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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스페셜〉제작진은 2월 16일~3월 25일까지 박영석 대장이 이끄는 ‘베링해 원정대’를 밀착 취재했다. 베링해 원정대는 3월 9일 베링해협 횡단에 실패했지만 베링해를 횡단하려던 원정대의 의지는 SBS 특집다큐멘터리 2부작 <베링해 대탐험>(연출 신언훈)로 태어나 5월 20일, 27일 밤 11시 5분에 방송될 예정이다. <베링해 대탐험>의 조연출을 맡았던 박준우 PD가 베링해의 생생한 모습을 전해왔다. <편집자주>  
           

 

3월 5일, 헬기는 러시아 라브렌티야 베이스 캠프를 떠난 지 30분도 채 지나지 않아 멀리 알래스카 대륙이 보이는 유라시아 최동단 우엘렌 상공에서 내려앉기 시작했다. 착륙 5분도 되지 않아 박영석(44) 대장, 오희준(37), 이형모(28)를 낯선 행성에 버리듯 뒤로 했다.


우리에게 낯선 베링해는 위로는 북극해, 옆으로는 유라시아의 추코트 반도와 아메리카의 알래스카 사이의 좁은 바다이자, 1만 5000년 전 몽골리안이 아메리카로 건너간 문명의 육로였다.

 

▲ 베링해협의 풍경 ⓒ SBS

 베링해가 오늘난 공포의 바다가 된 까닭은 어부의 목숨을 수시로 앗아가는 거센 폭풍과 이른바 물반, 얼음반 상태의 아이스 칵테일때문이다. 한여름을 제외하고 수시로 얼음 바다가 열렸다, 닫혀 제대로 배를 띄울 수도 없다.


우리는 박영석 원정대의 베링해 도보횡단기와 그 여정을 통해 오늘날 러시아 추코트 반도와 그 반대편 알래스카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변화의 양상 - 원주민의 전통과 현재, 기후변화로 인한 인간과 동물들의 변화 -들을 담아내기로 했다.


베링해로 가는 길은 복잡하고도 어려웠다. 러시아 추코트 반도는 과거 핵무기가 집중 배치되었던 냉전의 최전선이었기에 다섯 번의 까다로운 허가가 필요했고, 그 허가만큼이나 우리의 여정은 고단했다.

 

한국에서 추코트 반도로 바로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이 없었기에, 모스크바를 거쳐, 다시 아나디르, 라브렌티야로 이어지는 지그재그식 이동을 해야 했고, 변덕스러운 날씨 탓에 걸핏하면 비행기가 취소되었다.

 

 

▲ ⓒ SBS

막연히 동토의 땅으로 상상했던 추코트 반도는 막대한 자원 매장량에 대한 황금빛 미래를 꿈꾸고 있었고, 이를 염두에 둔 석유 재벌 아브라모비치의 집중적인 투자로 반도의 주도인 아나디르는 레고 랜드를 연상시키듯 현대식 조립식 건물로 새 단장되어 있었다.

 

오랜 생활방식인 사냥은 원주민 축치족에게 취미 생활이 되고 있었고, 흔히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북극곰, 늑대, 물개 등의 동물들은 마치 유령처럼 흔적만 남긴 채 취재팀을 배회했다. 그들은 그저 카메라의 줌인을 통해서만 겨우 만날 수 있었다.

 

자본의 유입과 기후 이상의 징후들은 확연하지 않지만 서서히 추코트 반도를 바꿔나가고 있었다. 한편 반대편 알래스카의 에스키모들은 축치족의 미래를 보는 것 같았다. 높은 실업률과 비만, 무기력한 일상, 음주, 잃어버린 고유의 언어... 특히 유난히 높은 청소년 자살률은 그들과의 인터뷰에서도 알게 됐지만 심상치 않은 문제로 보였다.

 

▲ ⓒ SBS

그들은 자원개발의 본격화, 정부 지원금, 지구 온난화로 인한 야생동물 감소 등으로 인해 원하든 원치않든 전통적인 생활방식을 잃어가고 동시에 점점 더 무기력해지는 듯했다. “백인들이 우리 아이들을 망치고 있다”라고 했던 에스키모 노인의 말은 이 변화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짐작케 했다. 


블랙호크가 심한 소음을 내며 박영석 원정대로 다가왔다. 우렁찬 굉음에도 불구하고 블랙호크는 정면으로 날아오지 못하고 옆으로 설설 기다시피 하며 천천히 내려왔다. 베링해의 폭풍속에 헬기가 날아 온 것만도 다행인지도 모른다.

 

박영석 원정대는 전날 밤 목적지 알래스카 웨일즈를 불과 20km를 남겨두고 급속히 떠내려가기 시작했다. 시속 4.5km의 속도로 하룻밤 사이 60여km를 태평양쪽으로 떠내려갔다. 눈바람은 초속 20m를 넘나들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운행은 물론 불가능하고, 얼음판들이 떠내려가면서 갈라지기 때문에 원정대의 안전도 보장할 수 없었다.

 

2년의 준비기간, 전지훈련, 특수장비제작 등 그간의 노력을 생각한다면 안타까운 순간이었다. 3월 5일 러시아 우엘렌을 출발한 원정대는 파죽지세로 3일 만에 러시아 국경과 날짜 변경선을 돌파했다. 몸무게만한 썰매를 끌며 난빙대를 통과하고, 바다가 열린 곳은 조그만 얼음에 몸을 싣고, 그게 안되면 썰매를 타고 노를 젓고, 떠다니는 집채만한 유빙들을 갈아타며 왔다.

 

 

▲ ⓒ SBS

그러나 베링해의 바람 앞엔 속수무책이었다. 유빙의 엄청난 속도를 인간으로서는 감당할 수가 없었다. 한국시간으로 3월 9일 오전 7시 베링해 원정은 이렇게 중단됐다. 그러나 그들의 험난해서 더 빛나는 원정과정은 촬영 테이프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산악 그랜드슬램이라는 대기록을 이루고도, 베링해 원정에 임한 박영석 대장에게 물었다, 무엇 때문에 계속 탐험을 하냐고... 그는 “탐험가의 야성을 잃지 않기 위해서, 자기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아마 그는 다시 도전할 것이다. 우리는 어쩌면 살아있는 야성을 만나기 위해 우리안의 그것을 되찾기 위해 거친 베링해에 갔다. 그러나 그곳에서 우리가 동경하고 바래왔던 그것을 잃어가는 현실을 보니 아쉽고 안타깝다.

 

 

 

 

 

 

 

 

 

 

박준우 SBS PD(<베링해 대탐험> 조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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