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의 자유, 다양성 보장해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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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길이 지옥으로 가는 길일까, 천국으로 가는 길일까…….’ 나는 방향감각을 잃고 흔들렸다. 하라데레에 가서 어떻게 해야 할지도 고민이었다.”

얼마 전 김영미 PD가 낸 책「바다에서 길을 잃어버린 사람들 - 동원호 나포 117일간의 기록」(북하우스)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소말리아에서 동원호 선원들을 만나러 가는 길고 긴 여정길에서 느꼈던 감정이 느껴진다.

죽음을 불사하며 소말리아에 나포된 동원호 선원들을 취재하고 돌아왔던 김영미 PD. 그의 영상물은 지난해 7월 25일 MBC〈PD수첩〉‘조국은 왜 우리를 내버려두는가?’로 한국에 알려졌다. 그리고 얼마 뒤 동원호 선원들은 한국으로 안전하게 돌아올 수 있었다.

하지만 외교통상부는 ‘동원호에 대한 협상을 방해할 수 있다’는 이유로 방영 전부터 MBC〈PD수첩〉제작진에게 ‘조국은…?’ 방송자제공문을 보냈다. 결국 이를 방영한 MBC를 상대로 외교통상부는 반론보도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이와 관련한 1심 선고 공판이 12일 남부지방법원 제15민사부에서 열릴 예정이다.

“외교통상부가 말하는 ‘일개 프리랜서 PD’여도 상관없다. 하지만 일개 프리랜서 PD의 얘기라도 들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부의 입장과 맞지 않는다고 방송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 어느 시대 얘기인가.”

 

“하고 싶은 얘기 할 수 있게 해 달라”

외교통상부는 소장 등에서 김 PD를 ‘일개 프리랜서 PD’라고 칭하며 “검증 되지 않은 일개 프리랜서 PD의 취재 내용을 방송한다는 것 자체가 MBC의 잘못된 판단”이라고 주장해왔다.

“취재 내용에 대한 검증은 외교통상부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외국에서 보면 프리랜서 PD들이 열심히 하고 있고 그들의 존재는 인정받는다. 외통부의 발언은 다분히 프리랜서 PD를 비하하는 발언이다.”

김영미 PD는 이번 재판과정을 지켜보면서 외교통상부가 ‘일개 프리랜서 PD’라고 지칭하는 시각에 대해 심각한 문제 의식을 느꼈다. “내가 부각되는 일은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다양한 경로를 통해 전달되는 목소리들이 공존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겪고 있는 일은 나와 비슷한 길을 걷고 있는 수많은 프리랜서 PD들에게 똑같이 적용될 수 있었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문제제기를 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고 물러서지 않은 것이다.”

김 PD는 외교통상부가 제기한 반론보도 청구에 대해서도 심각한 우려를 나타냈다. “왜 반론보도로 재판까지 가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반론보도는 힘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생긴 것 아닌가. 외교통상부와 같은 큰 국가조직이 반론보도를 제기하고 그것이 진의여부와 상관없이 받아들여진다면 반론보도는 남용될 수 있다.”

김 PD는 10일 오전 10시 프레스 센터 외신기자클럽에서 PD연합회․ 독립PD협회․ 시민단체 등과 공동으로 ‘PD저널리즘과 독립PD 취재권 수호’ 를 위한 기자회견을 개최한다.

“나는 회사도 차리지 않고 혼자서 뛰어다녔지만 프리랜서 PD가 외압에 부딪쳤을 때 PD연합회나 PD연합회 산하 독립PD협회라는 조직이 충분히 도움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을 하게 됐다.”

김 PD는 독립PD협회가 출범하기 전 지난해 PD연합회에 가입한 최초의 프리랜스 PD 회원이기도 하다.

 

 

“내 삶의 의미는 ‘사람들과의 교감’”

김 PD에게 두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한 통은 이라크에 보낼 항생제를 구했다는 내용이었고, 나머지 한 통은 동원호 선원이었던 김홍일 씨 큰 딸 설화 씨의 친구에게서 온 전화였다.

“새벽에 ‘이라크전’ 당시 만났던 사람에게서 전화가 왔다. 자신의 아내와 아이가 다쳤는데 항생제가 없어 치료를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라크에 알고 있는 의사에게 연락했지만 그 의사도 약을 하나도 갖고 있지 못하다고 말해 한국에서 항생제를 구하고 있었는데 다행이다.”

김 PD는 이렇게 세계 곳곳의 사람들과 지금도 연락하고 지낸다.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들의 연락을 외면하지 못한다. 그것이 김 PD에게는 “삶의 의미이자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책「바다에서 길을 잃어버린 사람들-동원호 나포 117일간의 기록」의 출판을 결정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지난해 가을 동원호 관련 후속 취재를 하면서 만났던 조선족 선원 김홍일 씨가 “세상에 꼭 알렸으면 좋겠다”며 건넸던 2권의 일기.

그러나 출판사에서는 분량이 적어 일기만으로 책을 내기 어렵다고 말했지만 김 PD는 오피스텔에서 2주 동안 책에 매달려「바다에서…」을 완성했다. 「바다에서…」의 인세는 모두 김홍일 씨의 두 딸 - 설화, 애화의 학비로 쓰일 예정이다.

김 PD에게 유독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 세계 분쟁지역을 찾아다니며 취재하는 이유에 대해 물었다.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을 우리가 직접 취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세계가 점점 글로벌화되면서 한국사람들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나는 이런 세계적인 흐름 속에 시작에 불과하다. 나 같은 사람은 점점 늘어날 것이다.”

현재 레바논 취재를 준비하고 있다는 김PD는 “오늘 밤에라도 비행기를 타고 취재를 가고 싶다”는 바람을 주저 없이 밝혔다.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꾸준히 하고 싶다. 두려움을 이겨내며 동원호 취재를 나설 수 있었던 건 동원호 선원들이 누군가의 아버지, 자식, 남편의 이름으로 서 있었기 때문이다. 다양한 목소리를 내는 한 사람으로 살고 싶다.”

 

 

이기수 기자 sideway@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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