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그램 리뷰 - ‘뻥튀기, 사람 사이를 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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뻥튀기의 추억은 '방울방울'



영화 <웰컴투 동막골>의 한 장면. 날이 새도록 서로 총부리를 겨누던 국군과 인민군 사이로 ‘팝콘 눈’이 휘날린다. 곡물 창고로 잘못 떨어진 수류탄이 옥수수를 튀겨 팝콘으로 만들어낸 것. 마을 사람들은 환호하고 국군과 인민군은 편안한 잠에 빠진다. 그렇게 첨예한 긴장 상태를 허물고 화해를 안겨준 것은, 다름 아닌 ‘뻥튀기’였던 것이다.

11일 방송된 SBS ‘뻥튀기, 사람 사이를 잇다’(연출 민인식)는 ‘먹을거리’로서의 뻥튀기가 아닌 ‘소통’의 도구로서의 뻥튀기를 소묘로 담아냈다. 아프리카, 시골 장터, 섬마을을 돌아 완성된 한편의 그림에선 추억이 묻어나고 고소한 사람 향기가 풍겼다.

풍경의 시작은, 낯설게도 아프리카였다. 민인식 PD가 뻥튀기를 소재로 삼게 된 것도 “아프리카 아이들이 뻥튀기를 먹는 모습의 사진” 때문이었다. 케냐의 한 직업학교에 뻥튀기 기계가 한국으로부터 배달된다. 한국인 선교사는 케냐 청년에게 방법을 알려주고 손수 뻥튀기를 튀겨내도록 한다. 청년은 몇 번의 실패 끝에 “뻥이오”를 외치며 뻥튀기를 한 주머니 튀겨내는데 성공한다. 주식인 옥수수를 배불리 먹을 수 없었던 사람들은 푸짐한 뻥튀기에 환호하며 모여든다. 케냐뿐만이 아니다. 가나를 시작으로 에티오피아, 남아공 등등… 아프리카 곳곳에서 “뻥이오” 소리와 함께 웃음소리가 힘차게 퍼져 나가고 있다.

아프리카 사람들이 뻥튀기에서 한국인의 친절한 마음을 느꼈다면, 우리에게는 추억이고 향수다. 이미 도시에선 거의 찾아볼 수 없는 뻥튀기 장수. 하지만 시골 장터엔 수십 년의 전통을 이어오는 사람들이 있다. 전남 보성의 한 장터. 이곳엔 ‘뻥골목’이라고 불리는 곳이 있다. 뻥튀기 장수들이 몰려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쉴 새 없이 ‘뻥’ 소리가 터지는 이곳에선 못 튀겨내는 것이 없다. 콩, 은행, 무말랭이, 도라지 등 돈만 빼고는 뭐든지 튀겨낸다.

뻥튀기는 사람 사이의 가교 역할도 한다. 43년째 리어카에 뻥튀기 기계를 싣고 마을들을 찾아다니는 한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뻥튀기에 마을엔 웃음꽃이 피고 마을 소식이 저 멀리 전해지고 이어진다.

소록도에 사는 한센병 환자들은 1년에 두 번 행복해진다. 자원봉사자들이 찾아와서 뻥튀기를 튀겨주는 것. 뻥튀기에 얽힌 추억은 과거와 현재를 잇고, 나이 든 사람과 젊은 사람을 이어준다.

그리고 가족의 사랑을 다시금 확인시켜 주기도 한다. 아내, 두 아들과 함께 뻥튀기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김영삼 씨는 뻥튀기 일을 가업으로 물려받겠다고 한 중학교 3학년짜리 아들에게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미안하다. “뻥튀기 공장밖에 물려주지 못 해서” 미안한 마음에 흘리는 눈물을 두 아들도 모를 리 없다. 그렇게 뻥튀기를 두고 가족 간에 이해와 화해, 사랑이 싹튼다.

뻥튀기, 고소한 이름. 하지만 우리는 뻥튀기에 대해 모르는 것이 너무도 많았다. 뻥튀기 기계가 미국에서 1901년에 처음 개발됐다는 사실도, 그 기계가 지금은 브라질, 일본 등으로 수출되고 있다는 사실도 이제야 알았다. 또 뻥튀기가 “사람 사이의 소통과 온정”을 이어준다는 것도. 병원에서 뻥튀기를 한줌 받아들고 “고향 생각 난다”며 한없이 바라만 보는 할머니의 모습은 그래서 더 눈물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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