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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언론연구소 이상희 이사장
소설 ‘광화문 애서(哀書)’ 펴낸 MBC 라디오국 오성수 PD

|contsmark0|“내게 주어진 노역(老役)이겠지요”21세기 언론연구소 이상희 이사장
|contsmark1|여느 때보다도 언론개혁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시점에서 이 시대 원로의 역할은 무엇일까. 지난 1월 27일 창립한 21세기 언론연구소의 이상희 이사장(서울대 언론정보학과 명예교수)을 만나 연구소의 운영 계획과 언론개혁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21세기 언론연구소는 언론개혁시민연대가 언론발전과 언론정책연구를 위해 설립한 단체이다.약속장소는 수유리에 있는 ‘아카데미 하우스’였는데, 이상희 이사장의 자택과 가까웠던 이유도 있었지만 전 방송개혁위원회 강원룡위원장이 설립한 이 곳에서 언론개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는 사실 자체가 재미있기도 했다.“언론개혁시민연대의 이론적인 뒷받침을 해주고, 갖가지 연구와 사례를 조사할 사람이 필요했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학자들을 중심으로하는 연구조직이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연구소의 창립배경에 대한 대답이다. 연구소의 활동계획에 대해서 물어보았다.“방송개혁위원회의 활동과 그 결과에 대해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있지만, 사실 신문에 대해서는 정부도 손을 못대고 있는 상황이다. 이것은 시민단체들이 강제해야하는 부분이다. 신문개혁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지속적인 개혁연구과제를 내놓을 예정이다. 전체적인 연구방향은 계속 잡아가는 중이다. 여러 활동적인 학자들을 분과별로 나누었으며 각각 개별 아이템으로 연구를 진행시킬 계획이다. 앞으로 사단법인화 작업을 마무리해서 대외적으로 영향력을 갖추면서 언론발전을 위한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는데 노력할 것이다.”언론학의 불모지에 뿌리를 내리게 한 초창기 언론학자로서 지난 30여 년간 언론이 권력의 시녀였던 시절부터 ‘국민의 정부’에 이르기까지를 지켜본 변화에 대해선 이렇게 평가한다.“30년 전과 비교해보면, 우리 언론이 양적·기술적으로 발전한 것은 사실이다. 지면도 늘고 제작 기술도 많이 변화하였다. 그러나 산업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언론매체이기보다는 광고운반책인 광고매체로 변질되었다. 지난 30여 년간 언론은 그간의 정통성 없는 정부의 홍보수단이었고 이를 방관한 공범자였다.”지난 학기까지도 강의를 했다는 일흔을 훌쩍 넘긴 이상희 이사장. 남은 열정을 언론개혁을 위해 쓰겠다는 그가 힘주어 말하는 한마디.“학자가 하는 운동이 뭐가 있겠나. 이 나이 먹도록 하던 것이 공부인데, 공부로 도움을 주어야지.”그가 이 시대의 건강한 원로로서 열심히 활동하는 많은 후배들의 사표가 되어줄 것이라고 믿는다.<이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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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7|‘사랑은 그리움으로 시작되고…’소설 ‘광화문 애서(哀書)’ 펴낸 mbc 라디오국 오성수 pd
|contsmark8|‘사랑은 그리움으로 시작되고 이별은 추억으로 남는다.’오성수 pd의 첫 소설 ‘광화문 애서(哀書)’는 우울한 사랑에 대한 기록이며 헤어짐과 아픔에 대한 토로다. 소설 곳곳에서 지울 수 없는 저자의 그림자는 오 pd에 대한 궁금증을 증폭시키기에 충분했다. 대뜸 ‘왜 하필 사랑이야기냐’고 다그치는 기자의 질문에 오 pd는 “사람사는 얘기를 쓴 것 뿐”이라고 싱겁게 대답을 끝냈다. 그러나 인터뷰 동안 간헐적으로 터져나오는 사랑과 이별에 관한 그의 에피소드들은 그의 첫 소설이 ‘왜’ 사랑이야기인지, 그것도 ‘우울한’ 사랑이야기인지 짐작케 하는 것들이었다. 현재 <정오의 희망곡>을 연출하고 있는 오 pd는 라디오 드라마 pd로 pd생활을 시작했다. “드라마 pd로서의 생활이 부족하나마 첫 소설을 출간하는 데 상당한 동기를 제공했다”는 오 pd는 “라디오 드라마가 청취자의 관심에서 멀어지면서 회사의 지원 역시 예전같지 않다”며 안타까워 했다. 연신 자신이 함께 일했던 노장 성우들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는 그에게서 아직도 꺼지지 않는 라디오 드라마에 대한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대학시절부터 문예동아리 활동을 하며 시나 소설등을 습작했다는 오 pd는 “매사 비관적이었던 탓인지 군 입대 전 그간 써둔 습작들을 모두 불태웠다”면서 “다시는 글을 쓰지 않겠다고 결심했지만 결국, 군대 말년 부대 근처였던 울진 바닷가에 앉아 작은 수첩에 몇 자 적기 시작한 것이 계기가 되어 다시 글을 쓰게 되었다”고. 천성이 글쟁이임을 느끼게 해주는 대목이다. 심야 음악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주어진 오후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틈틈이 소설을 썼다고는 하지만 타고난 글쟁이가 아니고서야 책 2권 분량을 넘어서는 원고집필을 현업과 병행한다는 것이 녹록한 일일 수는 없을 것이다. 벌써부터 다음 작품을 준비 중이라는 오 pd는 “이번 작품에서 다루지 못했던 ‘동시대를 사는 남자들의 허전함과 고독’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시켜나갈 계획”이라면서 “이제 나 자신만의 독특한 문체에 도전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는 또한 작품을 통해 대중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사람들은 같으면서도 다르다. 같은 작품 속에서도 사람들이 발견하는 것은 모두 제각각이며 나의 작품을 대하는 독자들 역시 내용에 공감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을 것”이라면서 “모든 사람들이 공감하는 소설을 의도하기보다 그저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 속에서 이를 공유하고플 뿐이다”라고 대답했다. 질문이 무색해지는 답변으로 일관하는 오성수 pd. “유화보다는 파스텔톤의 소설을 쓰고 싶다”는 그의 다음 작품을 기대해 본다.<남은지> |contsmark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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