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장악’이 강 건너 불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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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호(언론개혁시민연대 공동대표)

 

 쿠데타를 주도한 군벌은 권력이 총구에서 나온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박정희도 전두환도 무장병력을 먼저 방송사에 투입하고 마이크부터 잡았다.
권력은 방송에서 나온다고 믿었던 모양이다. 정통성-합법성이 결여된 정권은 집권기간 내내 방송통제를 위해 보이지 않는 손을 놓지 않았다. 사실날조 통한 여론조작을 집권기반을 구축하는 최대의 전략으로 알았던 것이다.


유신시절에도 국민은 알았다. 방송이 정권의 나팔수로 전락하자 고개를 돌려 듣지도 보지도 않았다. 기자실에서조차 방송기자는 푸대접을 받았다. 전두환도 그것을 알았다. 컬러TV를 도입하고 스포츠와 오락으로 도배질했다. 국민의 눈과 귀를 잡되 정치의식을 딴 데로 돌리려고 말이다. 국민은 그것도 알았다. 방송취재차가 곳곳에서 수난을 당하고 KBS시청료거부운동이 일어났으니 말이다.


 6월 항쟁이 일어난 지 20년이 지났다. 역사의 수레바퀴가 거꾸로 돌아가는 느낌이다. 암울했던 시절에 철권을 휘두르던 세력이 다시 만세를 부르는 형국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참여정부라고 말하는 집권세력이 방송장악을 기도하는 속내를 곳곳에서 드러낸다. 정치적 동조자들을 방송계 수뇌부에 포진시켜 반발을 불러일으킨 인사파동이 그것이다. 이어서 방송통신통합법안과 공공기관운영법에서도 그 기도를 멈추지 않는다.


현행 방송법은 1999년 방송민주화 운동의 결과물이다. 미흡하지만 제도적으로는 방송의 정치적 독립성-중립성을 확보하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것은 방송의 가치인 공익성-공공성을 담보하려는 사회적 합의에 따른 것이다. 그런데 노무현 정부는 그것을 깡그리 무시하고 방송장악의 길을 활짝 열어놓는 법안을 내놓았다. 권력누수가 가속화하고 있는 현실에서 그것이 용이하지 않을텐데 말이다. 벌써 정권을 손에 넣은 모습을 하는 한나라당이 겉으로는 반대하나 속으로는 박수 칠 일이다. 


이 법안에 담긴 방송통신위원회를 노 정부는 독임제를 가미한 합의제라고 말한다. 대통령이 사실상 위원 전원을 임명하고 위원장→부위원장→위원으로 서열화하는데 무슨 합의제란 말인가? 사무조직도 위원회가 아닌 위원장이 관장한다.


거기에는 명령과 지시만 있을 뿐이다. 방송-통신내용을 심의하는 방송정보통신위원회도 민간기구라니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대통령이 지명하는 공무원 신분의 위원장-부위원장이 사무처도 관장하는데 독립성이 어떻게 보장되나?


노 정부가 정부투자기관관리기본법과 정부산하기관관리기본법을 통합하여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안을 만들고 그것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제까지와 달리 KBS와 EBS가 기획예산처의 통제하에 놓이게 된 것이다. 두 방송사가 국민의 돈인 수신료와 정부지원으로 운영되니 효율성과 투명성을 확보하는 장치는 필요하다.


하지만 방송장악의 유혹을 느끼는 정치권력이 돈줄을 손에 쥐었으니 그냥 둘 리 없다. 정권에 쓴 소리하거나 경제-사회정책을 비판하면 목을 옥죄이려들 게 뻔하다. 그것은 정치권력의 속성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방송계에서 몰라라한다. 경영진은 그렇다손 치더라도 종사자들도 별다른 기색이 없다. 다만 현업자단체에서 의례적인 성명서가 나왔을 뿐이다. 강 건너 불로 보는 모양이다. 1990년대 방송민주화를 위한 그 투지와 함성은 온데 간데 없고 귓가에만 어렴풋이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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