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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때리기’와 ‘방송 개악’

|contsmark0|최근 일부 신문들과 언론학자들이 벌이는 ‘방송때리기’가 극에 달하고 있다. 바야흐로 방송인으로 살아간다는 사실이 갑자기 곤혹스럽고 불안한 상황이 되고 있다.물론 방송이 동네북처럼 두들겨 맞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또 이같은 질책과 비판이 비단 우리 방송에 국한되는 것만도 아니다. 우리 사회 어느 분야도 사회적 감시와 논의에서 예외가 될 수는 없다. 어쩌면 더 많은 의견과 토론이 요구되는 분야는 그만큼 사회적 역할이 중대함을 반증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방송이라는 막중한 역할을 수행한다는 이유만으로 의도가 불순하다고 의심되는 경우라도 그 모든 폄하와 힐난을 감수해 왔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최근 방송개혁위의 활동을 둘러싸고, 이에 기댄 채 저질러지는 ‘방송때리기’는 가히 목불인견이라 아니할 수 없다. 특히 이같은 ‘방송때리기’가 궁극에 가서는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책임과 무지에 의해 방송이 쉽게 규정되고 조종되는 일은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예를 들어 신문들은 방송개혁위의 출범 초기에는 우리 방송의 공영성을 강화해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더니 그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지금은 ‘1공영 다민영’을 주장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프로그램들이 시청률경쟁 때문에 저질이고 선정적이라고 아우성을 쳐놓고 방송구조는 kbs 2tv와 mbc를 민영화해야 한다고 야단이다.이같은 신문의 행태는 지난 20일자 각 일간지들의 사설에 잘 드러난다. 심지어 조선일보는 ‘누구 위한 방송개혁인가’라는 제하의 사설에서 ‘방송이 시청률 경쟁에서 벗어나 생산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고품위 프로그램으로 탈바꿈하기를 기대했다’고 써놓고 뒤에서는 ‘kbs 2tv나 mbc는 공영으로 묶어둘 이유가 없다’고 이율배반적인 주장을 펴기도 했다.비단 공영과 민영을 둘러싼 논란 뿐 아니라 방송사의 경영상황을 두고도 근거없는 비난이 난무하고 있다. 우선 ‘낭비적’, ‘거품’, ‘공룡화’ 등과 같이 자의적이고 모호한 표현을 동원하여 방송사와 방송인을 매도하고 있는데 실제로 통계와 수치를 외국의 사례 등과 비교한 설득력 있는 기사는 없었다. 제작비와 임금과 인력도 그저 방만하니까 무조건 줄여야 한다고 우긴다. 그러면서도 프로그램은 고품위를 요구한다.방송개혁의 2가지 과제가 있다면 방송의 정치적 독립과 자율성이 그 하나고 다른 하나는 좋은 프로그램 만들기다. 그러나 작금의 논의에서 ‘좋은 프로그램 만들기’라는 시각에서의 접근은 보이지 않는다. 좋은 프로그램은 시간, 사람, 돈의 문제인데 현재로는 소위 ‘거대 방송사’의 해체, 분할에만 관심을 쏟고 있는 것 같다. 우리의 특수한 역사성 속에서 방송사를 질시, 경원할 수는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방송인력을 양성하고 방송 프로그램을 책임지고 제작해온 방송사의 생산성과 기여도는 엄정하게 평가받아야 한다.편성·제작의 분리만 하더라도 방송사의 제작 역량을 하향 평준화시키고 장차 외국의 프로그램 콘텐츠(contents)에 대항할 기반을 상실하게 할 우려가 있다. 실제로 nhk의 겨우 10여년 전 편성·제작의 분리를 시도했으나 프로그램 질이 떨어지고 제작비 상승효과만 일어났다.어떻든 이런 저런 부분에 대한 종합적인 검토없이 몰고가기 식으로 방송개혁을 논의한 결과가 어떨지 지극히 우려된다. ‘방송때리기’의 결과로 정녕 ‘방송개악’을 하고 말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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