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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 이야기’와 ‘일본군 위안부’ 청문회

미국에서는 아직도 ‘요코 이야기’ 파문이 한창이다. 일본의 2차 세계대전 패전 직후 한국남성들이 조선에 있던 일본여성들을 무자비하게 성폭행했다는 내용이 요지인 이 책은 그 시대 조선에 살았던 한 일본여성이 자신의 체험기 형식으로 한국인의 비인도적 만행을 폭로하는 책이다. 저자는 2월15일 미국 보스턴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한국인의 만행을 재고발했다.


그런데 그녀가 기자회견을 가진 날은 미국 하원 외교위원회 산하 아·태·환경소위원회에서 역사상 처

 

음으로 ‘일본군 위안부’ 청문회가 열린 날이다. 참으로 실소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군이 ‘위안부’ 제도를 통해 타국 여성들을 성적 제물로 삼은 것이나 한국 남성들이 일본여성들을 성폭행한 것이나 본질은 마찬가지라는 ‘물타기’인 셈이다.


청문회에 제출된 "일본은 반복적으로 사과했고 책임도 졌다"는 요지의 주미일본대사 주장이야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굳이 교과서 문제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2차대전 당시 일본이 자행한 반인류범죄나 전쟁범죄와 관련된 일본인들의 역사 인식에는 참으로 동의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

 

 
 
 
 
▲ 미국 하원 외교위 아시아태평양환경소위는 15일 하원 레이번 빌딩에서 종군위안부 사상 첫  청문회를 개최했다. 2차 대전 당시 일본군 종군위안부로 강제 동원됐던 한국인 김군자, 이용수, 네덜란드인 얀 러프 오헤른 할머니 등 3명이 손을 잡고 증언을 기다리고 있다. ⓒ 연합뉴스

 

 

일부 재미일본계나 일본인들의 교묘한 역사 오도의 예는 비단 ‘요코 이야기’ 하나만이 아닌데, 이들의 노력은 어쩌면 일본이 저지른 돌이킬 수 없는 만행에 대한 문명사적 열등의식의 발로가 아닌가 하는 측은한 생각마저도 든다.


재미일본계 역사학자 에드윈 나카소네 교수(센추리 대학, 미국 미네소타주)의 ‘일본계 2세 미군’(The Nisei Soldier, 1999년, J 프린팅 발간)이라는 책은 어찌 보면 더 교묘하다. 본문만 204쪽인 이 책은 2차 대전과 한국전쟁을 주요한 시대적 배경으로 하면서 두 전쟁과 관련해 일본인들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조각들을 이것저것 모아 엮은 것이다.


일본의 진주만 기습 이야기, 이제는 한국에서도 어느 정도 알려진 한국인 2세 전쟁영웅 고 김영옥 대령이 2차 대전 당시 소속돼 싸웠던 일본계 2세 미군부대인 미육군 제442연대 이야기, 가미가제 특공대 이야기,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6000~8000명을 구해 ‘일본판 쉰들러’로 불릴 만 하다는 일본외교관 시우네 스기하라 영사(당시 리투아니아 카우나스 주재) 이야기, 한국전쟁에 파병된 일본계 미군장병 이야기 등을 싣고 있다.


이 가운데 442연대, 스기하라 영사나 한국전쟁에서 싸운 일본계 미군장병 이야기 같은 것은 명예로운 이야기인 것이 사실이다. 일본의 진주만 기습이나 가미가제 특공대 이야기도 일본인 또는 일본계의 관점에서는 은근히 내세우고 싶은 면이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의 어디에도 ‘일본군 위안부’ 같은 얘기는 없다. 바다 같은 만행은 덮어두고 샘물 같은 선행만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다. 역사적 큰 그림을 잘 모르는 독자들이 읽으면 일본인들은 담대하고 용감한 인도주의자들도 국가 차원에서 아시아 도처에서 수많은 미성년자까지 포함해 많게는 약 20만 명에 이르는 여성들을 납치해 몇 년씩이나 일본군의 성노예 생활을 강제한 국가라는 사실 같은 것은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요꼬 이야기’나 이런 책들이 영어로 발간돼 미국을 포함해 영어권 독자들을 버젓이 오도하고 있다는 것은 실로 심각한 문제인데, 이 글을 PD저널에 싣는 이유가 있다.


나는 미국에서 보낸 세월이 금년으로 20년째인데 미국이나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영어권 TV, 예를 들면 CNN, History, PBS, BBC 같은 매체나 채널에서 ‘위안부’ 문제를 국제적 시각에서 다룬 다큐멘터리 필름 하나를 본 적이 없다. 굳이 길지 않아도 되며 1시간 정도 되는 잘 만들어진 다큐멘터리 필름 하나만 있어도 이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시각에 많은 영향을 줄 것이다. 그런 다큐멘터리가 미국의회의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 채택에, 나아가 보편적 정의의 구현에 일조 할 수 있다면 그 자체 만으로서도 진보가 아니겠는가.

 

필름은 반드시 국제적 시각을 갖춰야 하며, 영어 더빙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영어 자막은 들어가 있어야 한다. 한국의 PD들 가운데 꼭 그럴 분이 있으리라 믿는다.

 

 

 

 

 

한 우 성 미국 New America Media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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