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진단 - 방송에서의 한자병용 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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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진단 - 방송에서의 한자병용 찬성
  • 승인 1999.02.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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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0|지난 9일 문화관광부의 공문서 및 도로표지판 등에 대한 한자병용정책이 발표된 이후 이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방송 역시 이러한 논쟁에서 예외가 아니다. 방송자막의 한자병용 문제 등 금번 발표된 정책이 방송에 미칠 파장을 두고 방송에서의 한자병용 찬·반 양론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양측의 주장을 살펴봄으로서 향후 바람직한 방송언어사용의 방향을 가늠해보고자 한다. <편집자>
|contsmark1|영상시대와 영상문자의 환상적 만남
|contsmark2|박천서(朴千緖)한국어문회 상임이사
|contsmark3|정부의 공문서 및 도로표지와 간판에 대한 한자병기 조치 발표 이후 이에 대한 국민의 반응을 살펴보면 자학자습(自學自習)을 통해 한자의 독특한 문자성(文字性)을 경험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에 큰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한자의 장점(長點)을 알지 못하는 경우 한자가 국어의 어원이든 아니든 관계없이 한자병기는 단지 불편하고 불필요하게만 느껴질 일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우리나라는 반세기에 걸친 한글전용·한자배척이란 감상적(感傷的) 애국주의에 실험대상이 된 피해자들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tv의 논쟁을 본 후 실시한 전화여론조사의 숨은 허점(虛點)이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현대는 영상시대(映像時代)라고 하는 말이 생각난다. 영상표현이 갖는 의사전달 수단으로서의 폭발적인 위력(威力)과 무한한 산업적 잠재력을 두고 하는 말로 이해된다. 한자의 경우 문자 중에 자의(字意)를 형상(形象)으로 드러내는 문자라는 점에서 영상문자(映像文字)라고 할 수 있다. 방송자막을 예로 들어보자. 한글만으로 자막처리를 할 경우에는 지나가는 자막에서 순간적으로 글자를 읽어야 하는 부담이 있어 사람은 영상에 몰두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중심이 되는 부분을 한자로 표기하면 찬찬히 읽지 않아도 뜻이 충분히 이해되어 시청자는 훨씬 여유있게 영상물을 감상(鑑賞)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정부의 한자병기 조치로 인해 사실상 영상물과 영상문자(映像文字)의 환상적 만남이 가능해졌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자병기 조치에 반대(反對)하는 사람들은 결사항전의 자세로 군중시위를 벌이기도 하고 언론에는 반대필진들을 동원하는 양상이다. 과연 무엇을 위한 한글 ‘전용’이고 누구를 위한 한자병기 ‘배척’인지 어리둥절할 뿐이다.먼저 반대측은 한자병기가 마치 ‘스포츠’를 표기할 때, 괄호를 사용하여 ‘스포츠(sports)’라 하는 것처럼 불필요한 것이라고 비유한다. 그러나 정부의 한자병기 조치는 공문서에 쓰는 한자어 전부를 대상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사기’(士氣, 史記, 沙器, 詐欺), ‘영동’(嶺東, 永同)과 같이 구별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고 한자로 된 신조어(新造語)처럼 한글 표기만으로는 의미를 전혀 알 수 없는 경우도 많으므로 이런 단어에 국한한다는 것이다. 또한 한자병기는 고속(高速)정보처리가 요구되는 이 시대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정보처리는 입력(入力)작업의 속도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정확한 의미전달이란 더 중요한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뜻이 애매모호(曖昧模糊)한 단어의 입력이나 시각성이 열악한 표기로써 정보의 의미전달력을 저해하면 빠른 입력도 효용가치가 없게 된다. 이 얼마나 낭비인가. 한자(漢字)야 말로 마치 ‘아이콘’처럼 표의성(表意性)이 깊고, 시각성(視覺性)이 탁월한 초고속(超高速) 정보문자인 것이다. 초고속 정보시대에 대비하여 전 국민의 한자(漢字)지식 향상을 21세기 전략(戰略)과제로 하는 일본의 예는 참고할만 한 것이다.우리말은 구조적(構造的)인 특성으로 볼 때, 한글과 한자(漢字)라는 두 날개를 펼쳐야만 균형(均衡)을 잡고 훨훨 날 수 있게 되어 있다. 한자병기에 반대하는 한글전용론은 마치 한쪽 날개로 비행기를 날으려는 생각과 다를 것이 없는 것이다.한글전용(專用)을 지속하면 어휘수의 감퇴(減退), 이해력(理解力)의 둔화 등 국어의 원시화(原始化) 현상이 나타나게 되어 오히려 한글의 종말을 자초(自招)할 위험성도 있는 것이다. 네티즌들의 45.5%가 영어의 공용어화(公用語化)에 찬성하게 된 원인도 국어의 한글전용(專用)에 있다고 확신한다. 한글전용(專用)이 목적이 될 수 없고, 정작 중요한 것은 국어생활에 한자의 장점(長點)을 활용해 어떤 까다로운 표현도 정확하게 척척 해내고 어떤 새로운 개념이라도 빨리 소화(消化)해 낼 수 있는 ‘힘있는 국어’, ‘효율적인 영상 국어’로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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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7|방송에서의 한자병용 반대
|contsmark8|방송이 우리 안방에 한자를 끌어들여야 할까?
|contsmark9|성기지(한글학회 책임연구원)
|contsmark10|우리가 상식처럼 여기고 있는 것들 가운데는 그 속내가 사실과 매우 다른 것이 적지 않다. 그 가운데 어떤 것은 언론의 무책임한 인용 보도로 아예 정설처럼 되어 버리기도 하는데, 그로써 빚어진 비틀린 상식은 때때로 한 나라의 문화 발전을 가로막는 커다란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우리말의 70%가 한자말’이라는 오해가 바로 그러한 보기이다.문화관광부가 느닷없이 ‘한자 나란히 쓰기’를 실시하겠다고 발표한 배경에도 이러한 오해는 어김없이 자리하고 있다. 발표 뒤에, 그 파문이 미치지 않는 분야는 거의 없다. 특히, 방송이 받게 되는 영향은 예사로운 것이 아니다. 한자말과 우리말의 자리매김이 올바로 되어 있는지 따져 보는 일은, 방송이 이 문제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보여 주는 한 단서가 될 것이다.우리 국민이 나날살이에서 쓰고 있는 말의 7할 가량이 한자말이라는 이야기가 사실일까? ‘푸른하늘’이라는 말이 있다. 일반인들은 맑고 푸르게 트인 하늘을 가리켜 ‘푸른하늘’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 국어 사전에는 이 말이 없다. 그 대신 이와 뜻이 같은 한자말은 ‘벽천(碧天), 창천(蒼天), 벽공(碧空), 청천(靑天), 청공(靑空), 궁창(穹蒼), 창공(蒼空) …’ 등 무려 11개나 올라 있다. 또한, ‘제비집’이란 말이 있다. 놀랍게도 이 말 역시 우리 국어 사전에는 없다. 그 대신 ‘연소(燕巢), 연와(燕窩)’들과 같은 한자말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겉멋이 들어 지식을 뽐내려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그 누가 푸른하늘을 ‘창궁’이나 ‘벽천’으로 말할 것이며, 제비집을 ‘연소’, ‘연와’ 등으로 말할 것인가? 그럼에도 일본 사전을 베끼다시피한 우리네 국어 사전에는 이런 한자말들이 주인 노릇을 하고 있으며, 그 때문에 ‘푸른하늘’, ‘제비집’ 같은 본디 우리말은 국어 사전에 끼여들 틈조차 얻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국어 사전에 실린 한자말의 절반 가량은 이처럼 일상 생활에서 거의 쓰이지 않는 ‘죽은 말’이다. 거꾸로, 국어 사전에서 거두어 싣지 못한 순 우리말은 지금까지 조사된 것만 해도 수천 낱말에 이른다. 이러한 현실 인식이 없이, 만일 방송에서조차 ‘한자 나란히 쓰기’를 실시한다면 문제는 매우 심각해진다. 한자를 나란히 쓰다 보면, 한자말의 사용 빈도가 차츰 잦아지게 될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하다. 또한, 웬만한 ‘말만들기’는 모두 한자로 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이제 겨우 새순을 틔우고 있는 우리말의 생명력을 짓밟는 짓이다. ‘새내기, 먹거리, 갓길, 동아리, 도우미, 모람(모인 사람=회원) …’들처럼 요즘 새로 태어난 우리말들을 살펴보면, 우리말의 조어력이 한자의 그것에 못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한자 나란히 쓰기’는 이러한 노력조차 무의미하게 만들어 버린다. 앞으로 10여 년 뒤에는 다시, ‘우리 국어 사전에 실린 낱말의 90%는 한자말이 되었으므로 한자 섞어쓰기(혼용)를 해야 한다’고 할 것인가?지금까지 나날살이에 받아들여져 쓰이고 있는 한자말은 거의 모두 한글로만 써도 뜻이 통한다. 한글로만 펴내지는 대학 신문, 소설, 교양 도서 등이 아무런 문제 없이 읽히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방송이 새삼스럽게 옛 시대의 낡은 문자를 끌어안을 까닭은 어디에도 없다. 소리와 그림을 전파로 바꾸어 시청자의 안방에까지 보내 주는 것이 방송이니, ‘언어’와 ‘영상’은 방송의 모든 것이라 할 만큼 중요하다. 우리말을 끊임없이 다루고 있는 방송은 가장 영향력 있는 국어 교사이다. 겨레말을 꼼꼼하게 되살려 내고 잘 가꾸어 나가는 방송은 ‘겨레의 방송’이 되겠지만, 그러한 노력을 유치하게 여기고 ‘지식을 뽐내는 사람들’ 편에 서서 한자말을 양산해 낸다면, 그 방송은 곧 ‘겨레말의 도적’이 될 것이다. 그리고 말이란 귀로 듣는 것이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다. 텔레비전 화면에서 ‘한자 나란히 쓰기’가 유행처럼 퍼져 나가기 시작한다면, 그때부터 라디오 방송은 천덕꾸러기로 떨어져버릴지도 모르겠다. 곧 이어 우리 사회에는 한자를 익히지 못한 새로운 천민 계층이 생겨날 것이다.|contsmark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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