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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이셔널리즘의 유혹에 빠지기 쉬운 언론의 속성상 날조기사(fake news) 또한 유혹의 제스처를 멈추지 않는다. 날조기사는 기자나 언론사에 의해 생산되는 경우도 있지만 정부의 강력한 의지로 조작되기도 한다.

가까운 예로 미국 정부는 2005년 전쟁에 대한 여론을 우호적으로 돌려놓기 위해 이라크 신문에 3억 달러를 쏟아 부어 긍정적인 뉴스를 보도케 했다. 또 대통령의 ‘낙오학생 방지법(No Child Left Behind)’을 지원하기 위해 고용된 보수 칼럼니스트 암스트롱 윌리엄스(Armstrong Williams)는 24만 달러를 받았다. 그의 독자들은 윌리엄스가 지출과 관련해 조사를 받기 전까지 만해도 돈을 받는 선전선동가인지를 알지 못했다.

컬럼비아 저널리즘 리뷰(Columbia Journalism Review)는 2007년 3/4월호에서 로버트 러브(Robert Love) 교수가 날조기사의 진상을 살폈다. 러브 교수는 컬럼비아 저널리즘 스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으며 ‘베스트 라이프(Best Life)’의 편집장을 겸하고 있다.

날조된 특종으로 돈벌어

날조기사의 역사는 오래됐다. 기록을 봐도 현대 미디어를 훨씬 앞선 8세기 로마 교황인 콘스탄티누스(Constantine)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에는 칙령이 ‘교황이 좋아하는 말’이어야 한다고 규정한 흔적이 있다. 그리고 18세기 영국의 신문은 조작과 사기 기사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날조기사(fake news)’라는 용어는 19세기말 미국에서 태어났다. 당시 눈부신 기술발전이 취재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면서 신문의 전성기를 불러 왔다.

새로운 기술이 가져온 충격은 과소평가할 수 없다. 전보에 이어 대서양 및 대륙 횡단 케이블, 주조 식자기, 고속 전자인쇄기, 망판 사진인쇄술이 개발됐고 무선도 유선전화에 자리를 물려줬다. 남북전쟁 후 인구가 2배나 증가하고 문맹률이 절반으로 감소한 미국은 새로운 뉴스를 끊임없이 요구했고 언론은 가능한 한 신속하게 기사의 양을 늘렸다. 새롭게 꾸며진 언론사 지국과 신문 협회가 안내 광고를 통해 젊은 남녀 기자들을 모집했다.

“기사 취재와 저널리즘을 무료로 가르쳐 드립니다.” 그리고는 수습기자들을 대거 투입, 일간지에 팔아먹기 위한 따끈따끈한 기사 발굴에 나섰다. 진실에는 고개를 돌렸다.
미디어 비평가 몽고메리 맥거번(Montgomery M、Govern)에 따르면 19세기 말 날조는 위험한 수준에 이르렀다. 그는 “날조 저널리즘(fake journalism)은 주로 언론사 지국, 신문 협회 같은 조직 등에서 생산돼 거의 모든 수도권 일요판 신문과 가장 센세이셔널한 기사를 찾는 많은 일간지에 공급됐다”라고 당시의 영향력 있는 월간지 아레나(Arena)에 기고했다.

언론사들은 그러한 ‘날조기사’로 엄청난 돈을 벌어들였다. 19세기 말 뉴욕과 샌프란시스코의 가장 높은 빌딩들은 대부분 신문사 소유였다. 그리고 언론이 초경쟁적인 사업이 됨에 따라 기자들은 기사를 날조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날조된 특종(fake scoops)을 훔치는가 하면 다른 기자들의 특종을 별다른 제재 없이 훔치는 것이 관행이 됐다. 시카고 AP는 의심스러운 고객이 제공한 정보로 함정에 빠졌다. 그 독자는 새벽 2시 대통령 그로버 클리블랜드(Grover Cleveland)가 암살당했다는 정보를 흘렸다. 시카고 AP는 사실 확인 없이 이 기사를 내보냈다. 다음 날 암살 기사는 전국의 신문에 보도됐는데, 손가락질과 비웃음을 산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황색 저널리즘과 결합해 전쟁 일으키기도

날조기사 축제에서 가장 큰 소리가 났던 것은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William Randolph Hearst)의 뉴욕 저널(New York Journal)에서였다. 전설적인 발행인이면서 황색 저널리즘(yellow journalism)의 기수인 허스트는 자신의 전성기인 1890년대에 두 가지 휘발성 강한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하나는 ‘행동 저널리즘(journalism of action)’으로 행동하는 기자는 범죄를 해결하고, 불우한 이웃을 도우며, 부패를 조사한다. 그리고 국가적이고 국제적인 영역에서 책임을 진다. 다른 하나는 ‘소박한 진실은 다소 협상이 가능한 상품’이라는 것이다. 특히 그러한 진실이 이윤이나 권력과 관련된 것이라면 무시돼도 좋았다.

1897년 날조기사의 대상은 휘발성을 띤 국제적인 것이었다. 1511년부터 스페인의 지배를 받고 있던 쿠바에서 폭동이 일어났으나 스페인에 의해 잔혹하게 진압됐다. 미국에서는 쿠바 독립에 대한 동정심이 일었고, 그러한 동정심은 전쟁을 일으켜서라도 독립된 쿠바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한 사람들 가운데에는 테디 루즈벨트(Teddy Roosevelt), 조셉 퓰리처(Joseph Pulitzer), 허스트 등이 포함돼 있었는데 이들은 공격이 적당한 대응 방법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맥킨리(McKinley) 대통령은 행동을 주저했다. 그래서  근대 언론사상 초유로 개인들이 자금을 댄 선전·선동이 시작된 것이다.

1898년 2월 15일 선전·선동은 진지하게 시작됐다. 미국 전함 USS 메인(Maine)호가 쿠바 아바나(Havana) 항구에 정박 도중 폭발해 승무원 266명이 사망했다. 허스트는 처음 범인에 5만 달러의 현상금을 거는 광고로 시작했다. 그리고 나서 모든 자원들을 이 폭발 사건과 관련된 수사 취재에 투입, 기자와 삽화가들을 대거 보트에 태워 쿠바와 키 웨스트(Key West)로 보냈다. 허스트의 ‘저널(Journal)’은 퓰리처의 ‘월드(World)’와 함께 쿠바에서 보내오는 기사를 게재하는 것은 물론, 폭발 책임을 스페인에게 뒤집어씌우기 위해 기사를 왜곡하기 시작했다.

경쟁지들은 “반칙(foul)”이라고 외쳤다. “언론의 역사에서 이 두 신문처럼  불명예스러운 행동을 한 적은 없었다”라고 고드킨(Godkin)은 뉴욕 이브닝 포스트(New York Evening Post)에 기고한 기사에서 이렇게 표현했다. 그는 덧붙여 “전체적인 사실의 잘못 해석, 독자를 자극하기 위해 고의적으로 계산된 기사, 그리고 제멋대로인 헤드라인”이라고 이들 신문의 기사를 평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헤드라인은 미국과 스페인의 싸움을 촉발시킨 것이었으며, 의심스런 증거로 국민들을 동요시킨 헤드라인이었다. 선전포고가 있었고 2주 만에 전쟁은 끝났다. 쿠바는 해방되고 미국은 3곳의 새로운 영토를 얻었으며 스페인은 서반부에서 완전히 영향력을 상실했다.

사진도 믿을 수 없어

물론 헤드라인을 날조할 수 있다. 그렇다면 사진과 믿을 만한 소식통의 진실은 믿을 수 있는가? 1920년대 망판 사진인쇄술 같은 사진 처리기술이 개발되면서 뉴욕 일러스트레이티드 데일리 뉴스(New York Illustrated Daily News) 같은 사진 중심의 타블로이드 신문이 생겨났다. 1924년에는 가십 기자 출신의 에드 설리번(Ed Sullivan)과 월터 윈첼(Walter Winchell)이 창간한 가장 타블로이드적인 사진 잡지 뉴욕 이브닝 그래픽(New York Evening Graphic)이 창간됐다.

포르노 그래픽이라는 별명을 얻은 이 잡지는 ‘콤포소그래프(composograph)’라는 사진 기술을 자랑으로 여겼다. 콤포소그래프는 사진을 찍을 수 없는 장면을 묘사하기 위해 실제 사진과 그림을 결합하는 기술이다. 이 잡지의 편집장은 당시 팝 스타 루돌프 발렌티노(Rudolph Valentino) 관련 기사로 엄청난 비난을 받았는데, 기사 내용은 하늘나라로 가서 이미 고인이 된 엔리코 카루소(Enrico Caruso)를 만나고 왔다는 황당한 것이었다. 헤드라인은 다음과 같다. “루디, 카루소를 만나다! 테너의 영혼이 말하다!(Rudy, Meets Caruso! Tenor’s Spirit Speaks!)”

전화의 등장으로 취재는 더욱 정확하고 신속하게 이루어질 수 있었다. 기사의 신속성은 보상을 받는 것이었는데 호외는 추가 수입을 보장해 주기 때문이다. 전화는 도심 지역에서 2명이 취재하는 시스템을 가져왔다. 한 명은 현장 취재, 다른 한 명은 기사 작성 등으로 역할 분담을 하는데, 당시 기자였던 맨켄(Men-cken)은 이러한 사실을 매우 못마땅해 했다. 다음은 그가 1927년 새로운 취재 시스템에 대해 쓴 글이다.

“언론은 지난 세대 미국 신문의 가슴과 영혼이었던 고참 기자들의 몰락으로 위기를 맞고 있다. 따끈따끈한 뉴스를 건지기 위해 길거리로 달려 나가는 현재의 세태는 과거의 장점들을 거의 파괴했다. 기자는 더 이상 보고 들은 것을 쓰지 않는다. 대신 그는 객관적인 기사작성 기자에게 전화를 건다. 그러나 사건 현장에서 수 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에서 전화에 매달려 있는 사람은 현장 기자가 묘사하는 생생한 현장을 완전한 글로 표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점을 지적해야 한다. 물론 기사작성 담당기자는 최선을 다하지만 그것은 미라가 사람이 아닌 것처럼 그러한 방식의 최선도 객관적인 보도는 아니다.”

물론 멘켄의 회상은 역사상 가장 최악의 날조기사를 양산했던 황색 저널리즘의 영광을 되돌아보게 한다. 그러나 멘켄은 10년 전 발생했던 신문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사기극에서 자신이 맡았던 역할은 까맣게 잊고 있다. 1917년 12월 28일자 뉴욕 이브닝 메일(New York Evening Mail)에 실린 멘켄의 기사 제목으로 욕조(bathtub)에 관한 날조 기사다. 

욕조 탄생 75주년과 달 이야기

“배관공도 축포를 쏘거나 국기를 게양하지 않았다”고 멘켄은 한탄했다. “주지사가 기도의 날을 선포하지도 않았다. 어떠한 신문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욕조의 75회 생일이라고 알려진 날이다. 멘켄의 기사는 욕조가 미국인의 생활에 찾아온 역사를 생생하게 그렸다. 백악관에 처음으로 욕조를 들여온 밀러드 필모어(Millard Fillmore)에 대한 칭찬도 함께 했다. “욕조가 미국에서 인정과 존경을 받았다.”고 표현했다. ‘잊혀진 기념식’ 은 매우 잘 쓴 기사라서 미라에 생명을 불어 넣은 것처럼 생활 속의 이야기로 되살아났다. 수십 개의 매체에서 그의 기사를 다루고, 비평하고, 분석하면서 미국 역사의 한 장으로 기록됐다.

날조기사는 이처럼 오늘날에는 황당해 보이지만 날조 기자들은 역사적으로 볼 때 코미디언이 아니었다. 그들은 멘켄과 같이 진실은 꼭 아니더라도 애매한 진실처럼 보이는 것을 재미있게 쓰는 기자들이었다. 근대적 언론 시대가 열린 초기 시절 날조 본능이 너무 편집국을 지배해서 오늘날 우리가 보면 놀랄 정도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서방의 잘 알려지지 않은 이상한 주간지에는 수백 건의 날조기사가 실렸다. 주제는 주로 이상한 애완동물, 기상이변, 거인, 인어, 술주정꾼 등이었다.

네바다주 버지니아 시티에서 발행되는 ‘지방 기업(Territorial Enterprise)’의 발행인이었던 마크 트웨인(Mark Twain)은 자신의 재능을 날조기사 실험에 발휘했다. “나는 술주정꾼을 매우 정교한 풍자로 살해하기로 결정했다” 기사의 제목은 ‘술주정꾼’이었다.

역사상 최초의 현대적인 주요 날조기사로 기록된 것은 1835년에 작성됐던 ‘위대한 달’이라는 기사였다. 뉴욕 선(New York Sun)에 시리즈 기사가 실리기 시작한 것은 늦은 여름인 8월 25일이었고, 그것은 야심찬 발행인 벤자민 데이(Benjamin Day)의 창작이었다. 데이도 다른 발행인처럼 신문이 잘 나가길 원했고, 소설의 형식을 이용했다. 그는 영국의 유명한 천문학자 존 허셀(John Herschel)경이 아프리카의 희망봉을 찾아가 자신의 새롭고도 강력한 천체 망원경을 시험하는 시리즈 기사를 내보내기 시작했는데, 있지도 않은 과학 저널을 인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서양 횡단기에 탈출한 동물 이야기까지

허셀이 달에서 본 것은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생명이었다. 식물과 동물뿐만 아니라 살아있는 인간이었다. 털이 나고, 120cm의 키에 거대한 날개가 달린 노란 색 피부의 인간이었다. “날개는 넓게 펼쳐졌으며 박쥐의 모습과 흡사했다.”

너무 멀리 나간 기사였지만 뉴요커들은 자신들의 눈으로 직접 보아야 했고 뉴욕 선의 부수는 단숨에 1만 5,000부를 넘어섰다. 달 위의 인간 기사가 날조였다는 것이 밝혀진 후에도 뉴욕 선의 인기는 계속됐다.

1844년 유명했지만 궁핍했던 에드거 앨런 포우(Edgar Allan Poe)는 잘 알려진 또다른 날조기사를 뉴욕 선에 제공했다. 포의 기사는 그 후 60년 후에나 가능했던 공기보다 가벼운 기구 여행을 묘사했다. 그로부터 30년 후 발행인 제임스 고든 베넷 2세(James Gordon Bennett Jr.)의 지시에 따라 뉴욕 헤럴드(New York Herald)는 센트럴 파크 동물원(Central Park Zoo) 조작기사를 게재했다. 제목은 “탈출한 동물들이 맨해튼의 거리로 쏟아져 나오다.” 이 기사는 계속해서 27명이 사망하고 200명이 팔·다리가 잘려 부상했다고 전했다. 주 방위군이 동원돼 사태를 장악했으며 현명한 뉴요커들은 집에 바리케이드를 쳤다.

1910년 워싱턴 포스트는 옛날 기사인 달 위의 인간에 대해 향수어린 기사를 썼다. 제목은 전혀 어리석지 않은 ‘정말 유명했던 날조기사’였다. 사실 위대한 날조기사의 어두웠던 시절에 대해 웃는 얼굴로 돌아보는 것이 신문 칼럼이나 특집에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그동안 언론은 4번째로 큰 산업으로 성장했다. 날조기사는 좋든 싫든 어렸을 적의 유산이다. 미국신문편집인협회(American Society of Newspaper Editors) 의장 마빈 크리거(Marvin H. Creager)에 따르면 1937년에 날조의 시대는 대부분 막을 내렸다.

그는 협회 15주년 기념식장에서 “날조의 시대는 끝이 난 것 같다”며 “그러한 기사로 장난을 치면서 즐거워했던 기자와 데스크의 시대도 함께 끝이 났다”고 선언했다. 크리거는 부수가 늘고 있는 시점에서 자신이 믿는 한 동료에게 “날조된 박스기사를 쓰는 기자들은 오늘날 신문의 세계에서는 설 자리가 없다”고 말했다.

시대도 변하고 사기꾼들도 변했다. 신문은 미국인 가정에 들어온 최초의 대중 매체이다. 신문은 모든 것을 할 수 있기도 하고, 카드의 조카처럼 재치 있는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영화·라디오·TV·인터넷 등의 대량 보급이 미국인들을 즐겁게 하고 있으며 위대한 신문 제국의 점심을 빼앗아 먹고 있다. 상당 기간 계속된 황색 저널리즘 당시부터 발행인들은 자신을 진실의 수호자이며 대중 봉사자로 여기기 시작했다. 편집인도 오피니언 페이지와 뉴스, 칼럼을 분리하는 지혜를 배워 부드러운 특집 기사에도 높은 수준의 진실성을 불어 넣었다. 제4대 산업계는 더 이상 날조기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날조기사의 그늘은 아직 유효하다

오늘날 독자들은 언론이 적합하고 정확한 정보를 줄 것으로 기대한다. 진지한 기자들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자신들을 개혁자·감시자·폭로자로 간주해 왔다.
그러나 박수는 잠시 멈추었다 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좋은 신념이 우리를 완벽하게 만든다는 가정은 어젠다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날조기사를 잘 구별할 수 있게 해준다. 지난해 미디어민주주의센터(Center for Media and Democracy)는 10개월의 기간 동안 69개의 방송국이 정부, 또는 기업이 만든 영상홍보자료(Video News Release)를 마치 객관적인 뉴스처럼 내보낸 사실을 확인했다. 많은 방송국의 보도국장들은 이러한 홍보물이 기자의 보도처럼 방송되도록 위장했으며, 그러한 사실을 시청자들에게 알리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부수는 떨어지고, 뉴스 예산은 줄고, 기자들은 혼란스런 때에 사기꾼들이 그동안 현대 언론이 쌓아놓은 권위를 이용하기 위해 기회를 엿보고 있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우리 중 일부는 독자와 시청자에게 날조와 정직한 기사를 구분하는 방법을 알리는 데 게으르다는 점이다.
허핑턴 포스트(The Huffington Post)는 워싱턴 포스트 인터넷판이 2008년 대통령 선거를 취재하기 위해 유명 코미디 방송국인 코미디 센트럴(Comedy Central)의 프로그램인 데일리 쇼(The Daily Show)의 진행자로 존 스튜어트(Jon Stewart)를 추천했다고 보도했다. 존 스튜어트는 워싱턴 포스트를 위해 일하는 사람으로 날조기사로 유명한 원로 정치인이다. 기사를 작성하는 현재까지 워싱턴 포스트는 이 사실에 대해 확인해 주지 않고 있다. 


편역 : 김상도(전 프레시안 플러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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