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1회 한국방송프로듀서상 시상식을 보고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청자와 대화하는 한마당으로

손병우 충남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방송프로듀서상은 프로듀서들이 프로듀서에게 주는 상이다. 말하자면 프로듀서 공동체 내에서 이루어지는 자기 평가이자 집안 잔치이다. 그러므로 수상작들을 통해서 프로듀서 스스로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프로듀서의 상(像), 즉 자기 정체에 대한 스스로의 인식을 짐작할 수 있다. 크게 나누어 두 가지가 우선 눈에 들어온다.첫째, 그들은 장인 정신을 프로듀서라는 직업인의 가장 큰 덕목으로 삼고 있는 것 같다. 지금까지 시상 경향을 되돌아볼 때 작품으로서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프로그램 혹은 벽에 부닥쳐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장르에 새로운 돌파구를 연 프로그램들이 대상을 받아 온 것에서 그런 짐작을 하게 된다. 올해의 프로듀서상과 부문상을 동시에 수상한 <시베리아, 잃어버린 한국의 야생동물을 찾아서>와 예년의 대상 수상작들인 <길 위의 날들>이나 <갯벌은 살아있다>, <일요일 일요일 밤에> 등이 이 경우에 해당한다. 또, 실험정신상 부문이 설정된 것도 역시 그런 배경을 함께 하고 있다.둘째, 그들은 역사적 존재 그리고 사회적 양심으로서의 프로듀서의 사명감을 중요시하고 있는 것 같다. 이는 한국 현대사의 특수성에서 비롯되었다고도 할 수 있는데, 프로듀서가 되기 이전에 그들은 이미 역사적 존재로서의 자의식을 충분히 만들어 왔고, 프로듀서가 되고 나서도 노조 설립 및 공정 방송 실현 노력 속에서 이미 역사적 존재로서의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온전하게 성취되지는 못했지만 세상에 어느 나라 프로듀서들이 자기 반성 프로그램을 만들려고 해봤던가. 그래서 프로듀서상의 목록에 개혁실천특별제작팀이 오르고, 과 <그것이 알고싶다>가 단골 수상자가 되고, <광주는 말한다>와 <어머니의 노래>가 나란히 프로듀서상을 수상하고, 또 라디오의 <시사쟈키 오늘과 내일> 뿐 아니라 일상의 자잘한 단면들을 소재로 삼는 <여성시대>까지도 사회적인 호흡을 갖는 변화를 보일 수 있었으며, 각종 통일 지향 프로그램들이 꾸준히 제작되고 있는 것이다.그런데 이런 양심과 장인정신은 프로듀서 스스로 자임한 것일 뿐 여기에 시청자들이 끼여들 여지는 없다. 방송은 전문직종 종사자들에 의해 제작되지만 대중들의 호응 속에서 비로소 그 존재 양식이 완성된다. 이런 특성을 상기할 때 열 한 차례에 걸친 프로듀서상을 쭉 지켜보면서 한 가지 아쉬움을 감출 수 없다. 방송 프로그램은 그 내적 원리에 의해서 내려지는 평가로만 온전히 이해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하나의 독립된 텍스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시청자들과의 상호관계를 통해 하나의 사회적 사건으로도 존재한다. 가령 예전의 <모래시계>는 작품으로서도 완성도가 높았지만 그것은 단순히 한 편의 흥행성적 좋은 드라마로만 치부될 수 없다. 또, <사랑이 뭐길래>는 작가에 대한 불균형적으로 높은 의존도나 완성도의 측면에서 볼 때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지만 시청자들이 그것을 하나의 사건으로 만든 좋은 예이다. 올해 후보에 올랐지만 수상하지 못한 <구성애의 아우성> 또한 형식적인 측면에서 볼 때 연출의 개입 여지가 극도로 제한될 수밖에 없는 단순성을 갖지만, 한 편의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어떻게 사회에 전면적인 변화의 추진력을 제공할 수 있는가를 보여준 대단한 사건이었다. 방송 프로그램은 어떤 각도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최악의 프로그램이 될 수도 있고 최선의 프로그램이 될 수도 있다.어떻게 할 것인가? 이 글의 제안은 프로듀서상을 제작자와 시청자들이 모두 프로그램에 대해 다시 한 번 음미하는 계기로 삼자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방식은 시청자들에게 그 심사 결과가 방송 시간을 통해 공표될 뿐이다. 연말이면 각 신문지상을 통해 발표되는 방송 담당 기자들이 선정한 최고 최악의 프로그램도 마찬가지이다. 투표 결과만 신문에 실어 놓으면 독자들은 어쩌라는 것인가? <보고 또 보고>를 최악의 드라마로 선정한 방송담당 기자들의 관점과 작가부문상을 수여한 프로듀서들의 관점 사이의 괴리를 시청자들은 어떻게 소화해야 할까? 필자 개인적으로는 프로듀서들의 판단이 더 옳다고 여겨지지만, 그렇게 심사 결과에 대해 공감하면 공감하는 대로 뜬금없게 느껴지면 또 그렇게 당혹스러운 대로 한 때의 해프닝으로 여기고 넘어가면 그만일 뿐인가?한 가지 보완 방안을 제시해 본다. 본심은 축제로서의 면모를 갖추기 위해 채점표를 통한 수상작 선정이 이루어지는 것도 좋은 것 같다. 하지만 본선 출전작을 추천하는 예심 단계에서는 프로듀서 이외에 외부 평론가들도 참여시켜 각자의 추천 이유를 받아, 그것을 참고하여 본선 진출작을 선정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연합회의 인쇄매체들을 활용해 작품평을 첨부하게 되면, 수상작의 의미가 두고두고 반추되고 음미될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인터넷에 연합회 홈페이지를 개설하여 관심있는 시청자들과 제작자들 사이에 게시판을 통한 일목요연한 대화도 나눌 수 있게 하면 좋을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시청자들을 개입시켜야 프로듀서상이 사회적 사건으로서의 방송의 성격까지 아우른 축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