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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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에…
  • PD저널
  • 승인 2007.05.16 0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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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기억이다.


5월, 화사한 햇살 속에 아기를 안고 걷는 여자에게 화면 밖 목소리가 물었다. 
“5월…, 뭐라고 생각하세요?”
좀 뜬금없다. 
“5월이요?”
TV 속의 여자는 잠시 머뭇거렸다. 
“뭐랄까… 슬프고 가슴이 아리지요….”
여전히 웃음기가 남아있는 여자의 입술이 가늘게 떨렸다.

광주 충장로에서 질문을 던졌던 그 PD 역시 가슴이 아렸을 것이다. 여자의 가슴 속에 있는 것이 슬픔만은 아니라는 것을, 분노도 함께 있다는 것을 그도 알았을 것이다. 그의 가슴 속에도 분노의 마그마가 회돌이치고 있었을 것이다.

그때는 그랬다. 그 슬픔을, 그 두려움을, 그 분노를 기억해야 한다고 했다. 한풀이하자는 게 아니라, 복수하자는 것이 아니라, 그런 끔찍한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기억해야 한다고 했다. 신문은 검열 속에 깎여 나갔고, 검열받지 않은 뉴스를 내보낸 방송은 골방으로 끌려가 몽둥이찜질 당했다. 더러는 말할 수 없는 자괴감에 사직서를 던졌다.

5월이 가면 6월이 온다. 5월은 6월과 맞닿아 있다. 달력 속에, 하루하루 지나가는 시간의 흐름 속에 맞닿아 있다. 맞붙어 있다. 우리들 기억 속의 5월과 6월은 한 달력 속에 있지 않다. 1980년과 1987년, 7년의 거리에도 불구하고 5월과 6월은 단단하게 접착되어 있다. 5월은 6월이 되어서야 비로소 완성되고 6월 또한 5월이 없이는 완성되지 않는다. 

그때는 그랬다. 7년 전으로 돌아가지 말자고, 절대로 그러지 말자고 했다. 돌아가서는 절대로 안 된다고 했다.

그런데 어떤가? 다시 20년이 흘렀다. 정치권력, 27년 전으로 돌아가 버렸다. 출발점이었던 5월은 보기 좋게 잊혀졌다. 변했다고? 그때랑은 다르다고? 세상 모든 것이 다 변해도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변하지 않는 것으로 만 가지 변화에 대처하는 법이다. 세상이 변했다고, 그래서 변해야 한다고 변명하지 말자. 차라리 배신했다고, 아니 처음부터 다른 꿍꿍이속이 있었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편이 낫다.

그 기막힌 역행과 역류를 온몸으로 막았어야 할 언론, 더한 잰걸음으로 돌아가 버렸다. 아니, 스스로 권력이 되어버렸다. 언론운동? 마찬가지로 권력 그 자체가 되어버렸다. 아니면 권력이 되기 위해 아등바등 정치꾼 흉내를 낸다. 그도 아니면 치매상태거나.

5월의 한 가운데에 있는 이번 주에는 유난히 언론 관련 토론회가 많다. 언론탄압사니, 참여정부의 언론정책이니 하는 주제들에서는 정치권력에 대한 불만이 묻어난다. 당연한 문제 제기다. 다음 주에는 강동순 위원에 관한 토론회도 열린다. 그는 비뚤어진 권력의 표지이다. 언론개혁운동의 위기라는 주제도 눈에 띈다. 위기라고 표현한 걸로 보아,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역시 당연한 반성이다.

중요한 것은 이런 통렬한 자기반성과 문제 제기가 기념행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5월이 매년 온다고 해마다 5월만 되면 머리 조아리고 고하는 고해성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하나님은 그 죄를 사해줄지 모르지만, 역사는 용서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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