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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득재 대구가톨릭대학교 노어노문학과 교수

 

프랑코 모레티는 자기의 저서 ‘근대의 서사시’에서 완전히 소외된 주변부 국가도 아니고 충분히 가진 중심부 국가도 아닌 반주변부 국가의 비극을 독일의 괴테가 쓴 ‘파우스트’에서 찾는다. 파우수트의 욕망은 배제에 의한 좌절감과 중심으로 진입하려는 열망이 충돌하면서 파국으로 치닫는다.

 

파우스트는 19세기의 독일에만 있지 않다. 일본의 따돌림과 중국의 추격을 이야기하는 노 무현 대통령과 삼성 이건희 회장이 바로 21세기 판 한국의 파우스트들이다. 욕망은 언제나 주변부에서 반주변부로, 그리고 다시 중심부로 흘러가는 것인가. 세계의 중심을 차지하려는 국가와 자본의 욕망은 세계의 한 가운데를 향해 질주하고 있다. 세계체제에서 ‘하류인생’, ‘왕따’로 살아온 좌절감이 너무 컸던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뭐 중뿔나게 잘났다고 1996년 동아시아에서 1등으로 OECD에 가입하더니 동아시아의 국가들 중에서는 아무도 하지 않는 자유무역협정을 1등으로 미국과 덜컥 해버렸다. 선진국으로 가겠다고 과학입국 운운하면서 신성장동력산업을 키우리라 공언했던 일은 어찌 되었는가. 세계 1등으로 환자맞춤형 배아줄기세포 수립에 성공했다고 떠들다가 사기행각으로 끝나지 않았는가. 황우석 사태는 필자가 보기에 중국과 일본 사이에 끼여 있는 반주변부 국가가 겪는 비극의 전주곡으로 여겨진다. 그래서인지, 그 전주곡의 분위기는 사뭇 불길하기만 하다. ’과학입국‘ 구호가 삐걱한 마당에 이제는 ’FTA입국‘이라도 하자는 것인지 알 길이 없다.

 

중국과 일본 사이에 끼여 있는 반주변부 국가의 비극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뭐든지 1등 안 하면 좀이 쑤시는 게 한국이다. OECD 30개 회원국가 중에서 한국의 자살률은 연속 1위를 차지하고 있다. 2005년도 통계로 하루에 평균 34명, 1년에 1만2천 명 정도가 자살한다. 자살률만 1등이 아니다. OECD 30개 회원국가 중 한국의 노동시간은 연간 1120시간으로 1위다. 프랑스의 2배에 이르는 최장의 노동시간이다.

 

토플도 마찬가지다. 2006년 토플 응시생 54만 명 중 한국의 응시생은 13만 명(20%)으로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몸매와 얼굴을 취업용 자본으로 활용하는 한국 사회에서 슬림바디에 대한 열망은 대단하다. 런던대학 보건역학 조사팀이 전 세계 22개 나라 여대생 다이어트를 조사해 본 결과 한국의 여대생들 77%가 다이어트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나 이것 역시 1등을 차지했다.

 

필자가 알지 못하는 한국의 1등 사례는 이것 말고도 얼마든지 더 있을 것이다. 선진국병이라는 중증을 앓고 있는 바에야 금메달 금빛 환각 세례를 듬뿍 받고 있을 터이니 말이다. 2006년도 한국의 브랜드가치는 돈으로 환산해 8659억 달러로서 세계 10위를 차지한다. 이것은 2005년에 비교해 3단계 업그레이드 된 것이다. 그래도 고지는 아직 멀었다.

 

브랜드 가치가 1위를 차지할 때까지 반주변부 국가의 욕망은 지속할 것이기 때문이다. 국가와 자본의 이러한 욕망은 개인의 욕망을 심각하게 왜곡시킨다. 사각의 링에 사는 한국 사람들은 상대방을 죽이는 데에 아주 익숙해 있다. 상대방을 죽이고 내가 1등으로 올라서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는 정글의 법칙은 세계 1위를 차지하려는 국가와 자본의 욕망이 개인에게 퍼트린 치명적인 바이러스다. 이 바이러스는 오늘도 증식하며 한국 사회를 휘젓고 다닌다.

 

대학서열화, 우열반, 영재반, 대학평가 1위 등등, 한국 사회에 사는 사람들은 누구든지 사회적으로 유리한 고지에 깃발을 꽂으려고 무던히도 애를 쓴다. 그러다보니 한국의 행복지수는 102위에 머물러 있다. 2005년도 한국의 부패인식지수(CPI)도 5점으로 159개 국 중 40위를 차지했다.

 

이 지수는 10점 만점으로 점수가 높을수록 국가의 청렴도가 높은 것인데,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는 사각의 링에서 생존하자면 부패를 무기로 삼을 도리 밖에 없다. 통계적으로 45%가 소득을 탈루시킨다고 하지만 변호사 의사들은 자기 수입의 30%만 신고한다고 한다. 우리나라 탈루소득의 규모가 국가예산과 맘먹는 2백조에 이른다 하니 행복지수, 부패인식지수가 세계 1등으로 올라서는 것은 정말 불가능한 일인가 보다. 이것이 불가능하다면 사회적 연대는 다 물 건너 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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