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SBS 〈솔로몬의 선택〉등이 표절 논란에 휩싸이면서 예능 프로그램들의 표절 시비가 다시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그러나 현재 표절을 규정할 수 있는 명확한 기준이 없어 표절 논란은 언제든지 불거질 가능성을 내재하고 있다.
끊이지 않는 표절 논란
지난 15일 일본 니혼TV(NTV)의〈행렬이 생기는 법률상담소〉가 SBS 〈솔로몬의 선택〉과 자신들의 프로그램 콘셉트가 비슷하다는 내용을 방송하면서 SBS 〈솔로몬의 선택〉의 표절 의혹이 나왔다. 이 날 〈행렬이 생기는…〉는 SBS 〈솔로몬의 선택〉의 진행패턴, 변호사들의 구성, 세트, 프로그램 자막, 출연하는 연예인 구성 등이 자신들과 유사하다고 꼬집었다. 또한 〈행렬이 생기는…〉은 이 같은 프로그램 유사 사례가 법률문제로 어떻게 해결될 수 있는지 등도 다뤘다.
SBS 〈일요일이 좋다〉‘하자GO’는 후지TV 프로그램 의상과 비슷하다는 논란이 일어 SBS 〈일요일이 좋다〉측은 현재 일본 후지TV 쪽에 ‘하자GO’ 1회 녹화분을 보내 의상 아이디어에 관한 로열티를 지불해야 하는지 판단하도록 요청했다.
또한 MBC〈무한도전〉은 출연자들이 입던 속옷 의상과 물이 든 공차기, 기계로 뺨 때리기 등의 일부 소재가 일본 후지TV 〈스마스마〉, TBS 〈링컨〉, 일본TV 〈가키노츠카이〉 등에 각각 등장한 장면 및 에피소드들과 비슷하다는 의혹을 받기도 했다.
이에 앞서 지난 2003년 KBS〈스펀지〉와 SBS〈TV 장학회〉는 방송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당시 일본 후지TV의 간판 오락프로그램이었던〈트라비아의 샘〉과 비슷하다는 의혹으로 후지TV가 KBS측에 공식 항의서한을 전달할 정도였다.
▲ 표절 시비에 휩싸였던 SBS TV법률상담소 ‘솔로몬의 선택’ ⓒ SBS |
표절 판단 기준 모호
그렇다면 국내 예능프로그램들이 끊임없이 표절 논란에 휩싸이는 이유는 뭘까? 이에 대해 방송 전문가들은 표절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다고 지적한다. 즉 표절을 주장할 수 있는 객관적인 기준이 없는 상황에서 소재, 에피소드, 콘셉트 등 프로그램의 유사성이 있다 해서 표절로 단정 짓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표절 뒤에는 항상 시비, 의혹, 논란이 따라붙고 있다.
<솔로몬의 선택〉의 제작진은 표절 논란에 대해 “2002년〈솔로몬의 선택〉방송 초기부터 일본 NTV 측과 협의를 가져왔으나 그간 각 사 해당업무 담당자들을 통한 커뮤니케이션이 다소 원활하지 못한 가운데 지금까지 오게 됐다”고 해명했다. SBS의 입장은 비록 구두형식이기는 하지만 NTV측과 지속적으로 협의를 해왔기 때문에 표절로 단정짓는 시각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정순영 SBS 예능 총괄 프로듀서는 “개방적인 환경에서 4~5년 동안 일본 프로그램을 베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공식적으로 로열티를 지불하겠다고 방송 초기부터 말했고 계약서 작성이 제대로 되지 못했을 뿐”이라고 표절시비를 일축했다.
또한 2003년〈스펀지〉와 <트라비아의 샘〉간 표절 시비 당시 방송위원회 산하 연예오락 제1심의위원회는 “(KBS〈스펀지〉와 SBS〈TV 장학회〉)는 퀴즈 문제의 출처와 제시하는 방식, 프로그램 진행방식 등에서 차별성이 있다”며 표절로 판단하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
이후 방송위원회는 지금까지 표절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은 마련하지 않은 상태다. 방송위원회는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중 ‘제33조(표절금지) 방송은 국내․외의 타 작품을 표절하거나 현저하게 모방하여서는 아니 된다. 〈전문개정 2004.10.25〉’ 정도로 표절에 대한 입장을 명시해 놓았다.
김형국 방송위원회 심의 1부 선임조사관은 “표절은 저작권 문제 등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일률적인 기준으로 규제하기 힘들다”며 “사안별로 기준을 나눠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프로그램포맷 수출도 수익원으로 삼아야
이처럼 표절을 판단할 명확한 기준이 없는 상황이지만 표절 논란의 대안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점차 커지고 있다. 특히 채널이 다양해지고 시청자들의 수준이 현저히 높아진 지금, 방송사들은 표절 논란에서 자유롭기 위해 고심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가운데 외국 프로그램의 판권을 직접 사서 합법적으로 프로그램 포맷을 차용했다는 것을 사전에 공지함으로써 애초에 표절 논란을 불식시키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MBC〈일요일 일요일 밤에〉‘브레인 서바이벌’ 코너, SBS〈결정! 맛대맛〉을 비롯해 지난 14일 첫 방송된 SBS〈작렬! 정신통일〉등은 해외 프로그램의 판권을 직접 구입해 방송했다. 다만 SBS〈작렬! 정신통일〉의 경우, ‘두뇌의 벽’ 코너는 방송권만 계약을 체결하고 VOD 등에 관련된 계약이 아직 체결되지 않아 VOD 다시보기 서비스는 제공되지 않고 있다.
또한 일각에서는 국내 예능프로그램들이 외국 프로그램의 표절 논란을 벗어나 적극적으로 해외 시장에 포맷을 수출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특히 한미 FTA 등으로 방송시장이 본격적으로 개방되기 시작함에 따라 프로그램 포맷을 비즈니스의 중요한 수익원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강명석 대중문화평론가는 “전 세계적으로 표절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은 없는 상태로 무조건 표절 시비로만 프로그램을 판단할 수 없다”며 “방송시장이 더욱 개방되면서 프로그램의 콘텐츠와 포맷의 판권은 방송사의 중요한 수익원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강 대중문화평론가는 “비즈니스 측면에서 봤을 때 방송사들이 도덕성과 상관없이 이익성만 차린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지만 방송개방 상황에서는 일본이나 미국의 프로그램을 직수입하는 일은 늘어날 것”이라며 “앞으로 프로그램의 포맷을 사는 것은 방송의 중요한 수익원으로서 독자적인 콘텐츠를 마련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기수 기자 sideway@pdjourn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