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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미국 워싱턴에서 한미FTA협상이 진행 중입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한미FTA가 체결이 되면 우리 사회는 지금까지와는 질적으로 전혀 다른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거의 모든 산업 분야에 걸쳐 한국의 시장은 세계 자본이 자유롭게 활보할 수 있는 무대가 될 것입니다.


정부가 만든 한미FTA 광고는 대한민국이 징기스칸처럼 미국을 정복하는 이미지를 보여줍니다. 기분좋은 상상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만들어 국민들 앞에 보인 프로그램들은 그 상상이 얼마나 순진한가를 폭로했습니다. 취약한 국내 산업이 거대한 자본과 맞서 견뎌낼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얼마나 허망한가를 보여주었습니다. 실현가능성이 없는 상상은 망상일 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한미FTA에 대해 본질적인 문제를 제기해 왔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논의되는지조차 알 수 없게 진행되는 장막 속의 협상에 대해 정보 공개를 요구했습니다. 정부는 잘 되고 있다고, 믿어달라고 했습니다. 문제제기하는 사람들을 선동자로 몰아세웠습니다.


유감스럽게도 많은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습니다. 방송 시장의 문제만 해도 그렇습니다. 정부는 애초에 미국은 방송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 것처럼 말해왔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소유 지분, 편성쿼터, 광고 판매 제도, VOD 등에 대해 규제를 완화, 철폐하거나 규제를 신설하지 말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미국이 요구한다고 다 내어줄 것도 아니고, 우리 정부가 막아내면 되지 않느냐? 그렇게만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우리 정부가 그럴 의지라도 갖고 있다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이겠습니까?


그러나 현실은 전혀 다릅니다. 정부는 이미 많은 것을 양보할 속셈인 듯합니다. 외교통상부와 재정경제부가 방송위원회에 개방목록을 내놓으라고 엄청난 압력을 가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확인된 사실입니다. 실무협상에서는 모양새 때문에 어찌어찌 버틸지 모르겠지만 고위급 협상에서는 통 크게 내줘버릴지 모릅니다.


저는 이미 지난 해 9월, 20대 연합회장에 취임하면서, 지금의 국면을 공공론과 산업론의 대결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산업론자들은 끊임없이 방송프로그램 컨텐츠를 진열대에 전시된 상품이라고 말합니다. 방송사를 진열대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돈 되는 일이라면 영혼마저 악마에게 팔아넘깁니다.

 

그러나 프로그램 컨텐츠는 상품이 아닙니다. 방송은 또한 산업이 아닙니다. 우리의 혼이고 정체성입니다. 그것을 지키는 보루입니다. 방송 시장이 개방된다는 것은 미국의 세계관과 이데올로기가 아무런 여과장치없이 그대로 전달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론을 미국의 자본이 쥐고 흔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방송을 지켜내는 것은 단순히 우리의 직업과 직장을 지키는 문제는 아닙니다. 생계·생존의 문제와 문화 생산자로서의 자부심을 뛰어넘는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우리의 혼을 지키고 정체성을 지켜내는 것입니다.


돈을 위해 영혼을 파는 장사꾼들과 영혼을 사수하려는 전사들 사이의 전선을 극적으로 구체화하고 있는 것이 바로 한미FTA입니다. 오늘 저는 한국방송프로듀서연합회를 대표하여 그 전선에 나섭니다. 전국의 모든 회원 여러분께서 응원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여러분의 응원을 양식으로, 또 무기로 삼겠습니다.


 2007년 2월 12일
한국방송프로듀서연합회장
김 환 균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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