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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정 CBS PD(이슈와 사람 제작·진행)

 

‘이슈와 사람이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마련한 특별기획 5부작 신가족백서! 우리사회의 다양한 가정의 모습을 찾아본다’

 

이러한 모토 아래 우리의 특별기획은 시작됐다. 비혼자 가족, 재혼 가족, 맞벌이 이산가족 여기까지는 좋았다. 독특한 가족들이 ‘우리가 원하던’ 바로 그 인터뷰를 술술 해주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결혼이민자 가족을 만나는 날이었다. 외국인노동자센터의 상담사였던 한국인 여대생과 파키스탄 불법 이주노동자의 결혼 과정을 허심탄회하게 듣는 ‘기대되는’ 인터뷰였다.

“제 남편은 저를 보고 첫눈에 반했다고 합니다. 저도 그를 사랑했지만 파키스탄인과 결혼을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많이 망설였습니다. 막상 제가 결심을 하고 난 뒤에도 가족들의 반대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습니다. 그 힘든 과정을 말로 다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이지요.” 부인 정찬향 씨는 예상대로 한국사회의 편견과 그로인한 어려움을 생생히 말해주었다.

“그럼 여기서 남편 아사드 씨를 연결해 봅니다. 아사드 씨! 아사드 씨가 가장 힘들었던 점은 어떤 건가요?” 나의 당연한 질문이 이어졌다. 그러나 파키스탄 남편의 더듬거리는 말투로 돌아온 답이란 전혀 당연하지 않았다. “저는.. 어려운 게.. 별로 없었어요.. 한국 사람들... 다 잘 해주고.. 괜찮아요.” 엥? 다 잘해주고 괜찮다고? 이게 아닌데...

“아사드 씨, 솔직하게 말씀해주시는 자리니까요 어려웠던 에피소드들을 말씀해 주세요.”아무리 구체적인 답을 원해도 그의 대답은 괜찮았단다. 일단 녹음을 끊었다. 앞에서 말한 아내의 말과 남편의 말이 다르니 진행이 불가능했다. 부인에게 남편을 설득해달라 부탁을 하고 녹음을 하루 연기했다.

대체 그는 왜 그랬을까? 제작팀 사이에 토론이 붙었다. 한국말이 서툴러서도 아니고 고생도 보통 고생이 아니었다고 뻔히 들었는데.... 우리의 결론은 거의 모아졌다. 불법 이주노동자로 이 땅에서 한국인 여자와 결혼한 그는 그동안 말 못할 과정을 겪으면서 한국인이 두려워졌던 것이 아닐까.   

다음날 녹음 시간. 우리는 남편 아사드 씨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제가 다니던 공장에서 제가 한국인과 결혼한다고 하자 ‘한국에도 결혼 못한 남자가 수두룩한데 네가 어떻게 한국여자와 결혼하느냐’고 혼이 났습니다. 그런데 괜찮습니다.” “장모님을 처음 만나던 날 무거운 짐을 들고 계시 길래 들어드리겠다고 했더니 제 손을 탁 치시면서 됐다고 하시더라구요. 그런데 후에는 괜찮아졌습니다.” 그의 말 뒤에는 늘 ‘괜찮습니다’ ‘이해합니다’가 따라다녔다. 우리의 생각이 맞았다. 그는 한국에 대해 나쁜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가 두려운 것이었다.

이주노동자, 그들은 한국인의 따가운 눈총도 이해한다는데 왜 우리는 그들을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걸까? 왜 이해하지 않으려는 걸까?

인터뷰를 마치려는 내게 그는 황급히 한마디를 덧붙였다.

“이것만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사랑한 건 한국인 정찬향이 아니라 그냥 정찬향이라고. 한국인 여자가 아니라 그냥 여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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