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PD의 영화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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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PD의 영화이야기
사람이 삶을 파괴하는 일본식 방법
‘ 하나비’에 이어 ‘실락원’, ‘감각의 제국’을 연거푸 보고…
홍동식 - MBC 라디오국
  • 승인 1999.02.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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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0|“일본 극영화는 일본 만화영화 발뒤꿈치도 못 따라간다.”일본영화라고는 한 칼에 손목, 발목을 뎅겅 뎅겅 날리는 해적판 사무라이 비디오만 줄창 보던 시절, 일본영화에 대한 느낌이 이랬습니다. 하지만 전설적인 고전과 입소문 자자한 알짜를 접하자마자, 그것이 얼마나 섣부르고 우매한 판단이었는지 금방 깨닫게 되더군요.아버지와 자식간의 에피소드를 다룬 오스 야스지로의 ‘부초’, 중년사나이가 춤을 통해 인생을 곱씹는 수오 마사유키의 ‘shall we dance?’, ‘접속’이나 ‘편지’를 단번에 박살내버릴 만한 이와이 순지의 ‘러브 레터’, 유부남과 유부녀의 불륜을 그린 모리타 요시미츠의 ‘실락원’, 벌레같은 본능으로 살아가는 창녀출신의 포주이야기인 이마무라 쇼헤이의 ‘일본곤충기’, 인간의 뒤틀린 성충동을 그린 오시마 나기사의 ‘감각의 제국’, 목숨 걸고 우동 맛의 비법을 탐구하는 이따미 주조의 ‘담뽀뽀’, s.m(사디즘 & 매조키즘) 무비란 어떤 것임을 확실히 보여주는 무라카미 류의 ‘동경 데카당스’, 일본과 서구의 양식을 천재적으로 버무려서 일본미의 극치를 보여준 감독 구로자와 아끼라의 ‘7인의 사무라이’, ‘8월의 광시곡’, ‘꿈’, ‘라쇼몽’ 등등.어떤 영화는 작품성으로 어떤 영화는 화제성으로 이미 세상이 다 아는 영화가 되어 버렸지만 이런 영화들을 보면서 새삼 놀라웠던 것은 가족이면 가족, 전쟁이면 전쟁, 섹스면 섹스를 정말 무서울 정도로 집요하게 파고든다는 점과 순수와 천착, 용서와 복수, 정상과 광기 등 양극단의 표현양식을 거뜬히 소화시킨다는 점입니다. 그래서일까요? 단지 영화일 뿐이라고 스스로 설득하면서도, 영화 속의 일본식 사고나 정서를 인정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해서 보고 나서도 홀가분한 느낌이 들지 않고, 뭔가 꺼림직한 느낌이 들 수밖에요. 시골 노인류의 반일감정이 있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아마 문화적, 인종적 유사성 때문에 자신이 발가 벗겨진 것 같은 느낌 - 다시 말해 잔인하고, 파괴적이고, 도착적인 이웃을 보고 나 자신에게도 그와 비슷한 욕망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의 자기혐오같은 것이겠지요. 아무래도 금발이 나부끼고, 인디언이 나뒹굴고, 독일군이 탱크에 깔려야만 영화 한편을 제대로 본 것 같은 유년기의 헐리웃 추종적 영화관(觀)이 우리 몸 깊이 배어 있으니까요.가장 최근에 본 일본 영화는 ‘하나비’입니다. 본 뒤에 역시 뭔가 꺼림직한 느낌이 들긴 했지만, 아주 잘 만든 자기파괴 영화였습니다. 그리고 그 꺼림직한 느낌을 재삼 확인하자는 의미에서 죽음으로 끝맺음을 하는 자기파괴적 일본영화 두 편을 다시 꺼냈습니다. ‘실락원’과 ‘감각의 제국’.기타노 다케시의 ‘하나비’는 총으로 자살하는 영화입니다. 총에 맞아 죽거나 불구가 된 동료, 후배 형사 때문에 괴로워하고, 채무관계로 야쿠자에게 시달리던 니시 형사가 은행을 텁니다. 그런 다음 백혈병에 걸린 아내와 함께 바다로 마지막 여행을 떠납니다. 그리고 거기까지 추적해온 야쿠자를 해치운 후, 아내와 동반자살을 합니다. 가장 행복하다고 느낄 때 스스로 목숨을 끊은거지요. 모리타 요시미츠의 ‘실락원’은 약으로 자살하는 영화입니다. 출판사에 근무하는 50대 유부남 구카는 30대 유부녀 린꼬와 미친 사랑을 합니다. 하지만 불륜은 오래가지 못하고, 마침내 직장에서, 집에서 버림받은 두사람은 마지막 여행지에서 성관계 도중 극약을 먹고 목숨을 끊은 것입니다. 오시마 나기사의 ‘감각의 제국’은 끈으로 목을 졸라 죽이는, 타살을 유도한 자살영화입니다. 불륜관계인 여급 사다와 유부남 기츠조는 더한 쾌락을 얻고자 기괴한 행태의 섹스에 빠져듭니다. 그러나 관계도중에 사다는 기츠조의 목을 졸라 살해하고 그의 성기를 잘라 미친 웃음을 흘립니다. 상대의 육체와 정신을 완전히 소유했다는 행복에 젖은 것이지요.이렇듯 방법이 썩 유쾌하지는 않습니다만, 세 편의 영화는 사람이 삶을 파괴하는 일본식 방법을 각자 나름대로 보여줍니다. 그들에게 있어 죽음은 행복의 스톱모션입니다. 그래서 행복과 죽음이 삶의 한가운데 같이 존재합니다. 게다가 죽음으로 그들이 헤어진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죽음 안에 함께 합니다.자, 사무라이들의 할복의식과도 같이 성스럽게 죽음을 준비하는 그들의 무섭고도 광기어린 정신을 우리가 받아들인다는 것, 아무래도 꺼림직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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