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속한 경제성장에 따라 사회가 빠르게 변화하자 중국 정부는 언론부문에 대한 규제와 검열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런 움직임은 중국 미디어산업과 연관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는 트랜스아시아 로이어즈(TransAsia Lawyers)사가 펴낸 ‘중국미디어와 엔터테인먼트법(China’s Media & Entertainment Law)’ 최신판의 내용을 통해서도 뚜렷하게 감지된다.
이 책은 TV와 영화, 시청각부문, 인쇄매체, 광고, 이벤트관리 등 중국 미디어부문을 역사적 배경과 현황, 법제, 분야별 규제기구로 나누어 포괄적으로 소개하는데 그 내용과 서평을 아시아미디어(Asia-Media) 2007년 2월 20일자에서 간추려 소개한다.
간부교체로 규제강화 흐름
중국 정부는 2005년 중반부터 갑자기 미디어부문에 대한 통제를 강화했다. 그에 따라 특히 TV부문이 영향을 많이 받았다. TV산업 운용은 근년에 비해 비교적 자유로웠지만 이젠 그런 흐름이 둔화되거나 부분적으로는 역류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일부에서는 이런 변화가 라디오영화TV관리총국(SARFT) 최고위 간부진의 교체와 함께 나타났다고 지적한다. 이유야 어쨌든 중국 정부는 미디어산업과 엔터테인먼트 부문을 통제하는 한가지 수단으로 관련 법규, 즉 미디어·엔터테인먼트법을 활용하고 있다.
이 책은 TV와 영화, 시청각부문, 인쇄매체, 광고, 이벤트관리 등 6개 부문으로 나눠 각 분야별로 지난날의 상황과 앞으로의 전망, 현행 규제환경 등을 소개하는 글을 실었는데 대부분이 정부 관리들이 집필한 것이었다. 더구나 SARFT는 이 책의 내용에 아무런 흠결이 없다는 점을 확인하면서도 관리들이 집필한 내용이 필자의 개인적인 견해일 뿐, 정부의 공식적인 견해나 입장을 반영하는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이 책은 1판이 출간되었던 2003년 이후 개정 또는 보정된 관련 법률과 법규 내용을 빠짐없이 수록했고 삭제되거나 수정된 내용은 부록 형태로 따로 모아 소개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외국인 투자자와 관련업계 뿐만 아니라 학자와 저널리스트, 정책 수립자들에게 쓸모가 많다.
미디어관련법의 규제가 강화되었다는 지적은 미디어산업 부문의 몇몇 움직임으로 뒷받침된다. 가령 지난해 11월 타임워너는 중국 영화시장에서 철수한다고 발표했다. 관련 법규가 개정되어 외국인의 영화사 합작투자 비율이 50%를 넘을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법규가 개정되기 이전에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영화사 합작투자 지분을 75%까지 끌어올릴 수 있었지만 2005년 말에 법규가 개정되면서 중국인 투자자가 50% 이상의 투자지분, 즉 경영권을 장악할 수 있는 지분을 갖게 됐다.
이같은 법규 개정 외에도 정부의 정책이나 방침 변경이 미디어 환경의 변화를 가져온 경우도 있다. 법규가 개정되지 않았음에도 관련 법규의 시행 방침을 바꾼 것이 그런 경우에 해당된다. 가령 외국 위성채널의 랜딩권(landing right)은 관련 법규가 그대로 있음에도 전과는 달리 중국 정부가 허가에 매우 소극적이다. TV 프로그램 제작사 합작투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2004년에 공포된 법규에 따르면 외국인 투자자들이 이런 합작투자에 참여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현재 그같은 합작투자가 동결 상태나 다름없다. 외국인의 신규 합작투자를 허가하지 않기 때문이다. SARFT는 2005년에 앞으로 특별한 허가를 받은 경우가 아닌한, 외국인 투자자에겐 TV 프로그램 제작 합작투자를 한 건만 허가할 것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미디어 개선조짐도 엿보여
이같은 법규 개정과 방침 변경은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중국 미디어 및 엔터테인먼트 시장의 성장 잠재력에 주목한 외국인 투자자들은 많은 제약을 받게 되었다. 세계적인 회계법인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즈(PWC)의 2006년 6월 예측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미디어 및 엔터테인먼트 시장의 규모가 2009년에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최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주로 광고와 광대역 인터넷 액세스부문의 강세에 힘입어 연 18%를 성장을 거듭하면서 2009년에는 일본을 압도하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외국인 투자자에 대한 이같은 규제보다도 더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인은 민주주의로 나아가거나 최소한 권위주의 체제로부터 벗어나려는 일련의 움직임이 뒷걸음질 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우선 미디어와 엔터테인먼트 분야에 대한 외국인의 투자 참여를 썩 달가워하지 않는 외에도, 미디어 전반에 대한 중국 정부의 태도가 경직되거나 강경해진 점이 이런 걱정을 뒷받침한다.
중국 정부는 올해 하반기에 개최될 제17차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를 앞두고 경제개혁에 따른 여러 가지 문제점을 점검하고 있다. 경제개혁 조치는 미디어산업에도 예외없이 적용되어 민간자본이 깊숙이 파고들었을 뿐만 아니라 미디어회사들이 갖가지 인센티브제를 채택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미디어 자유화에 대한 정부의 재고 분위기, 좀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다른 그룹의 정치인과 고위 공직자들이 미디어 자유화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게 된 것은 주로 변화의 속도가 너무 빠르고 또 이런 급속한 변화가 정치적 안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걱정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중국 미디어 환경이 어두워질 징조만 보이는 것은 아니다. 우선 중국이 현재 WTO 회원국으로서 경제가 세계 여타 국가들과 맞물려서 발전과 성장을 거듭하리라는 점이다. 게다가 2008년 올림픽 개최국으로서 전세계의 수많은 선수단과 취재진, 관광객들을 맞아들여야 할 처지다. 이런 상황에서 현재와 같은 엄격한 검열제를 그대로 지속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어차피 2008년 올림픽 경기에 즈음해서는 그런 미디어 검열과 규제를 완화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 때문에 중국에서 취재활동을 벌이는 외국 저널리스트에 대한 규제는 이미 상당부분 완화되었고 또 앞으로도 언론활동에 대한 규제와 억압이 중국의 국제적 위상에 어떤 악영향을 미칠 것인지를 진지하게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중국에서는 미디어 개혁을 모색하는 세력과 그에 저항하는 세력간의 다툼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점에 비춰볼 때 미디어 개혁이 중국에 큰 이득이 되거나 아니면 현재의 규제성 방침이나 정책을 그대로 밀고나갈 수 없다는 점을 중국 정부가 분명하게 인식할 때만이 미디어 자유화가 지속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정부는 미디어 통제의 속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렇다면 문제는 법제화한 규제성 내용은 어떤 것이고 이런 내용은 누가 만들며 그런 법규의 개정은 얼마나 용이한지, 그리고 법제화하지 않은 통제 방식은 어떤 것이 있느냐 하는 점이다. 이 책은 중국 미디어 환경과 관련한 이런 의문을 풀어주는 데 부족함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