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월드와이드]“긴장 고조기의 언론인, 자발적 순종으로 연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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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테러공격 이후 미국은 상당한 긴장감과 위기의식에 빠져있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언론은 정부의 발표와 주장에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개발이나 은닉 주장, 사담 후세인 정권을 붕괴시켜야 할 구체적 필요성, 애국법의 제정과 시행, 테러와의 전쟁과 연관된 그 밖의 여러 가지 정책을 깊이 있게 파고들거나 그에 의문을 제기하지 못했다.

 

그 결과 언론은 본연의 역할에서 멀어졌고 여기에 권력이나 사회적 분위기에 순응하지 않을 경우 소외되고 배척당할 것이란 언론인 개개인의 이기적 타산과 불안감이 가세되어 저널리즘은 더욱 위축되었다. 언론인 출신의 심리학자 리사 피니건(Lisa Finnegan)은 9·11 이후 미국 언론의 변모 과정을 심리적 측면에서 접근한 ‘9·11이후 의문 제기없었던 미국 언론(No Questions Asked: News Coverage Since 9·11)’을 펴내 주목을 끌었다. 그 내용과 서평을 아메리칸 저널리즘 리뷰(AJR) 2007년 4/5월호에서 간추려 소개한다.


저자 피니건의 이력은 독특하다. 신문과 매거진 기자를 거쳐 심리학 분야의 학위를 딴 뒤 지금은 ‘테러리즘 심리와 그 심리가 미디어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고 있다. 이 저서에서도 저자는 2001년 9·11테러공격 이후 미국 언론이 패기를 잃고 고분고분해진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를 면밀하게 분석하고 있다. 미디어를 잘 아는 심리학자가 저널리스트를 비판하고 저널리즘의 흐름을 분석하는 것은 색다른 접근이 될 법 하다. 이 책이 바로 그런 특이한 아이디어의 소산인 셈이다.

 

언론인의 이기적 이해타산이 원인


9·11이후 언론이 정부의 반대편에 서서 정책의 수립과 집행의 정당성을 따지고 그 과정을 감시하는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은 실증적 데이터를 제시하면서 언론의 이같은 역할 축소를 비판했다. 사실 문제점을 파악하기는 쉬워도 그 내용과 이면을 분석하고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피니건은 저널리스트 개인의 심리와 집단 심리를 바탕으로 하는 신중한 접근으로 저널리즘의 역할 축소의 원인과 결과를 분석했다. 이런 색다른 방식은 원인을 규명하고 개선점을 모색하는 데 상당히 효과적인 것으로 판명되었다.


9·11이후 여러 해가 지났음에도 오사마 빈 라덴은 아직도 활개를 치고 있고 이라크 전쟁은 통제불능의 상태로 빠져들고 있으며 미국의 시민적 자유권은 위기에 처해 있다. 피니건은 의회와 국민을 싸잡아 비판하면서도 비난의 초점은 언론에 맞췄다. 언론 하면 독자적인 판단에 따라 두려움 없이 진실을 추구하는 이른바 제4부의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이 보통인데, 이런 언론이 어떻게 그토록 쉽사리 굴복할 수 있을까? 별다른 업적을 쌓지도 못한 행정부가 어떻게 했길래 이들 감시자를 이토록 고분고분하게 만들었을까?


이런 의문에 대한 피니건의 답변 내용은 자못 도발적이다. 언론인 자신의 이익을 빈틈없이 계산한 결과로 나타난 태도라는 것이다. “9·11이후 긴장이 한껏 고조된 상황에서 미국 저널리스트들은 정부의 주장을 그대로 믿고 별다른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것이 자신들에게 가장 큰 이득이 된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반대되는 입장을 취한다면 행정부와 일반 여론으로부터 따돌림을 당함으로써 저널리스트 생활에 큰 해를 입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언론인들은 어떤 동기에서 행정부의 주장과 발표를 그대로 믿고 따르는 순치된 행태를 보이는 것일까? 피니건은 보상을 받기 위함이라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이라크전 준비과정에서 언론은 “불안감을 조성하는 사람들의 견해를 크게 부각시키는 대신, 그와 대조되는 견해를 무시하다시피 함으로써 이라크전을 당장 벌여야 한다는 점을 미국 여론에 인식시켰다”는 것이다. 그 이후 여러 미디어가 “퓰리처상을 수상함으로써 그같은 보도활동의 정당성을 인정받았다.”

 

“우리에게 회색은 없다”


심리적 분석을 바탕으로 접근한 점은 상당한 설득력을 지닌다. 피니건은 우선 소박한 애국심이 발휘하는 위력에서 출발한다. 9·11이후 “저널리스트들이 상당한 충격을 받은 탓에 미국이 취약하다는 사실에만 집중적인 관심을 기울이면서 그밖의 문제는 중요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이들은 미국에 대한 테러공격을 가능하게 만든 허점을 파고들거나 행정부의 대응을 면밀하게 살피거나 아니면 정보를 통제하고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하는 권력쪽의 움직임을 효과적으로 견제하지 못했다. 일부 기자들은 양복 옷깃에 성조기 핀을 달고 다니기까지 했다.


미국 정부는 9·11이후 모든 토론을 흑백논리로 풀어가려 했다. 부시대통령의 표현처럼 “흑이냐 백이냐 하는 선택만 있을 뿐, 회색은 없다”는 논리였다. 이런 상황에 대해 언론이 이의를 제기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존 애시크로프트 법무장관은 애국법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에게 “당신들의 술책은 테러리스트들을 도와줄 뿐이다”라고 불만을 털어놓았을 때도 언론은 별다른 비판을 하지 않았다. 애리 플라이셔 백악관 대변인의 경고는 더욱 노골적이었다. “모든 미국인들은 이들이 말하는 내용에 경계심을 품어야 한다.” 정부에 이의를 제기하는 쪽에 대해 백악관이 이런 위협을 일삼아도 언론은 대체로 침묵을 지켰다.


피니건은 많은 기자들이 위축감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일부 기자들은 위협을 받고 두려움을 느낀 나머지 정부쪽에 의지해 안전을 보장받으려 했다. 가령 이라크 전쟁 종군취재에서 이른바 미군 임베딩에 참여한 600여명의 저널리스트들이 그런 경우다. 이런 임베딩은 종군기자들을 미군당국의 과잉보호 아래 둠으로써 오폭이나 포로 고문, 정책 실패 같은 문제를 취재하고 추적하는 데 적잖은 장애가 되었다.


그러나 이런 공식적인 임베딩 시스템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취재를 시도하는 저널리스트들은 미국의 타깃이 되기도 했다. 임베딩에 참여한 기자들이 안전을 보장받는 반면, 그에서 벗어난 기자들은 위험에 노출되는 것이 아니라 위협의 대상이 되었다.


피니건은 “불확실성이 강한 시기에는 언론인들이 객관적 입장보다는 추종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향을 많다”고 지적한다. 이런 분석에는 상당한 타당성이 있다. 언론은 보통 비극적인 사태가 벌어지면 처음에는 정중한 태도를 보이다가 강경한 정치적 대응과 선전공세가 이어지면 지나칠 정도로 소극적인 자세를 취한다. 이번 9·11사태 이후에도 동일한 상황이 벌어졌다.


피니건이 시사한 것처럼 이런 모습이 인간의 본성이라면 이를 바로잡을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그녀는 최소한 “이런 조작에 흔들리는 취약성을 최소화할” 수는 있다고 주장한다. 즉 한마디로 공평성과 확고한 결의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빈틈과 허점을 노려 가차 없는 질문을 던지고 반론의 근거가 될 만한 자료를 찾으며 정당의 노선에 얽매이지 않는 외부인의 코멘트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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