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을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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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을 보십시오
  • PD저널
  • 승인 2007.02.28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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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나라나 그 기원과 내력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우리가 자랑하는 조선왕조실록처럼 기록으로 남겼든, 인디언들처럼 구전으로 전해졌든, 그것이 바로 역사다.


동양의 역사관은 때로 역사 기록을 하늘이 관장할 만큼 아주 신성한 일로 여겼다.
춘추오패의 하나인 진목공(秦穆公)의 낭만적인 전설이 그 예이다. 그 전설 속에 소사(簫史)라는 사람이 등장한다. 본래 신선이었던 그가 인간 세상에 내려오게 된 경위는 이렇다. 주나라 말 세상이 어지럽자 사적이 흩어져 사라질까 염려한 옥황상제가 그에게 사적을 정리할 것을 명했다. 그는 주선왕 말년에 사관이 되어 역사를 기록하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 정리했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그를 소사라고 불렀다.


마오쩌둥은 대장정 중에도 294권이나 되는 방대한 분량의 ‘자치통감’을 늘 지니고 다니며 읽었다. 마오를 흉내 낸 덩샤오핑은 결코 읽은 법이 없었지만 하방될 때 자치통감을 이삿짐 속에 꾸려 넣었다.


동양의 통치자들은 어려운 문제가 닥쳤을 때 역사에서 그 해답을 구하곤 했다. 과거의 해법을 빌려오려는 것이 아니라 복잡한 문제는 틀림없이 이미 오래 전에 그 원인이 배태되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 근원을 알아야만 미래를 위한 바람직한 해법을 비로소 구할 수 있는 법이다. 과거는 미래의 거울이라는 말은 그래서 나온 것이다.

역사는 국가 차원의 문제만은 아니다. 어느 사회, 어느 조직이나 다 마찬가지이다.


어제 전국언론노조와 PD연합회 등 방송 직능 단체, 시민단체들이 방송회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조창현 방송위원장의 퇴진을 촉구했다.


중소기업을 위한다는 목적으로 승인되었던 우리홈쇼핑을 대기업인 롯데쇼핑에 내준 것, 경인지역 새 방송에 대한 허가추천을 석연치 않은 이유로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것, 독소조항을 내포한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 공영방송의 독립성을 결정적으로 훼손하는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에 대한 침묵 등 방송 정책기관의 수장으로서 부적격이라는 것이다. 이들을 가장 분노하게 한 것은, 바로 방송의 독립성을 수호하는 기구로서 방송위원회의 위상을 포기한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이들의 의혹 제기와 분노는 타당해 보인다.


애초에 그가 방송위원장에 내정되었을 때 이미, 방송 문외한이라는 점에서 강한 문제 제기가 있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롭게 쏟아져 나오는 뉴미디어들, 수많은 기술 용어들을 모른다는 것이 아니다. 그런 차원이라면 그 분야의 전문가의 도움으로 보완될 수 있다. 


그러나 왜 수많은 방송인들이 구속되고 해고되면서 그토록 오래 싸워왔는가, 통합방송법의 정신인 ‘방송의 공공성, 공정성’이 왜 소중한가, 그것이 법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반영되었는가, 1·2기 방송위는 그것을 구현하기 위해 어떤 논의를 해왔는가, 즉, 방송민주화 운동의 역사와 그것을 관통하는 철학을 알지 못한다면, 왜 방송위원장을 장관급으로 격상시키려 애썼는지를 알지 못한 채 그저 장관으로서만 대우받으려고 한다면 그에게 기대할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존경하는 방송위원장님, 거울을 보십시오. 거기에 수많은 구속자, 해고자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의 얼굴이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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