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실 유감(有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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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실 유감(有感)
  • PD저널
  • 승인 2007.02.28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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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중 EBS PD (교양문화팀)

 

“팬티만 빼고 다 갈아 입으세요.”
내복을 입어도 될지 벗어야 할지 잠깐 망설이는 모습을 간파했다는 듯 의사는 무뚝뚝하게 말했다.


“수술방 처음이세요?”
수술실을 그들은 수술방이라고 부르나보다. ‘아니오’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솔직히 수술실에 들어와 본 것은 정말 난생 처음이었다. 의사는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말을 이었다.


“우리는 무지 덥지만 PD님은 추울 수도 있어요. 에어컨을 세게 틀어놓거든요. 재미있을 거예요.”
재미있을 거라니… 수술실 밖에는 환자의 가족들이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내쉬고 있는데……


환자는 올해 스무살, 여대생이었다. 척추가 S자로 휘어진 척추측만증 환자였다. 사춘기 때 발병했지만 그동안 여러 가지 이유로 이제껏 미뤄왔다고 했다. 이날 수술은 휘어진 척추뼈에 나사못을 박고 나사못들을 강철 막대기에 고정시킨 뒤 막대기를 옆으로 돌려 휘어진 척추를 바로 세우는 고난도 수술이었다.

수술실에 들어선 순간부터 4시간 여 동안 펼쳐진 충격적인 경험들은 나흘이 지난 오늘까지도 생생하다. 영상과 음향, 그리고 수술과정에서 발생하는 묘한 냄새들까지 나의 오감을 공격해왔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이른 아침 시작된 수술은 점심 무렵에야 마무리됐다. 환자의 수술부위를 다시 덮으며 의사들은 사색이 돼 서있는 나에게 다시 말을 걸어왔다.
“점심 드실거죠? 길 건너에 있는 전주식당이 맛있어요.”
“에이, 거기보다는 그 옆에 중국집이 훨씬 낫지.”
“어쨌든 구내식당은 절대 가지 마세요.”


마스크 너머로 보이는 그들의 얼굴은 분명 웃고 있었다. 수술이 잘 됐다는 말이겠지. 대답을 하는 둥 마는 둥 나는 일단 이 공간을 벗어나야 한다는 일념 밖에 없었다. 수술실에서 나오자 환자가족들이 이른 아침 그 자리, 그 모습 그대로 서있었다. 환자의 어머니는 울먹이며 내 손을 부여잡았다.


“의사 선생님이 그러시는데 수술은 잘 됐다고 하네요.”
그 말 말고는 아무 말도 생각나지 않았다. 나는 서둘러 밖으로 나왔다. 바깥공기를 쐬고 싶었다. 메디컬 다큐멘터리를 표방하는 개편 프로그램 첫 촬영은 그렇게 지나갔다. 인간에게 최초인 동시에 최후의 공간인 병원, 그 일선에 서있는 의사, 그리고 환자들… 그 숙명적인 긴장감과 절박함은 방송의 영원한 소재임을 요즘 다양한 메디컬 프로그램들은 역설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또 한편의 메디컬 프로그램을 내놓으려 하고 있다.


처음 가본 수술실의 복잡한 구조에 압도당한 첫날 느낌은 좀체 지워지지 않는다. 어설프게 수술복을 걸치고 그들의 세계를 엿보고, 또 수술실 앞 복도에서 환자가족들의 절박함을 함께 나누어야 하며, 뭐니 뭐니해도 건강이 최고라는 내 주변 사람들에게 나는 과연 어떤 프로그램을 보여줄 수 있을까. 그리고 그 프로그램이 병원이라는 또 하나의 삶의 공간을 진실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수술을 앞둔 환자처럼 걱정이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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