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길화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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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길화 칼럼
어떤 반사이익
  • 승인 1999.04.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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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0|방송법 개악 시비가 연일 방송가를 달구고 있다. 국민회의와 자민련에서 정책 조정을 했답시고 내놓은 법안은 kbs 예산권 부분만 잽싸게 바꾸었을 뿐 방송개혁위의 문제 많은 내용을 사실상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어서 방송 현업단체와 시민단체의 분노를 사기에 족하다. 이를 두고 방송인총연합회의 성명은 마이동풍(馬耳東風), 오불관언(吾不關焉)식이라고 규정했을 정도니 그 실망과 배신감을 헤아리기에 어렵지 않다.50년만의 선거혁명에 의한 첫 정권교체라고 큰 기대 속에 국민의 정부가 출범하던 것을 지켜본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고 생각하니 참으로 허탈하다. 아무리 사람 마음이 어디 갈 때 올 때 다르다고 하기로서니 무슨 100대 공약이니 무슨 정책진단이니 하며 민주주의 하겠다고, 개혁 하겠다고 언명한 여러 약속들의 잉크도 채 마르지 않았을 것인데 이래도 되는 것인가. 방송법만 놓고 단적으로 말하면 “국민회의가 야당일 때 가졌던 생각을 그대로 실행하면 된다.”(전영일 전 kbs 노조위원장, 언개연 방송법 토론회에서)그런데 이런 식의 지적에 ‘집권의 경험이 없던 야당 시절에 한 주장을 책임있는 공당(公黨)에서 어떻게 다 수용할 수 있겠는가’ 하는 분위기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쉽게 말해 ‘야당 때는 여당에 비판적인 사람들의 지지를 얻을 욕심으로 잔뜩 문제제기를 해놓았는데 막상 정권을 잡고 보니 생각이 달라졌다’는 얘기다. 권위주의 시절 국민들은 보수야당의 한계를 알면서도 그래도 정권 교체의 현실적 대안이라는 이유로 지지를 보냈다. 그래서 비전을 가진 정책 정당이기를 기대하고 거대여당의 견제세력이기를 소망한 것이 다수 국민들의 소박한 정치의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랬는데 그것이 고작 정권도득(政權圖得)을 위한 ‘전술’에 불과했으니 이 어찌 실망스럽지 않을 수 있으랴.물론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것이 정치 혐오감만 조장할 뿐 건전한 비판에는 도움이 안 된다는 얘기쯤은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게 무섭다고 당장의 할 말도 못 할 수는 없다. 지금처럼 국민회의가 할테면 해보라는 식으로, 막말로 ‘못먹어도 고’를 외치고 있는 시점에서는.재미있는 것은 이즈음의 한나라당이 보여주는 풍경이다. 한나라당은 공동여당이 방개위 시안을 대부분 통과시키자 ‘방송장악 음모’라고 비난하면서 시민단체와 연대해 방송법 제정을 저지한다는 입장을 천명했다고 한다. 세상이 바뀌긴 바뀐 모양이다.명색이 야당인 이들의 주장을 좀더 들어보자. 한나라당은 공동여당이 방송위에 방송심의권과 정책권, 인사권까지 부여해 막강한 행정기관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으며, 위원 선임 방식에 있어서도 독립성과 대표성을 담보할 수 있도록 국회의장이 6명, 행정부가 3명을 추천해 대통령이 임명하는 방식을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mbc 민영화와 관련해서도 특정 재벌에 넘어갈 우려가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니 매우 ‘대견한’ 일이 아닐 수 없다.이들이 말끝마다 ‘방송장악’을 들먹이며 “(공동여당의 방송법안이) 내년 총선에서 승리하고 장기집권을 획책하기 위한 의도”라고 비난했다고 하니 점입가경이다. 공동여당의 법안에 그럴 소지가 없다는 게 아니라(없기는커녕 국민의 정부가 방송지배를 할 것 같아 온몸으로 저항할 태세를 갖추고 있다), 신한국당 당사 앞에서 “방송장악 음모 중단하라”며 썩은 달걀을 냅다 던진 지 엊그제 같은데 그 때와는 정반대의 말을 듣고 있자니 온몸에 두드러기가 돋을 지경이다. 민정당, 민자당, 신한국당, 한나라당으로 이어지는 구 여권이 과연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가는 스스로 더 잘 알 것이다.우리의 비극은 그 다음이다. 국민회의가 마이동풍(馬耳東風)으로 제 갈 길을 간다고 하니 다급하고 아쉬워진 시민단체나 언론단체가 한나라당을 기웃거리는 희대의 코미디가 전개된다. 바로 어제까지 방송장악의 화신이던 자에게 단지 그가 오늘의 여당과 반대되는 주장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추파의 대상이 된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돼 합종 연횡이 이루어질 판이다. 일관성 있는 정책과 철학보다는 정략과 전술만이 횡행하는 가운데 상대방이 악수(惡手)를 두면 여기에 편승해 국면을 전환해온 것이 따지고 보면 우리네 정치의 한 단면이다. 한나라당을 탓할 일이 아니다. 오죽하면 한나라당을 기웃거려야 할 정도로 빌미를 준 국민회의가 더 문제다. 그러고 보니 국민회의도 지난 날 구 여권이 자행한 악수(惡手)들의 누적적 결과로 오늘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엄습한다. 결국 모든 것이 한낱 반사이익이었던 것이다. <본보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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