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죽은 사람은 돌아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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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9일, 그날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

1975년 4월 8일. 대법원이 ‘인민혁멱당 재건위원회 사건’으로 기소된 8명에 대해 사형 판결을 확정한 날. 18시간 후인 4월 9일, 8명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고 사형 집행을 저지하려던 문정현(68) 신부는 무릎을 다쳐 5급 장애 진단을 받았다.


그로부터 32년. 27일 오전 대추리에서 만난 문정현 신부는 재심 무죄 판결에 대한 기쁨보다는 단 한 번도 잊은 적 없던 그날의 기억으로 참담한 심정을 토로했다.


“사형 집행이 있은 그날, 고속버스터미널에 서 있는데 세상은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가더라. 지금도 밖은 아무렇지 않다. 원통하고 암담하다. 기쁘면서도 기쁘지 않다. 환호할 일이지만, 여전히 죽은 사람은 돌아오지 않는다.”


문 신부가 인혁당사건진상규명 및 명예회복을위한대책위원회 상임대표를 맡은 지 7년. ‘인혁당 사건이 고문 등에 의해 조작됐다’는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 결과는 재심 청구의 근거가 됐지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문 신부는 “재심 청구는 위험한 것이었다”고 털어놓는다. 법원에서 기각해 버리면 영영 끝나버리기 때문이다. 다 잃을 수도 있는, ‘도박’이었다. 하지만 하늘이 도왔을까. 마침 3만여 쪽에 달하는 군사법정 기록이 국방부에 남아 있었다. 이를 계기로 재심 청구에 박차를 가했다.


“판결이 어떻게 날지 반신반의했다. 사법부, 정치권, 언론 등이 모두 관계된 ‘진실의 사면초가’ 상태가 아니었나. 그런데 세상이 바뀌었는지 무죄 판결이 내려졌다.”


문 신부는 그동안 진실이 감춰진 것으로부터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고 말한다.
“사법부, 침묵했던 언론… 어떻게 얼굴을 내놓을 수가 있나. 인혁당과 관계된 사람들은 좌경, 빨갱이로 몰았다. 대중들도 누가 자유로운가. 박근혜도 야인이 아닌 최고 통치자 꿈을 꾸는 사람으로서 판결에 대해 입장을 표명하고 통회, 반성해야 한다.”


32년을 한결같이 추모 행사를 열고, 진실을 알리기 위해 헌신해온 그도 자유롭지만은 않았다. “왜 ‘죽도록’ 매달리지 않고 32년 동안이나 내버려뒀나 하는 후회로 괴롭다”고 그는 고백한다.


32년 만에 드러난 진실, 뒤집어진 판결. 문 신부는 이번 무죄 판결은 3.1운동, 6월항쟁 등과 맥을 이루는 역사라고 평했다.
“세상이 뒤집어질 일이다. 30여 년 동안 암흑에 있던 진실이 드러났다. 구렁이 담 넘어가듯 지나갈 일이 아니다. 공동으로 참회하고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다시 태어나야만 한다.”


하지만 무죄 판결로 잠시 떠들썩했던 언론은 다시 조용해졌다. 죽은 이들은 돌아올 수 없는데, 가해자는 실체를 드러내지 않는다. 법원은 무죄 판결로 ‘사법살인’의 오욕을 덮으려 한다.


“진실을 바탕으로 한 정의로운 판단, 이것이 정통성이다. 그것이 흐지부지 되니까 범죄자가 득시글대고, 전두환이 호의호식하는 것이다. 역사의 정통성을 확보하고 그것을 기준으로 판단해 잘못을 바로잡아야 한다. 아무리 아파도 그건 해야 한다.”


진실 규명이 필요한 과거사는 인혁당 사건만이 아니다. 조용수 민족일보 사장 사건 등 과거 사법부의 판결 오류가 드러난 사건들도 재심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32년 전 일이 지금 재현되고 있다. 대추리, 한미불평등조약… 진실이 가려진채 모두 외면당하고 있다. 32년 전 일이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는데 왜 외면하고 있나.”


문 신부는 인혁당 사건 당시 유족들이 신문에 한 줄이라도 내기 위해 발버둥을 쳤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며 언론을 책망했다. 대추리 사태를 두고 ‘폭력 시위’라고 몰아붙이는 언론을 보면서, ‘왜’인지는 묻지도 말하지도 않는 언론을 보면서 그는 체념했다. 32년 전, 진실을 덮었던 역사가 되풀이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제 대책위원회는 긴급조치의 위헌 여부를 심판하는 재판을 준비 중이다. 만일 위헌 판결이 나온다면 긴급조치 하에서 발생한 동아투위 등 민주화운동과 의문사들에 대한 국가적 보상과 재심 청구가 이어져 파장이 클 것으로 보인다.


향후 계획을 물으니 “이제는 언론이 해야 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기력이 없어졌다. 젖 먹던 힘까지 다 썼다. 남은 것은 언론이 해야 한다. 결국 진실은 언론을 통해 드러나는 것 아니겠나. 문제는 인혁당 사건처럼 30여년 뒤에 드러나면 곤란하다. 진실을 밝히는 시간을 줄여야 한다.” 

 

문정현 신부는?

1966년 사제 서품을 받은 가톨릭 사제.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일원이다.
불평등한SOFA개정국민행동 등의 상임대표를 맡고 있다. 1970년대의 반독재 투쟁에서부터 80년대의 노동운동과 농민운동, 90년대의 통일운동, SOFA 재개정 투쟁에 이르기까지 사회의 억압과 모순을 개선하기 위해 활동해왔다. 현재 대추리에 거주하며 미군기지 확장반대 및 대추리 수호 운동을 하고 있다. 또 전북 익산시 월성동에 ‘작은 자매의 집’이라는 정신지체아 보호시설을 열어 운영하고 있다.

 

김고은 기자 nowar@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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