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지침 사건이 뭐예요
상태바
보도지침 사건이 뭐예요
  • PD저널
  • 승인 2007.03.04 20:2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권미혁 (여성민우회 공동대표)

 

 작년 연말. 송년회 모임에서 나온 이야기.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으로부터 수업시간에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선생님 IMF 가 뭐에요?” 그러자 옆의 사람이 간담회에서 한 기자에게 받은 질문을 소개했다. “보도지침 사건이 뭔데요?”


 위의 두 경우는 나 처럼 쉰세대(?) 들에게는 섹스피어가 누군지 모르는 청소년을 만났을 때만큼  충격이었다. 

 보도지침사건이 무엇인가?  5공화국 시절 문화공보부에선 거의 매일 각 언론사에 기사보도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내려보냈다. 각종 사건에 대한 보도여부는 물론 그 방향, 내용까지 지정함으로써 언론을 철저하게 통제했고 심지어 기관원이 언론사에 상주하기도 했다.

 

 1986년 한국일보 기자였던 김주언씨를 비롯해 김태홍, 신홍범씨 등이 이 보도지침의 존재를 폭로했고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면서 이 사건은  권위주의 시대에 국가의 언론통제에 항거한 상징적 사건이 되었다.

 나는 언론종사자가 보도지침 사건을 모르더라는 사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잠시 난감함에 봉착했다. 인간의 기억력 용량에 20년은 너무 긴 것일까?
 

 올해는 87년 6월 항쟁이 있은지 20년 되는 해이다. 민우회를 비롯해 많은 시민단체들이 6월 항쟁의 직간접적 영향으로 탄생한 만큼 감회가 새롭다.

 

 지난 1월 14일 남영동 구 대공분실(민주인사의 탄압으로 악명높던 이곳이 지금은 경찰인권센터로 바뀌어 있었다)에서는 박종철 추모식과 함께 ‘6월 민주항쟁 20년 사업 추진위원회’ 발족 선포식이 있었다. 


 그런데 당일 대부분의 방송뉴스는 ‘박종철 추모식’에 주로 초점을 맞추어 보도했고 심지어 사업추진위원회의 존재를 아예 다루지 않은 곳도 있었다.


 6월 항쟁과 관련해 뉴스밸류가 가장 높은 사람은 물론 박종철이다. 이미 상징성을 갖고 있어 시청자들에게 쉽게 전달됨으로 이에 초점을 맞추어 보도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 수도 있다. 그러나  6월 민주항쟁에서 희생된 사람은 박종철 뿐만 아니라 이한열, 강경대도 있었다.


 명동과 시청을 가득 메운 넥타부대로 통칭되는 회사원과 서민들이 외치는 민주주의의 함성이 있었다.  6월 민주항쟁이 일어나기까지 있었던 이름 없는 많은 노동자, 농민, 학생들의 희생은 또 어떠랴. 


 더욱 중요한 것은 6월 항쟁 이후 우리 사회에 분출한 민주주의에 대한 각종 시도들이다. 지금의 민주주의를 위한 법이며 제도는 어느 정도는 6월 항쟁에 빚지고 있다면 지나친 말일까? 


 우리 사회는 지금 과거의 사건 속에서 교훈을 얻는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의 미덕도 발휘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흘러가고 있다. 그속에서 세대간의 경험단절도 심각한 상황이다.

 

 보도지침 사건이 언론역사에서 잊혀지지 않으려면 언론에서 끊임없이 이 사건을 조명함으로써 가능하듯이 6월 민주항쟁의 정신도 그것이 이 시대에 갖는 의미와 그 의미를 창조적으로 이어받으려는 사람들의 활동을 심층적으로 보도하는 속에서만 지켜질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우리의 6월 항쟁은 결국 박종철이라는 이름 석자만 갖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런 상황이야말로 박종철 열사가 가장 원하지 않는 바이리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