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져보기]장수 프로그램의 가치와 방송의 역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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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일 문화연대 미디어문화센터 운영위원

 

지난 몇 일간 공교롭게도 세 프로그램이 비슷한 시기에 특집 편성을 하였다. 지난 4일에는 <추적 60분>과 <환경 스페셜>이 각각 800회 특집과 300회 특집을 방송하였다. 8일에는 <웃찾사>가 200회 특집을 준비하여 화려한 자축의 장을 마련했다. 비록 장르와 성격은 다르지만 한 프로그램을 이처럼 오랫동안 제작하는 것이 그리 쉬워 보이지만은 않는다. 시청자의 사랑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겠다. 타성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부단한 자기 성찰과 시청률로 일희일비하지 않는 진득함도 필요했을 것이다. 제작자의 소명의식과 고집스러운 장인의식 역시 이들 프로그램을 오늘에까지 이르게 만든 원동력이었으리라. 


더욱이 방송계에 만연한 새것에 대한 강박증적 집착을 생각해본다면 이들 장수 프로그램의 가치는 더욱 소중해 보인다. 시장 논리와 시대의 변화를 들이대며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는 방송계의 관행은 프로그램 속에 각인되는 역사의 흔적을 휘발시키는 중이다. 아니 오히려 부담스러워하는 눈치인 것 같다. 인스턴트식품처럼 재빨리 먹고 치울 수 있는 프로그램이 선호된다. 이런 환경 속에서 이들 프로그램은 각각 세월의 흔적을 담고 있다는 측면에서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

 

소위 한국적 PD 저널리즘의 원형을 제시한 <추적 60분>에는 불가피한 단절의 역사가 존재한다. 이후 부활한 <추적 60분>이 보다 날 선 비판의 시각을 가질 수 있던 것은 단절의 시간이 준 교훈에 기인한다. 99년부터 방송된 <환경 스페셜>속에는 공영방송이 스스로에게 부과하는 공공성의 흔적이 남아있다. 방송은 시장논리로만으로 재단될 수 없다는 자긍심이 <환경 스페셜> 속에 담겨있다. <웃찾사>는 어떠할까.

 

초기의 <웃찾사>가 <개그콘서트>의 아류였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회를 거듭하며 스스로 부단한 차별화를 진행해 오늘의 <웃찾사>에 이를 수 있었다. 더욱이 한국 코미디 프로그램으로는 최초로 해외에 수출된다고 하니 이 역시 시간의 누적 속에서 가능했던 일이다. 이러한 시간의 흔적은 또한 관성과 맥락을 만들어 프로그램의 정체성과 성격, 브랜드화에 일조한다. 프로그램의 역사를 지켜본 시청자들의 이목이 집중되기에, 그 어떤 프로그램보다도 시청자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최근 강동순 방송위원의 사석에서의 발언이 커다란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특히 그가 “정권 찾으면 방송계를 하얀 백지에 새로 그려야 한다”는 방송계 백지론은 최근의 인스턴트 방송의 득세 속에서 기묘한 울림을 내고 있다. 그의 백지론 속에는 오늘날의 한국 방송을 가능케 했던 역사에 대한 자의적 망각이 담겨 있으며, 또한 오늘의 방송을 지켜보아온 시청자들의 눈을 두려워하지 않는, 안하무인적 오만함이 짙게 베여있다.

 

하다못해 프로그램 하나에도 역사가 각인되기 마련인데, 방송 전체의 역사를 모두 무시하고 백지위에 그리고 싶은 그의 방송이 과연 어떤 방송일지 새삼 궁금해진다. 추측컨대 역사 없는 방송에 남게 될 것은 철저한 이윤의 논리와 성찰 없는 자기도취가 아닐까. 그런데 불안한 것은 역사성을 논하려 해도, 역사를 갖지 않(으려)는 프로그램이 참 많아지고 있는 현실이다. 이래저래 방송계 백지론은 우리네 방송계가 처한 현실의 일정한 진실을 드러낸다. 그래서 오랫동안 장수하는 프로그램의 가치가 더욱 소중해지는 오늘의 한국 방송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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