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태희 (GTB PD)
지난 2년은 물론, 올 한 해 모토 역시 ‘나 자신의 행복’이다. ‘나 자신의 행복’이라 했지만, 개개인의 행복을 노래하기엔 일상이 되어버린 국가적 위기가 개인의 입을 틀어막는다. 정치, 군사, 경제 , 환경, 역사 등 각기 광의의 국가적 위기(라고 떠드는)에서는 단지 생존 자체만으로도 개인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니까. 이런 사회에서 그 누가 ‘나 자신의 행복’ 따위의 추상적 개념을 속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그 모호한 ‘행복’에 대해, 혹은 행복하기 위한 구체적인 그림을 그려본 건 3년 전, 언론재단에서 제공한 다큐멘터리 연수과정에 선발되어 단기간 동안 NHK에서 교육을 받았을 때였다.
교육교재로 선정되었던 NHK 다큐멘터리 중 인상 깊은 작품 하나. 아무런 주제 없이 초등학교 학급을 1년 동안 촬영해 아이들의 삶을 지켜본다는 조금은 대책 없어 보이는 최초 기획의 다큐멘터리. 그러나 실제 촬영일만 150일이 넘었다는 대책 없는 작품은 섬세함과 진실성에서 여느 대작 못지 않은 감동을 주었다.
초등학교 4학년의 삶에도 이별이 있고 폭력이 있고 야합이 있고 심지어 죽음도 있다는 이야기. 어린이들의 삶이란 것이 생각보다 가혹하고 대견하고 또 아름답기 그지없다는 내용의 수작(秀作)이었다. 그 중 가장 인상 깊은 대목 하나. 그 학급의 담임선생님이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물었다.
“여러분, 인생의 목표가 무엇인가요?”
물론, 세계최고 수준의 선진국이니만큼 7~80년대 우리 같지는 않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을 했다. 대통령(이제는 일상적으로 욕먹는), 과학자(세계적 거짓말쟁이가 되어버린), 금메달(구타당해 멍든 허벅지로 따낸)은 아니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 그러나 아이들은 내 막연한 생각에서 몇백만 광년쯤 떨어진 대답을 했다. 담임선생의 질문에 바로 대답을 했음을 증명하는, 편집된 화면이 아닌 거친 팬과 줌아웃이 채 끝나기 전에 아이들의 목소리가 영상보다 선행했다.
“행복요” ‘’행복해 지는 거요!” “행복!”
어쩌면 도쿄 인근의 작은 도시 아이들에게 행복은 웅대하고 유려한 추상이 아니라, 방과후 집에서 기다리고 있는 카레 치킨카츠 한 조각이거나, 신발매되는 게임이나 액션피겨의 한정초판일 수도 있다. 아니 충분히 그렇겠지. 그렇다해도 인생의 목표를 묻는 질문에 숨돌릴 틈도 없이 바로 ‘행복’을 외치는 모습은 다분히 충격이었다. 아이들이 기대하는 소소한 일상의 기쁨이 인생의 행복을 만드는 좋은 재료이며, 그 사실을 전사회적으로 공감한다는 전제를 발견할 수 있었다는 건 더욱 충격이었다.
일본이나 한국에서 개인의 행복추구는 천부인권만큼이나 당연한 것이 되어버린 세상이지만, 만성이 되어버린 국가적 위기아래에서의 현대 한국에서 ‘개인의 행복’을 노래하는 것은 어쩐지 철없어 보이는 것과 비교되는 대목이 아닐는지...
개인의 행복을 희생한 집단의 행복이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내 자신의 행복’이 결코 경제적 계급상승이나 노후안정성과 동의어가 아님을 애써 밝힌다. 그런 이유로 다시 한번 FTA를 반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