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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영 (KBS PD)

자신을 좀 알아달라고 그러는 겁니다. 날 좀 사랑해달라고 그러는 겁니다. 오냐...널 사랑해. 그러면 될 것을, 너 잘 한다, 그러면 될 것을, 굳이 또 안 알아주려고 애쓸 것도 없는데, 나는 아직도 이런 식입니다. “그래 너 하는 거 봐서!” 그러다가 아니다 싶으면 바로 거부 들어갑니다. "넌 사랑받을 자격이 없어!" 인색하기 짝이 없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말은 얼마든지 과격하거나 세련된 변주가 가능하지만 까놓고 보면 대개가 그런 식입니다. 얄밉게 굴면, 비뚤게 치고 나오면 그 속에 사랑이 부족해서 목마른 에고를 봐야 하는데 아직도 미운 겉모양만 보입니다. 그런 미운 말들이 "날 좀 사랑해줘" "날 좀 알아줘" 이렇게 들리게 되면 좀 더 다르게 대응할 수 있을까요. 겉모양에 현혹되지 않고 안을 들여다 볼 수 있을까요.

안을 들여다 보면, 측은합니다. 한때 드라마 속에서 박신양이 그렇게 불렀듯이, 인간은 누구나 애기입니다. 한번 더 안아달라고 그러는 겁니다. 좀 덜 측은한 사람이 더 측은한 사람을 한번쯤 안아주는 겁니다. 그럼에도 그런 대응이 또 아주 쿨해야 합니다. 쿨하지 않으면 또 은근히 무슨 댓가를 바라는 마음이 자기도 모르게 싹틉니다. 내가 이렇게 해주는데 저것이 아직도 저래? 나의 노력에 대해 보상받고 싶은 마음이 한 켠에서 스멀스멀 자랍니다. 그런데 그런 마음은 상대를 돕거나 나를 돕는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효과가 나고 안 나고는 하느님이든 부처님이든 혹은 무자비하게도 랜덤한 물질계이든 알아서 하실 일입니다. 결국에는 안아주면서 놓아버려야 겠습니다. 어쩌면 안아주는 것보다는 놓아버릴 수 있는 마음이 더 중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둡고 낮은 주파수를 가진 사람들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똑같은 뉴스를 보고도 그것의 배후에 있는 세상의 비극성을 인식하고 마음 속으로 오래오래 되씹습니다. 자신을 지나치는 수많은 말들 중에서도 부정적인 암시를 지닌 것들만 추려내어 기억 속에 새겨 놓습니다.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또한 자신의 주파수에 갇혀 뚱딴지 같은 희망으로 또다른 삽질을 시작하듯이 어둡고 낮은 주파수의 사람들은 스스로 상처입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경제적 불평등이나 시스템의 문제를 포함하고 있으나 또한 그것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들이 TV를 볼 때를 상상합니다. 더 많이 가지지 못한 네 꼴을 보라고, 더 매력적이지 못한 너를 한번 비춰보라고 TV속의 목소리는 하루종일 그들을 닦달하고 있을 겁니다. (실제로 그런지 아닌지는 모르겠고 그들에게 그렇게 들릴 것이라는 얘깁니다.) 그리고는 TV 속의 세상은 위선적이고 폭력적이며 자신과는 소통할 수 없다고 여길 수도 있겠습니다. 그것이 분노와 공격성으로 폭발하기 전에 어떻게 하면 그들에게 말을 걸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그들을 안아줄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안아주면서 놓아버릴 수 있을까요. 그들을 방치해 두었다가 “사건”이 되어 터지면 “옳다구나” 달려드는 것이 두렵고 싫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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