는 장면 역시 이와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

교육심리학 전문가도 아닌데, 내가 이 문제를 끄집어내는 것은 수많은 드라마의 체벌 장면들이 이 사건과 오버랩 되어 떠오르기 때문이다. 정작 언론과 어른들은 아이들의 체벌카페에 대해 대경실색하고 있지만, 실제로 여러 매체를 통해 ‘짜릿한 체벌’의 장면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생각해 보라. 우리 텔레비전드라마의 사극에서 왜 그렇게 종아리 맞는 장면이 자주 나와야 하는 것일까? 최근 몇 년 동안의 사극에서, 1회부터 4회까지 종아리 맞는 장면이 한 번도 나오지 않는 작품이 얼마나 있었던가? 그 중 <대장금>과 <황진이>는 아역부터 성인 역까지 두루 종아리를 맞는 작품이었는데, 이외에도 대개 주인공의 어린 시절을 다루는 초반부에서 주인공의 종아리 맞기는 고정된 볼거리로 자리 잡았다. 성인의 경우도, 궁중에서건 민가에서건 본처가 첩의 종아리를 치는 장면, 혹은 부모가 다 큰 자녀의 종아리를 치며 강한 모욕감을 주는 장면 역시 자주 등장한다.

사극이 다루는 전근대시대에 엄격한 교육과 훈련의 과정이 체벌을 수반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어릴 적 도드라지는 개성적인 성격을 부각시키기 위해 회초리의 공포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야마는 주인공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극적 설정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최근 사극의 초반부는 다분히 상투적이라 할 정도이다. 이는 작품 전개상의 필요불가결한 측면보다는, 오히려 초반부에 시청자 휘어잡기의 효과가 더 크다고 보인다. 마치, 드라마 초반부에 긴박한 추격 장면을 배치해 시청자의 눈을 끄는 것처럼, 아이들이 ‘체벌카페’에 들락거리는 것과 같은 욕구를 자극하여 시청자의 눈을 잡아끄는 것이다.

사실 그렇지 않으면 뉴스에서조차 서당 장면은 늘 종아리 맞는 장면으로 만들어내는 것,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널려 있어 오히려 도시 미관을 해치는 김홍도의 그림 <서당> 역시, 설명해내기 힘들다. 체벌카페의 아이들은 바로 이러한 드라마와 뉴스 등의 체벌 장면들만을 편집하여 반복시청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체벌 장면을 모두 제거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런 장면을 만들면서 하게 되는 합리화, 즉 주먹을 날리거나 알몸을 노출하는 것처럼 말초적 자극의 장면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뭔가 전통시대로부터 내려온 품격 있는 교육방법이라는 식의, 우리 의식의 표면에서 이루어지는 합리화만은 제거할 필요가 있다. 솔직히 아이들은 바로 그 자극적인 가학·피학성의 본질을 잘 알고 있다.이 영 미 대중예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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