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PD들에게 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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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PD들에게 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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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02.26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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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임윤경  교수 (연세대 문화학과) 

 

2005년 기준, 우리나라 가임여성 1명이 낳는 아기의 수 1.08명은 가히 세계적인 기록이다. 지금 이 추세대로라면 2026년, 우리사회는 노인인구가 전체 인구의 20%를 차지하는 초고령 사회로서 상당히 낮은 수준의 생산성을 가질 것이다. 또한 2003년 현재, 생산 가능인구 8.6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하던 것이 2030년에는 2.8명만이 그 일을 담당하게 될 것이다. 2030년이라면 바로 한 세대 후의 일이며, 우리에게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한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러나 한 가지 희망적인 사실은 가임여성 중 결혼한 여성의 출산율은 1.8명으로, 우려할만한 수준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결혼, 임신, 출산, 육아에 이르는 단계들이 매력적으로 다가오기만 한다면 여성들은 소위 말하는 ‘적령기’에 결혼도 하고 아기도 낳을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여성들이 이 과정에 매력을 느낄 것인가. 그건 쉽지 않은 문제이다.


아이는 정부가 기르겠다고 공언하며 정권을 창출한 현 정부는 뭔가 확실한 육아 정책을 가지고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저출산 원인이 산모들의 경제 사정에 있다고 판단했는지, 그들이 내놓은 정책은 불임부부 시술비 지원, 셋째 아기 출산비나 건강보험료 등을 지급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정부의 정책에는 대다수 성인 여성들이 결혼을 기피하거나, 하더라도 서른을 넘기는 이유, 혹은 그녀들이 결혼 후 아기를 적게 낳거나, 낳지 않는 이유 등에 대해 고민한 흔적이 없다.


저출산에 대한 정부의 태도가 이 정도로 세련되지 못하다면, 대중문화계는 어떠한가. 높은 시청율의 최근 드라마들을 보면 문화계의 저출산에 대한 해법 역시도 거칠기는 마찬가지다.


요즘 드라마에는 10대 후반, 20대 초반 여성들의 임신, 결혼, 고된 시집살이가 자주 등장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여자 주인공들의 사회적 성공을 위해 미루어졌거나 기피되었던 이 세 가지가 최근 여성 성장 드라마의 주요 테제가 되고 있는 듯하다. MBC의 ‘굳세어라 금순아’ ‘사랑은 아무도 못 말려’나 KBS의 ‘소문난 칠공주’ 등은 10대 후반, 20대 초반 여성들이 임신, 결혼, 혹은 고된 시집살이를 통해 성장하면서 “그 후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의 주인공이 되는 과정을 그린다.


SBS의 ‘마이러브’는 불의의 사고로 남편을 잃은 30대 여성의 이야기이지만, 4남매를 홀로 기르면서도 그 여성은 여전히 젊고 예쁘다. 조만간 백마 탄 기사가 나타나 그녀 역시도 “그 후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의 주인공이 될 분위기다. 저출산 사회에서는 4남매를 둔 여성이라도 얼마든지 새로운 사랑을 이룰 수 있다고 말하려는 듯하다.


또한 최근 드라마들은 커리어를 추구하는 20대 후반, 30대 초반의 세련된 도시 여성들 (일명 된장녀들)이, 촌스럽지만 젊고 착한 ‘지역’(혹은 이국) 여성들에게 잘생긴 엘리트 남성의 관심을 빼앗기는 과정을 다룬다. MBC의 ‘굳세어라 금순아’ ‘진짜진짜 좋아해’와 KBS의 ‘열아홉 순정’이 그러한데, 이들 드라마에서는 자신의 목소리를 드러내지 않으며, 온갖 시련(주로 엘리트 남성 어머니의 홀대)에도 ‘캔디’처럼 굴하지 않고, 항상 밝은 태도로 엘리트 남성에게 순종하는 어린 여성이 최후의 승자가 된다.


요즘 드라마들은 보고 있노라면 어쩐지 저출산을 고민하는 문화계가 사회에 진출한 미(비)혼 여성들에게 “더 늙기 전에 가정으로 돌아가 아이 많이 낳고 남편 내조나 잘 하라”고 말하는 것 같아 불편하다. 대중문화를 통한 성평등 문화 실현에 기대를 갖고 있던 터라 더욱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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