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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팀에 참으로 존경하는 두 분의 선배가 있다.이응진 피디와 이녹영 피디. 이응진 선배는 내가 만든 데뷔작(‘아빠는 조감독’)을 보고 이렇게 말씀하셨다.‘시청자들이 재현이와 같이 뛰었을까?’ 무슨 말인고 하니, 조재현씨가 영화 조감독을 하는 주인공이었는데, 아내가 가진  둘째 아이를 남편의 꿈을 위해 아직은 가정에 묵이지 말고 영화일을 더 하라는 의미에서 유산시키려 한다고 하는 말을 듣고 촬영장에 와서는 자신의 꿈을 접고 아내에게 유산을 막으려고 가는 장면에서 조재현이 촬영장을 박차고 달려가는 걸 시청자들이 응원하며 그래 잘뛴다, 어서 뛰어라 하면서 같이 뛰었을까를 말한것이다. 즉 주인공의 감정과 관객의 감정이 같이 가는가를 이야기한  것인데 나는 이것을 감정업기라고 이름붙이고, 드라마를 할때마다, 영화를 볼때마다, 아니 모든 대중예술을 대할 때 기준으로 삼는다. 사실 극중 인물과 보는이들의 감정이 같이 가지 못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나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소재로 한다고 하자 이녹영 선배는 이런말씀을 하셨다. ‘그래,너를 아는 사람들은 보면서 재미있을 것이다. 하지만 명심해라. 너의 목표는 너를 모르는 사람들이 보고 느껴야할 재미다’ 두분의 말씀을 합하면 일반인들에게 감정업기가 가능해야 한다는 것인데,이게 어떻게 접근하면 가능할 것인가?  하나님은 이렇게 지혜를 가르쳐 주셨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마태 5:7) 이건 뭔가를 주고 받는 거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긍휼의 사전적 의미는 “남을 불쌍히 여겨서 돕는 것”이지만 성경으로 눈을 넓혀서 보면,인자, 자비, 사랑, 불쌍히 여김 또는 민망히 여김이다. 우리 인간을 대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긍휼은 동일시의 마음이다.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감정이입’이라고 하지만,이말이야말로 감정을 업기, 다른말로 하면 감정의 공유를 하게 만드는 키 포인트다.


나의 영화에서 남자 주인공은 현재 조재현씨가 하기로 되어 있는데,우리 모두는 안다. 실제 조재현씨가 장애인이 아니라는 것을. 그러니 어떻게 그가 연기하는 장애인의 연기에 우리가 공감할수 있겠는가? 연기력으로? 아니다. 우리가 인물에 공감하는 것은 그가 가지는 처지와 우리의 처지가 같다고 느끼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영화에서 보여주어야 할 것은 장애의 구체적인  언급이 아니라 장애로 인해 갖게 되는 인간으로서의 보편적인 상황이다.


이 보편성에 의하여 동일시가 확립된다. 이 보편성을 얼마나 잘 보여주느냐에 따라 공감대의 형성이 가능해 지고 동일시 되면서 감정 업기가 가능해 진다. 관객이 주인공과 같은 장애를 입지 않으면서도 어떻게 동일시 할까.


나는 이것을 장애로 인한 관계의 상실에서 찾으려 한다. 사실 현실의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경우에서 이 관계의 상실에 처해 있나...보는 이들이 영화에 나타날 관계의 상실과 이를 극복하는 회복에서 자신의 처지를 돌아보고 방향성을 찾기를 소망한다.

 

김영진 KBS 드라마 1팀 PD


1987년 KBS에 입사해  <사랑하세요> <야망의 전설> <아름다운 비밀> 등을 연출했다. 그는 2000년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한 뒤 4개월간 식물인간 상태로 누워있었다. 기적적으로 의식을 찾은 그는 피눈물나는 노력 끝에 휠체어에서 일어나 지팡이에 의지해 걸을 수 있게 됐다. 현재는 영화제작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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