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산 넘어 죽음을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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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산 넘어 죽음을 넘어
  • PD저널
  • 승인 2007.05.25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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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6일 에베레스트 남서벽 코리아 신루트를 개척중이던 박영석 원정대의 오희준, 이현조 대원이 숨진 것과 관련해 신언훈 SBS 제작본부 PD가 추모사를 보내왔다. 고 오희준, 이현조 대원의 유해는 26일 밤 11시 25분 인천공항에 도착할 예정이며 이들의 영결식은 27일 오전 11시 서울대병원에서 대한산악연맹장으로 치러진다. <편집자>

 

 


 

지난 5월 16일 한참 베링해 대탐험 2부를 편집 중에 네팔에서 비보가 날아왔다. 에베레스트 남서벽 코리아 신루트를 개척 중인 박영석 원정대의 오희준, 이현조대원이 눈사태로 실종되었다는 소식이다. 몇 시간 지나 두 사람을 찾았다는 소식을 듣고 안도의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럼 그렇지 그들이 누군데 그렇게 쉽사리 산에서 사라질 수 있겠어. 그러나 그건 순전히 나의 바람이었다. 곧 이어 다시 연락이 왔다. 그들을 찾긴 했어도 그건 산 모습이 아니라 싸늘한 시신이라고.


 오희준대원이 베링해 취재 중에 나와 한 솥 밥을 먹으면서 웃고 했던 것이 바로 두 달 전이었다. 나는 한동안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런데 모니터에 보이는 오희준의 얼굴은 그윽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보고 있는 게 아닌가. 그 순간 나는 거의 통곡할 뻔 했다.


 베링해 원정에 떠나기 앞서 오희준대원과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그는 자기도 그런 위험한 곳을 갈 때 늘 두렵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최악의 순간을 마음에서 떨쳐 버리려고 애쓴다고. 두렵고 위험하다는 생각에 함몰되면 불안해서 제대로 산행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나를 감동시킨 건 한계에 도전하면서 느끼는 오대원의 감정이다. 그는 위험한 도전을 통해 생명의 위협이 없는 안전이 보장된 산행에서는 도저히 느낄 수 없는 쾌감을 맛본다고 했다. 이런 감정이 주위사람들에게 무책임하게 들릴지 몰라도 그건 마약과도 같은 전율을 준다는 것이다. 물론 그 쾌감 때문에 그 위험스런 상황에 자신을 던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만큼 히말라야 고산등반에 따르는 위험이 크다는 반증일 것이다.

 

산악인이 아니면 그냥 평범한 농부가 되었을 거라는 오희준, 그는 타고난 산악인이었다. 그는 남보다 고소적응이 뛰어나고 괴력에 가까운 체력을 지녔다. 오대원은 모두 다 부모님 덕이라면서 겸손해 했다. 이제까지 히말라야 8000m 고봉을 10개를 오르면서 그는 한번도 실패하지 않았다. 도전할 때마다 100% 정상을 밟았다. 그는 이런 기록에 부담을 느끼곤 했다. 어렵다고 생각이 들 때 돌아서는 것도 용기인데 아직 그런 결정을 내릴 상황에 처하지 않은 게 자랑이 아니라면서.

 

▲ 2004년 당시 박영석 대장과 함께 남극점 탐험에 나서 성공한 故 오희준, 이현조 대원. ⓒ SBS


나는 베링해 원정 가운데 러시아 아나디르에서 오희준대원이 대원들의 저녁을 준비하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선배님들이 먹을 닭 스프를 끓인다면서 정성스레 음식을 준비하던 오대원, 그는 속 마음이 참으로 따뜻하고 의리를 생명처럼 여기는 진정한 산악인이었다. 나는 그를 10년 가까이 지켜보면서 저런 후배가 있으니까 박영석 대장이 산악 그랜드 슬램을 달성할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을 늘 하곤 했다.


오대원과 함께 에베레스트 남서벽 신루트 개척에 나섰다가 함께 죽음을 맞이한 고(故) 이현조대원, 그는 원정을 나갈 때마다 매번 나에게 안부 전화를 하던 다정한 사내다. 그의 목소리가 아직도 내 귀에 생생하다. “저 현조예요. 이번에 낭가파르밧에 다녀올게요. 갔다와서 안부전화 드릴께요.”


나는 정상공격에 나선 그가 한동안 연락이 두절되어 마음 졸인 기억을 갖고 있다. 그는 2005년 낭가파르밧 루팔벽을 통해 정상을 밟는 데 성공했다. 1970년 세기의 철인 라인홀트 메스너가 루팔벽을 통한 낭가파르밧 정상 등정 후 35년 간 한 번도 깨지지 않은 기록으로 한국산악계의 쾌거였다. 이현조대원은 그 공로로 2005년 대한민국 산악대상을 받을 정도로 촉망받던 산악인이다.


나는 2004년 박영석대장과 함께 남극원정을 하면서 이현조대원이 남긴 메시지를 잊지 못한다. 남극 얼음왕국에서 크리스마스를 맞이해 대원들이 한 마디씩 남긴 말이다. “중단 없이 전진할거구요, 한국에 들어가서도 열심히 살 것입니다. 주위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사랑한다고 표현 하세요. 사랑은 표현하는 거랍니다.”


나는 베링해 대탐험 2부 편집을 서둘러 마치고 5월 19일 네팔로 향했다. 사랑하는 두 산악인, 아니 친 동생 같은 희준이와 현조에게 조금이라도 빨리 사랑한다는 말을 해주기 위해서다.


희준이와 현조는 에베레스트 남서벽 7800m 캠프4에서 폭설을 동반한 악천후로 텐트가 붕괴되면서 참변을 당했다. 다행히 시신을 수습하긴 했지만 1300m나 추락한 시신은 온존하지 못했다. 박영석대장은 두 대원의 시신을 가능한 한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리기 위해 밤 새워 몸을 맞췄다고 한다. 그날 박대장은 10년 이상 동고동락한 두 후배의 시신을 껴안고 밤을 지새웠다. 나는 보지 않아도 그 광경을 그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도착한 날 시신은 급히 카트만두로 후송되어 왔고 눈에 들어온 박대장은 너무나 초췌하여 거의 유령처럼 현실감이 없어 보였다. 그토록 아끼고 믿었던 후배 두 명을 한꺼번에 잃은 박대장은 살아있어도 산 목숨이 아니었다.


 5월 20일 유가족의 동의를 얻어 두 대원의 시신은 라마승이 주재하여 화장을 했다. 그렇게 희준이와 현조의 육신은 한 줌의 재로 사라졌지만 그들의 등반은 전설로 남았다.
고(故) 고상돈씨의 에베레스트 등정 30주년을 기념해 박영석 원정대는 에베레스트 남서벽에 코리아 신 루트를 내던 중이었다. 남서벽 루트 개척에 성공했던 1975년의 영국의 크리스 보닝턴대는 108명의 대원이, 82년 구 소련대는 27명의 대원과 엄청난 물량공세가 성공의 밑거름이었다.

 

박영석원정대는  대원 6명과 세르파 4명으로 히말라야에서 손꼽히는 난 코스에 도전한 것이다. 남서벽은 정상까지 수직의 벽 높이만 2500m에 달해 난다 긴다 하는 세르파들조차 남서벽 등반은 위험하다고 대부분 내 뺀 상태였다.

 

▲ 서울시 강남구 역삼동에 마련된 고 오희준(사진 왼쪽) 이현조씨 빈소 모습.

 


오희준, 이현조대원은 8100m까지 루트를 뚫는 데 성공하고 7800m 캠프4에 내려와 쉬는 도중에 참변을 당한 것이다. 이제 200m 만 더 올라 8300m 능선에만 붙으면 거의 성공한 것이나 진배없었다. 5월 15일까지 그들의 등반은 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에 모인 수십 팀의 외국 원정대에겐 주목의 대상이었다. 저들이 누군인데 저 거대한 남서벽을 저토록 잘 오르는지 모두들 감탄을 금치 못했다. 산을 아는 사람들에겐 그들의 등반모습은 거의 예술에 가까웠다. 그들은 그렇게 불꽃같은 산행을 끝으로 하늘나라로 갔다.


이번 사고로 한국 산악계는 차세대를 이끌 중견 산악인 두 명를 잃었다. 나는 1997년 박영석 대장이 마나슬루를 도전할 때부터 2005년 북극점에 도달, 산악 그랜드슬램을 달성할 때까지 그의 도전 인생을 ‘히말라야의 사나이’시리즈로 다큐멘터리를 제작해왔다.

 

10년 넘게 16편이 넘는 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 나도 박대장, 오희준, 이현조대원과 함께 히말라야 설산과 남북극해 얼음바다를 헤맸다. 2000년 K2 원정 시에는 한 달간 두 대원과 함께 베이스캠프에서 동고동락한 적도 있어 산악인의 생활을 어느 정도 안다고 해고 과언은 아니다.


 그래서 하는 말이다. 이제 산악인들에게 왜 산에 가느냐고 묻지 말자. 죽을지 모르는데 왜 그 위험한 산에 가느냐고 제발 묻지 말자.  산은 그들의 삶 자체고 인생이다. 산을 떠나면 그들은 아무 것도 아닌 존재가 된다. 그만큼 그들은 산을 사랑하고 자기 삶에 충실하려고 한다. 적어도 PD들은 그런 질문을 해서는 안 될 것 같다. PD는 왜 프로그램을 만드는가?


오희준대원의 어머님은 오래 전에 이런 날을 대비해 아들의 수의를 준비해 두었다. 나는 그저 고개 숙여 고(故) 오희준, 고(故) 이현조 대원의 명복을 빌 뿐이다.

 

 

 

 

 

 

 

SBS 제작본부 신언훈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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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람 2007-05-29 10:28:58
형, 오래간만입니다. 형의 가슴 속 목소리가 담긴 글도 참 오래간만에 보는군요. 늘 건승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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