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식 파이프라인의 도입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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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식 파이프라인의 도입 필요
  • 샌프란시스코=허철 통신원
  • 승인 2007.05.02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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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영상제작 시스템의 가장 큰 장점은 효율적인 제작관리와 치밀한 기획력이다. 훌륭한 테크놀로지와 탄탄한 스토리는 당연한 전제조건이고 이를 바탕으로 어떻게 스토리를 성공적으로 실현화시키고 마무리 짓느냐는 기획력과 관리 시스템의 힘에 달려있다. 따라서 준비 과정에 실제 작업시간 보다 더욱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다큐멘터리든 드라마 제작이든 엄청난 변수가 생기지 않는 한 기획된 대본과 샷으로 끝까지 진행한다. 제작 작업 도중이나 후반작업 과정에서 변화를 주게 되면 예산과 직결이 되고 자연스럽게 프로듀서의 잘못된 기획의 탓이 된다.


다큐멘터리의 경우엔 주제에 대한 중요성 설명과 연구 자료를 명확하게 제시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스토리 전개 방식과 미학적 스타일에 대한 자료들이다. 전통적인 객관적 접근을 택할지 포인트 오브 뷰 (Point of View)로 갈지. 시네마 베리테 스타일로 가서 사실성을 더욱 강조할 건지 아니면 재연 구성 등을 통한 스토리에 초점을 더욱 맞출 것인지. 전문가들과의 인터뷰를 프로그램에 넣을 것인지 아니면 배경 리서치 자료로만 쓸 것인지. 조명과 색깔의 톤은 어떻게 갈 것인지. 카메라는 35미리로 갈지 16미리로 갈지, 아니면 HD로 갈지. 어떤 카메라 포맷과 조명 톤이 다큐멘터리에서 말하려 하는 스토리와 맞는지. 사운드 디자인은 어떻게 갈지. 성우의 목소리는 쓸지 안 쓸지. 시청자들에게 주고 싶은 느낌은 어떤 것인지 등에 대한 토론들이 기획안에 포함된다.


모든 사항들은 꼼꼼히 예산에 반영이 되고 1차 승인이 나오면, 제작사나 방송국 그리고 프로그램 주제에 따라서 천차만별이지만 보통 짧게는 3개월에서 길게는 1년까지의 준비기간이 주어진다. 다큐의 경우에도 촬영이 시작되기 전에 대본이 나오게 된다. 주제와 관련된 사람들과의 사전 인터뷰 (Pre-Interview)들을 통해서 나온 이야기들과 준비된 샷들을 구성해서 대본이 만들어진다. 대본 옆에는 중요한 샷들에 대한 스토리 보드 스케치가 가미가 되고 감독의 메모들이 더해진다. 촬영 장소나 인터뷰 섭외는 대본에 근거해서 확정짓게 되고 최소한의 예산이 집행될 수 있도록 스케줄이 나오게 된다. 이 작업이 보통 촬영 시작 3개월 전에 완료가 되기 때문에 과잉 촬영을 피하면서 꼭 사용될 장면들 (Footage) 위주로 갈 수 있다.


드라마 제작의 경우엔 거의 모든 작품들이 비주얼 이펙트를 사용하기 때문에 기획단계에서부터 컴퓨터 그래픽 전문가들이 감독과 긴밀하게 일을 하고 촬영 현장에서 촬영감독과 현장을 지휘한다. 특히 기획 단계에서 CG를 요구하는 샷들의 숫자가 정확히 나오게 되고 상세한 프리비지(Pre-visualization) 기술을 통해서 모든 장면들을 촬영 전에 파악하고 확정짓는다. 감독이 만약 변덕을 부리면서 샷을 바꾸거나 새로운 CG를 넣게 되면 비주얼 이펙트 회사에 엄청난 벌금과 추가 비용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미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풍경이다. 어떤 경우엔 미술감독이 3개월 동안 현장의 습도와 햇살의 강도 및 색깔 톤에 대한 리서치를 해야 할 정도로 철저한 준비를 하고, 이러한 준비에 근거해서 나오는 스토리보드와 대본은 최종 본과 근사하게 나옴으로써 제작인력의 스케줄과 예산 집행이 정확하게 이루어진다.


사실 한국에 있는 다큐 및 드라마 감독들 그리고 촬영, 조명, 미술, 사운드 감독들의 개별적 역량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는다고 본다. 한국에 없는 것은 이런 미국의 시스템이다. 엄청난 자본과 제작 환경의 뼈를 깎는 혁신을 통해서 구축해야 할 새로운 파이프라인 (pipeline)인 것이다. 미국 시스템의 좋은 점은 빨리 도입해서 정면 승부 준비에 전념해야 할 때다.

 

샌프란시스코 = 허철 통신원 / 독립다큐멘터리 감독, 미국 샌프란시스코 주립대 영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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