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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스트라다무스만 예언하는 게 아니다. 보통사람도 때로는 예언을 한다. 그 자신은 그것이 예언이라는 것을 깨닫지도 못한 채.

강동순 위원은 몇 차례 ‘황우석 사태’를 보도한 MBC 〈PD수첩〉에 대해 비판했다. 방송위원이 되고난 후였으니 서울대의 조사가 끝난 지 오래고 검찰 발표가 난 지 오래인 때다. 사적인 자리가 아니라 공적인 자리에서였다. 녹취록 파문 이후 강 위원이 해명이라고 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왜 황 박사를 잘못된 시점에, 잘못된 방법으로 변호했는지 이해할 만하다. 자신의 행위에 대한 예언적 변호였던 것이다.

두 사람은 여러 면에서 닮은꼴이다. 말도 안 되는 궤변을 늘어놓는 게 닮았다. 자신의 잘못에 대해 조금도 반성하지 않는다는 게 닮았다. 적반하장인 게 닮았다. 그래서 매를 번다는 게 닮았다. 법과 규범, 합법적인 권위를 무시하는 게 닮았다. 합리성, 균형감각, 우리 사회가 기대하는 최소한의 양식…, 그런 것들이 전혀 없는 게 닮았다.

녹취록에 따르면, 강 위원은 우익 단체들로 하여금 자신이 위원장으로 있는 시청자불만처리위원회에 불만 사항을 접수하도록 했다.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재일동포 김명철을 인터뷰 방송한 것과 관련해서다. 문제가 되자 강 위원은, 자신이 아무개에게 시킨 것은 사실이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아무개는 그 단체들에 그 이야기를 전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므로 자신의 말과 우익 단체 두 곳에서 불만사항을 접수한 것은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기막힌 우연이다. 하지만 그런 우연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중요한 것은 그 기막힌 우연마저 강 위원을 구원해 주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녹취록에 따르면, 그는 최소한 자신의 이야기가 전달된 것으로 믿고 행동하고 발언했다. 불만처리위원장으로서 보도교양심의위원회에 이첩하도록 지시했다. 문제의 ‘사석 발언’이 있은 지 5일 후인 11월 14일 열린 방송위원회 임시회의에서 그는 맹활약한다. 본지가 입수한 그 날의 속기록을 보면, 보도교양심의위원회가 재심마저 문제없다고 결론내자 그는 전체회의에서 끈질기게 물고 늘어져 권고 결정을 내리는 데 공을 세운다. 철저하게 정파적인 관점에서 이 문제에 접근한 것이다.

속기록을 인용하자면, 강 위원은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렇게 말했다.

“방송위원회는 방송법에도 정치적인 중립성과 독립성을 지키게 되어 있고, 또 우리가 노사합의에 의해서도 여기 들어올 때 정치적인 중립성을 지키기로 합의를 하고 들어왔다.”

그 자신의 의지에서 한 말이라면 얼마나 가증스러운가? 그 당시 스스로 우익단체를 사주했다고 알고 있으면서 이런 말을 했으니 말이다. 명료한 의식으로 한 말이라면 얼마나 어리석은가? 자신이 쏜 화살에 자신이 정통으로 맞다니.

그건 아닐 것이다. 아마도 그 자신도 알 수 없는 어떤 기운의 작용 때문에 쏟아낸 공수이고 방언일 것이다. 아니면 미래의 누군가가 자신에게 할 말을 미리 예언했는지도 모른다.

예언과 방언을 쏟아내면서도 강 위원 자신은 그것을 해독하지 못한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만일 해독할 능력을 가졌다면 어떻게 그토록 태연하게 ‘방송위원회에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수많은 반대증거에도 불구하고, 더구나 자신의 입으로 뱉어낸 증거에도 불구하고, ‘사적인 대화’라고 앵무새처럼 반복해서 읊조릴 수 있겠는가?

그러고 보니 강 위원이 황 박사와 결정적으로 닮은 게 있다. 조용하고 명예롭게 퇴각할 기회와 조건을 스스로 파괴해 버리는 거 말이다. 강 위원 최대의 불행은 그것이 그가 스스로 한 최후의 예언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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