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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육체에 가해지는 시선의 파시즘 - O양의 경우
김정란-시인, 상지대 인문사회학부 교수

|contsmark0|정보 홍수의 흐름 안에서 개인의 사생활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위험 앞에 노출되어 있다. 최근에 우리 사회를 한바탕 뒤집어놓은 ‘o양 비디오’ 사건은 음란물의 불법 복제와 유통이라는 문제에서부터 개인성의 보호 문제로 위치 이동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이 시각의 이동은 분명히 옳다. 그러나 나는 이 문제를 좀더 근원적인 수준에서 한번 살펴보려고 한다. 한 젊은 여자와 젊은 남자가 사랑을 했다. 그들은 자기들이 사랑하는 내밀한 순간을 생생한 이미지로 남겨놓고 싶었다. 이것이 문제의 발단에 놓여 있는 사건이다. 그런데 그들은 왜 그렇게 하고 싶었을까? 어느 보수 언론의 한 논객은 젊은이들이 서로의 정사 장면을 찍은 비디오테이프를 사랑의 징표로 주고받는 풍속이 생겨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별 해괴망칙한 일이 다 있다고 개탄한다. 나는 그 사실 자체를 옳다 그르다 탓할 것은 없다고 본다. 철저하게 개인적인 결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문제의 중심에 놓여있는 ‘이미지의 욕망’은 분명히 짚어볼만한 그 무엇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젊은 연인들이 자기들이 사랑하는 장면을 비디오로 남겨놓고 싶었던 것은 현대인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이미지의 욕망’과 관계가 있다. 그들은 남녀간의 사랑이 이루어지는 특별한 어떤 순간의 환희를 영속적인 현재로 남겨두고 싶었을 것이다. 이미지는 와해되어 시간성 속으로 사라지는 현재를 공간화하여 고착시켜 주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사진 기술이 등장하게 된 배경에는 이처럼 시간과의 싸움이라는 인류의 오래된 형이상학적 욕구가 숨어있다. 시간과 더불어 무형으로 사라질 존재의 무상함과의 싸움. 그런데 사진 이미지와는 달리 ‘비디오’ 이미지, 즉 동영상은 보다 특권적인 위치에서 현재를 재생한다. 시간의 실재성이 합쳐져서 보다 입체적으로 과거가 재생되는 것이다. 따라서, 문제가 된 테이프의 내용은 그것이 두 사람 사이의 것으로만 남았다면, 두 사람 사이에 있었던 어떤 특별한 순간을 종합적으로 재생시켜준다는 기억제의 기능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어떤 경로로든 유출되었다는 데 있다. 가장 내밀한 이미지의 욕망이 공적인 장소로 끌려나오자마자 최초의 이미지는 추악하게 썩기 시작한다. 우리는 세 개의 층위로 이 이미지의 타락의 문제를 살펴볼 수 있다. 첫째, 허구와 실재의 도착. 둘째, 기호에 대한 욕망. 셋째, 여성의 육체에 가해지는 시선의 파시즘. 이미지 복제 기술이 발달되면서, 이미지는 실재를 복제한다는 애초의 기능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특히 매스 미디어의 발달과 더불어 이미지는 부를 만들어내기 시작했고, 그 결과 실재보다 더 가치있는 것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이제는 실재가 이미지에게 존재증명 도장을 찍어주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가 실재에게 존재 증명 도장을 찍어준다. 이미지는 2차 실존이 아니라 1차 실존의 자리로 이동한다. 두 사람의 정사 장면은 공적 장소로 끌려나오자마자 곧 실재의 살가움을 집어삼키고 그 자체로 존재가 되기 시작한다. 두 사람의 삶은 간데없이 사라지고 허깨비가 혼자 설치고 돌아다닌다. 파우스트는 메피스토에게 꼴깍 삼켜진다. 둘째, 문제는 이 비디오의 주인공이 연예인이라는 데 있다. 연예인이란 일반인들과 달리, 공적인 공간에서 움직이는 특별한 존재, 즉 기호 가치를 가지는 개인이다. 그 기호는 젊고 아름다운 여성일 경우, 강력한 모방 욕구의 대상이 된다. 실재로부터 떨어져나와 혼자 어슬렁거리고 돌아다닌 그 이미지는 그것이 가지고 있는 기호 가치 때문에 한없는 모방 욕구의 증폭 회로 속에 들어간다. 베껴지고 베껴져서 더 이상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너덜너덜 베껴졌다는 o양의 메피스토. 유령은 울부짖는다. 시체를 돌려다오.셋째, 이 불쌍한 기호-유령은 여성들이 아니라 남성들의 시선의 희생물이 된다. 사랑을 정복으로 오해하는 이 원시동물들은 힘의 행사를 존재 증명의 긍극적 가치로 여긴다. 너를 죽여서 내 존재를 확인하는 파시스트의 욕망. o양의 유령은 여성의 육체를 정복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한국 남성들의 파시스트적 시선 아래서 잔인하게 찢겨진다(여론 조사 결과 성인 남성의 42.9%(여성은 13.3%)가 이 비디오를 보았다 한다. 정말 할 일들도 없다).문제는 현대 사회 안에서 이 모든 욕망의 요체를 인문학적으로 충분히 파악하지 못하는 개인들이 그 막연하고 무의식적인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달려들 때, 엄청난 파괴력을 행사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문제는 다시 철학이다. 철학이 없이는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석할 수도, 따라서 적절한 처방도 내릴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점점더 기능주의적인 방식으로만 대처하는 현재 우리나라 대중매체의 추세가 두렵기 그지 없다. 시청률만 높일 수 있다면 양잿물이라도 퍼먹을 기세이니 말이다. 갈갈이 찢긴 o양의 삶은 이제 어떤 방식으로 보상될 수 있는가. 이것은 공공연히 저질러진 테러다. 그 비디오를 구해서 본 당신들 모두 그 테러의 공범이다.|contsmark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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