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월드와이드]“언론과 가깝게 지내면 안되는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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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월드와이드]“언론과 가깝게 지내면 안되는 줄 알았다”
  • PD저널
  • 승인 2007.05.11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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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으로 재임 시 언론에게 혹독한 평가를 받고, 언론과의 사이가 좋지 않았던 존 메이저(John Major) 전 영국 수상은 현직에서 물러난 지 10년이 경과한 요즘 그의 재임당시 언론과의 관계와 현재의 언론 상황에 대하여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브리티시 저널리즘 리뷰 (BJR) 2007년 제1호에 실린 줄리어 랭든 (Julia Langdon) 기자의 존 메이저 전 수상과의 인터뷰 기사를 싣는다. 줄리어 랭던은 기자 겸 방송인으로 1979년 메이저가 수상으로 처음 선출될 당시 가디언의 정치부 기자로 그와 자주 이야기를 나눴다.

 

아파트 꼭대기에서 바라본 세상


수상 직에서 물러난 지 10년째가 되는 존 메이저 전 수상은 요즘 세상을 고층 아파트 꼭대기에서 바라본다. 으리으리하게 꾸며진 그의 응접실에 들어서면 런던의 심장부가 마치 런던아이(London Eye)에서 보는 것처럼 한 눈에 들어온다. 그는 푹신한 안락의자에 앉아서 의사당 건물은 물론이고 캔터베리 대주교까지 볼 수 있다고 농담조로 말한다. 맑은 날이면 새로 지은 웸블리 스타디움의 아치도 보인다고 한다.


그는 그 곳에서 40여년 전 정치에 입문했다가 10년 전 수상 직에서 물러나  다시 돌아왔다. 거기에는 그가 한때 이끌었던 정부와 국가와 교회 등 권력 기구와 지저분한 정치 책략에 대한 은유가 깃든 것처럼 보인다. 지난 10년 간 그는 거기에서 일체의 논평과 인터뷰를 거절한 채 살아왔다. 오늘 필자와의 인터뷰는 예외적인 것으로 그는 인터뷰 도중 자신은 정계에서 은퇴한 몸으로 정치에 더 이상 관여하지 않는다는 말을 수차례 했다.


인터뷰를 위해 자리에 앉기 바쁘게 그는 신문들이 자신의 이 아파트 구입에 대해 잘못된 보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것은 비난조의 말이긴 했지만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좋은 빌미가 됐다. 그는 그가 수상 직에 있었을 때와 오늘날 언론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에 동의했다. 그는 지난 수년 간 그가 받은 치열한 언론 보도 때문에 하는 말이 아님을 거듭 강조했지만, 그의 논평에는 신랄한 기미가 감지됐다.


그는 나에게 질문 내용을 인터뷰 전에 미리 알려 주기를 요청했는데, 내가 다소 막연한 윤곽만을 알려 주었는데도, 그는 자신의 답변 내용을 미리 열심히 생각한 흔적이 역력했다. 그는 신문과 방송 매체에 대한 자신의 견해에 대해 몇 가지를 밝히고 싶어했고, 특히 언론이 독립 기관의 감시를 받는 자발적 행동 강령을 제정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는 또한 자신이 수상으로 집무할 당시 언론을 다루는 데 있어서 실수가 있었음을 인정했는데, 그 말을 할 때 전에 볼 수 없었던 자신감을 내보였다.

 

언론에게 받은 상처가 커 더 멀리하게 돼


“언론을 잘못 다뤘어”라는 말을 그는 세 번이나 반복했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지만 나는 언론에 너무 접근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내 업무는 정책을 다루는 것이고 그것을 보도하는 것이 언론의 업무라고 믿었습니다. 그런 원칙에 근거해서 행동하면 아무 문제가 없을 거라고 경솔하게 믿었던 것이지요.”


그는 언론 보도에 정부 정책에 관한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 언론계의 인사나 개인적 친분을 이용하는 것은 옳지 않은 것이라고 믿었고, 또 그대로 실천했다고 말한다. 그 점에 대해서는 내가 보증할 수 있다. 1979년 그가 수상으로 처음 선출될 때에 나는 가디언의 정치부 기자로 그와 복도에서 자주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는 서로를 잘 알고 있었고, 정치에 대하여 기탄없이 이야기 했다. 수상이 된지 얼마 안 돼 그는 나를 체커즈의 일요 오찬에 초대했는데, 그것은 아마도 내가 그를 큰 인물이 될 것으로 점찍었기 때문이 아닌가 여겨진다. 하지만 비록 직업적인 것이긴 했지만 우리들의 우정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그는 언론으로부터 깊은 상처를 입었고, 그것을 이해하려 들지 않았다. 난 당시 선데이 텔레그래프의 정치부 에디터로 있었는데, 당시 그의 공보 비서였고 현재 총무부 장관으로 있는 거스 오도넬(Gus O’Don-nell)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그는 보수 신문이 보수당 출신 수상을 그토록 야비하게 보도하는 것이 무엇 때문이냐고 비난했다. 그것은 내가 마거릿 대처가 그를 수상으로 지지한 것에 화가 나서 “그는 어떤 사람인지 도무지 알 수 없어. 생각이라는 게 없는 사람이야”라고 말했다고 1면 기사로 보도한 직후였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대처가 말한 그대로 썼다는 것이 전부였다.


존 메이저는 그가 수상 시절 신문을 너무 열심히 읽었음을 인정한다. 하지만 밤 늦게까지 자지 않고 신문 첫판이 도착하기를 기다렸다는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라고 부정한다. “그런 건 모두 과장된 소문이예요.” 하지만 그렇게 열심히 신문을 읽은 데 대한 변명으로 당시 그의 정부는 유럽 문제에 있어서 소수에 속했고, 따라서 그 문제에 대한 여론의 향배에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으면 안 되었다고 말한다. “매일 신문에 무언가 특이한 기사들이 실렸는데, 그 기사들을 무시할 처지가 못 되었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보다 많은 것을 무시했어야 하는데.”


올해 63세이지만 그는 수상 시절에 비해 그다지 늙어 보이지 않는다. 얼굴은 윤기가 흐르고, 커다란 미소는 예전 그대로이며, 예전에는 없었던 자신감까지 엿보인다. 그는 만찬 후 연설로 1회에 3만 파운드를 버는 것으로 소문이 나 있다. 그를 대하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세심하게 예의를 차리고 예전과는 달리 정치적 가십에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는 예전의 능란한 대화술을 이용하여 행동 강령에 대한 그의 제안 쪽으로 화제를 옮긴다. 지난 주, 그는 윌리엄 왕자의 걸 프렌드 케이트 미들턴을 파파라치들이 따라 다니는 것과 관련해 더타임스에 쓴 서신에서 현행법이 개인들을 보호할 수 있도록 보다 강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사주와 에디터들에게 해당 인물의 동의 없이는 사진을 게재하지 말 것을 촉구하면서 루퍼트 머독이 그렇게 하고 있는 데 대해서 찬사를 보냈다.


그는 이 문제를 깊이 생각해 본 듯, 메모 노트를 꺼내 “나는 50년 이상 규칙적으로 신문을 읽었다. 그 동안 많은 것들이 변했고, 그로 인해 신문의 성격도 변한 것 같다”라는 문구를 읽었다. 그는 지나치게 많은 신문들이 생겨 난 결과, 치열한 판매 경쟁을 벌이게 되었고, 그 결과 센세이셔널리즘이 생겨나고, 그로 인해서 언론의 전반적 수준이 저하되었다고 믿고 있다. 내가 요즘 신문의 수가 더 늘어난 것이 아니라고 지적하자, 그래도 너무 많다며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논평 늘어난 신문과 24시간 쉼없는 뉴스 채널의 센세이셔널리즘


그는 24시간 뉴스 채널이 여과되지 않은 사실들을 뉴스라고 18시간 동안이나 똑같은 말로 시청자들에게 전달하기 때문에 신문에는 뉴스가 줄어들고 대신 논평이 늘어났다고 생각한다. 또 다른 주장은 신문이 전보다 많이 정파적이 되어서 일정한 정치적 견해를 대변하지 않는 신문은 찾아보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이전에도 사설이나 칼럼이 정치적 견해를 표명했지만, 요즘에는 뉴스 보도도 정치색을 띠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인터넷의 등장과 구독자의 감소 추세가 가세해 치열한 판매 경쟁을 부추기고, 그 결과 센세이셔널리즘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주장이다. 즉, “정부가 잘하고 있다”라고 보도하면 판매 부수가 늘지 않기 때문에, 판매 촉진을 위해 “정부, 또 다른 실책 저질러”라고 센세이셔널하게 보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 다른 불만사항으로 그는 기자들이 예전과 달리 사실 확인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는 확인되지 않은 논평을 마치 사실인 것처럼 보도하는 관행이 (예: “그는 어떤 사람인지 도무지 알 수 없어. 생각이라는 게 없는 사람이야.” 하지만 예의를 차리느라 그는 이 말을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넘치는 데 대해 우려한다. 그런 식의 보도는 뉴스 가치는 있겠지만, 노련한 기자라면 상반되는 정치적 견해를 지닌 사람이 항상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고, 따라서 익명의 평가를 사실로 보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의 믿음이다. 그 다음 문제는 케이트 미들턴 등과 같은 유명인사들에 대한 파파라치들의 괴롭힘이다. 팔아넘길 수 있는 사진을 찍을 기회를 노리며 식당 밖에서 죽치고 있는 파파라치들에 대하여 무언가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사생활 보호’ 위해서는 입법보다는 행동강령을


유명인사가 대중들의 주목을 받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해도, 그 사람들도 괴롭힘을 당하지 않고 일상적으로 살아갈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주들이 무언가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그는 생각한다. 그는 사진을 찍지 말아 달라면 그 부탁을 들어주는 몇몇 사진 기자들을 “대단히 예의 바른 친구들”이라고 추켜세우는가 하면, 쉽사리 유혹에 굴복하는 “군중 심리”를 한탄한다. “그런 기사 밑에 ‘명사들에 대한 제보가 있으면 당사에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공고를 보면 역겨움을 느낍니다”라고 그는 말한다.


이 문제는 그의 집권 당시 검토해 보았던 문제이다. “1990년대에 사생활보호법 같은 것이 실효성이 있을까 하는 문제를 검토해 보았지만, 실효성이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전통적인 언론의 자유 및 대중의 알권리도 한꺼번에 충족시켜 줄 수 있는 법을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으로 판단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자율규제가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 해법을 그는 새로운 자발적 행동강령에서 찾는다. 가령, 잘못 쓴 기사에 대해서는 동일한 지면 크기와 페이지에 같은 크기의 활자를 사용하여 정정보도를 하게하고, 지명된 독립 감독기관의 감독을 받으며, 그 기관의 명령을 언론은 존중한다는 등을 강령에 규정한다는 것이다. 현재 정부의 ‘언론고충처리위원회’는 신문사를 대표하는 위원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그 기능을 수행할 수 없다고 그는 말한다. 그는 몇몇 신문사에서 개발한 옴부즈맨 제도 또한 인정하지 않는다. “나는 언론의 자유를 믿기 때문에 자유가 방종으로 변하는 것을 막으려고 노력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되는 것은 언론의 자유와 언론의 방종을 어떻게 구분 짓느냐 하는 것입니다. 나는 합의에 의해 그것이 이루어 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행동강령을 제정하고, 그것의 준수에 합의하는 것입니다. 나는 입법을 피하는 쪽을 선호합니다.”


하지만 그가 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그의 개인적 경험이나, 언론으로부터 받은 푸대접이나 그가 관직에서 물러난 후 불거져 나온 에드위나 커리와의 불륜 관계 때문이 아님을 그는 강조한다. “내가 타임스에 기고한 것은 내 개인 문제들 때문이 아닙니다. 그런 것들은 이미 오랜 전에 끝난 것들입니다. 나는 최고 수준의 영국 언론은 매우 좋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영국 언론이 저질 수준의 언론 때문에 명예가 손상되는 걸 싫어합니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행동강령에 합의를 하면 됩니다. 나는 최고 수준의 언론인들은 언론이 높은 품위를 유지하고 언론인들이 방종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믿습니다. 나는 상업적 동기가 센세이셔널리즘을 조장한다는 내 주장을 언론이 잘 이해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것을 규제할 수 있는 합의는 일보 전진이 될 것입니다.”

 

이치에 맞지않은 노동당의 언론정책


하지만 매사에 완전함이란 없다는 것을 그도 알고 있다. 그렇다면 그는 그가 수상직에서 물러난 후 신정부가 채택한 언론 정책에 대해서 공감하고 있는 것일까? 그는 “천만에”라고 펄쩍 뛴다. 그는 노동당 정부가 홍보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많은 수의 직업 공무원들을 그 자리에서 내쫓고 정치적 인사들로 그 자리를 채운 것은 “전적으로 부당한” 처사였다고 성토한다.

 

블레어 정부는 정부 내의 대 언론 관계를 정치화 시킴으로써 전에는 아무 의심 없이 받아들였던 인사들의 말조차 이제는 뚜렷한 증거가 없는 한 믿지 않게 되었다고 말한다. “나는 그것이 대부분 1990년대 말 그들이 뉴스를 조작하는 방식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건 정말 잘못된 일이었습니다. 우리도 언론 정책을 직업 공무원들한테 맡기지 않았더라면 훨씬 문제가 적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정부 정보의 성실성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는 또한 하원 의원들이 페이저를 차고 따라야 할 정치 노선을 지시 받는 광경은 “정말 역겹다”고 토로한다. “전혀 이치에 닿지 않는 말을 앵무새처럼 되뇌이는 정치인들 때문에 정부가 업신여김을 받고 품위를 잃고 있습니다. 대중의 정치 혐오증도, 총선 투표자 수보다 ‘스트릭트리 콤(Strictly Come)’ 댄싱 투표자 수가 더 많은 기이한 현상도 (“그렇진 않은데요, 존 경”) 크게는 이들 때문이라 할 것입니다. 민주주의에 매우 좋지 않은 현상입니다.” 그는 노동당 정부가 총애하는 신문은 후대하고 그렇지 않은 신문은 냉대를 하는 관행에 언론이 모두 순응하는 것에 실망감을 표시하면서 언론인들이 토니 블레어의 텔레비전 중계 회견에서 보인 무기력한 태도에 놀랐다고 덧붙였다.


그는 노동당 정부가 언론의 호감을 사려고 벌이는 활동에 대해서 극도의 혐오감을 보였다. 그는 뉴스 인터내셔널로부터 금박으로 장식된 초대장을 받고 비행기까지 타고 가서 회견에 참석한다는 것은 그로서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한다. “선출된 수상이 우연히 신문 사주가 된 선출되지 않은 사람들과 어울리며 지내는 것은 품위를 손상시키는 것입니다.” 하지만 뜻밖에도 토니 블레어가 지금 언론으로부터 부정적 평가를 받고 있는데 대해서는 찬성하지 않았다. 그는 정치인이 유권자들로부터 경멸을 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노동당 각료들조차 결정적 흠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언론이 깨달은 것 까지는 좋으나 그들에 대한 비판은 지나치다는 견해였다.


다음 우리는 그의 집권 당시 그에 대한 평가와 그 후에 나타난 역사적 평가 간에 차이가 있느냐 하는 문제를 다뤘는데, 그는 그 주제에 대하여 특별한 호감을 보였다. 현직에 있을 당시 형편없는 평가를 받았던 이 정치인의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은, 당연한 것이겠지만, 당당하게 그렇다는 것이었다. 그에 따르면, 1990년 취임 당시 그의 정부는 세 가지 중대 문제에 봉착해 있었다. 하나는 이미 잘 알려진 대로 언론과의 문제였고, 그 다음 문제는 보수당이 이미 11년 동안을 집권해 온 데다 언론이 “한물 간” 문제로 취급하기 시작했던 유럽문제였다. 나머지 하나를 그는 막연하게 “일련의 개인적 사건”들로 불렀다.

 

거리를 두면 진실이 보인다


당시 보수당은 유럽 문제로 분규에 휩싸여 있었는데, 그것에 역사적으로 비견할 만한 사건은 1840년대의 곡물법 개정 파동과 20세기 초 보호주의를 둘러싼 분규, 두 가지 뿐이라고 그는 말한다. “일련의 개인적 사건들”이란 당시 보수당 인사들이 관련된 섹스 스캔들을 일컫는 것임을 알게 되었는데, 그런 스캔들이 운 나쁘게도 그가 보수당 연례회의에서 “기본으로의 복귀”를 호소한 직후에 터져 나와서 그를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그가 뜻하는 ‘기본’이란 교육, 가족 윤리, 건전한 식사 등이었는데, 보수당 의원들이 이 방면에 그다지 출중한 인물들이 되지 못했다.

 
“거리를 두고 보면 실상을 더 잘 볼 수 있습니다. 그러려면 시간이 걸리지요. 학자들과 역사가들의 평가를 기다려야 되지요.” 그는 이제 논평가들이 1980년대에 시작된 붐’을 언급하기 시작했고, 고든 브라운(Gorden Brown)은  현재의 호황이 그때에 비롯한 것임을 잘 알고 있다고 덧붙인다. 존 메이저는 고든 브라운이 수상이 되더라도 별 기대할 것이 없는 것으로 유권자들이 인식한다는 점에 동의한다.

 

브라운이 설사 수상이 된다 하더라도 오래 가지 못할 것이라고 분명 그는 믿고 있다. 그는 데이비드 카메룬의 보수당 당수로서의 리더십과 그에 대한 언론의 논평에 대하여 말하기를 극히 주저한다. “그 사람은 유능하고 아마 수상이 될 것입니다”라는 말이 전부다. 그는 신 노동당을 멸시한다. “그들은 노동당의 혼을 상실했습니다. 나는 램버스에서 ‘구’ 노동당과 함께 자랐습니다. 그때 그들은 혼과 심장이 있었습니다. 나는 그들을 지지하지 않았지만 그들이 대변하는 것에 경의를 표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노동당을 보지 않는다. 브릭스톤은 그의 빌딩 반대 쪽에 있고, 그 쪽으로는 창문이 나 있지 않다.


편역 : 이민우(미디어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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