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월드와이드(언론재단 발행)]공포스러운 언론통제를 헤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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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월드와이드(언론재단 발행)]공포스러운 언론통제를 헤치며
  • 김종수 세계일보 정치부 기자
  • 승인 2007.06.18 16: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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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누군가 문을 두드리지 않을까 하는 공포심, 중국 내 특파원들은 어디를 가든 감시의 눈이 존재한다. 중국은 막강한 언론통제 기구를 가지고 있고, 언론이 진정한 자유를 누리는 것을 막는 엄격한 법체계가 존재한다. 외국 특파원들은 농담처럼 취재활동을 ‘모험 취재(committing journalism)’라고 부른다.

브리티시 저널리즘 리뷰(British Jornalism Review) 2006년  제4호에 실린  ‘중국을 벗어나 빛 속으로(Out of China, into the light)’ 에는 중국에서 일하는 외국 특파원들의 고충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필자인 도미니크 웨그혼(Dominic Waghorn)은 현재 예루살렘에서 활동 중인 스카이뉴스의 전 중국주재 특파원이었다.  

유일한 생계 수단은 유괴

기분이 묘한 주말이었다. 우리가 고용한 운전사조차 익히 알던  존재가 아니었다. 중국 사천지역으로 가는 긴 여행길에 운전사는 자신의 어두운 과거를 드러냈다. 그는 과거에 인민해방군의 사형 집행관이었다고 했다. 그는 사형 집행의 긴 행렬과 같은 섬뜩한 과거 기억에서 벗어나려 했고, 사형수들의 내장을 얻기 위해 그들의 목숨을 끊을 때도 있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한번은 희귀한 혈액형을 가진 사람이 최종 판결이 내려지기도 전에 사형됐는데, 이유는 사형수의 혈액형이 혈액 이식이 필요한 당 고위 간부의 것과 일치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것은 완전히 다른 사안이었다. 우리 취재진은 유아 유괴범에 대해 탐사 취재를 하러 가는 길이었고, 취재원과 약속이 잡혀 있었다. 오두막집에서 우리는 문제의 사나이와 그의 나이든 어머니, 신체장애인 형과 그가 건사해야 하는 어린 아들을 함께 만날 수 있었다. 부인이 죽고 나서부터 사나이는 집안의 생계를 혼자 꾸려야 했고 다른 가정의 아이를 훔치는 것이 그가 할 줄 아는 유일한 생계 수단이라고 했다.

일말의 부끄러움 없이 그는 어떻게 시골의 가난한 모자(母子)들과 친구가 되는지, 일자리를 알선해준다고 유혹해 도시로 데리고 오는지에 관해 우리에게 말해주었다. 엄마들이 일하러 나가고 없을 때 그는 아이를 거래업자에게 넘긴다고 했다. 

그는 정말 도덕적 관념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보다 더한 일도 있었다고 했다. 얼마 전 그는 자신의 아들도 팔아치웠다는 것이다. 당초에 그는 아들 형제 중 나이든 맏이를 팔려고 했지만 아무도 큰 아이를 원치 않았다. 나이 어린 둘째 아들이 값이 더 나갔다. 유아 납치범은 결국 3살짜리 아들을 팔아 500파운드를 손에 쥐었다.

그는 모든 것을 밝힌 뒤 목을 맸다. 그는 끔찍한 심정이었지만 “마음만으로는 어떤 문제도 해결 할 수 없고 갚아야 할 빚이 있었다”고 하소연 했다. 우리는 이전에 사형집행관이었다는 운전사와 돌아오는 길에 촬영분에서 걱정되는 부분에 대해 토론을 했다. 우리는 특종을 낚았지만 예기치 못한 사건 전개에 혼란스러웠다. 중국이외 지역의 시청자들에게는 너무 기괴한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었다. 개인적으로 이런 경험은 중국에서 언론인이 맞게 되는 최대의 도전이란 생각이 들었다. 여러 가지 면에서 다른 행성처럼 느껴지면서 서양인들에게는 너무 동떨어진 것처럼 보인다.

피해 부모를 탄압하는 중국 경찰

몇 분짜리 TV뉴스를 시청하는 시청자들에게 이런 면은 연결고리를 찾기에 익숙하지 않을 뿐더러 모호하면서도 소외된 면으로 여겨질 수 있는 부분이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풀어갈 해법을 찾았지만 이는 또 다른 도전을 필요로 하는 것이었다.
취재진은 중국에서 열병처럼 번지는 유괴 피해자 수천명 중 소수와 연락이 되고 있었다. 전통적인 남아 선호 사상과 중국 내 1가구 1자녀 정책에 자극받아 이 나라의 유아 매매는 놀랄 정도로 급성장하고 있다고 유엔은 보고한 바 있다.

우리가 만난 부모들은 집 밖의 길거리에서 놀다가 정말 코앞에서 아이를 유괴당하거나 그들이 일하는 시장에서 당한 경우였다. 만약 다른 나라였다면 이런 실종은 충분히 대중의 분노를 살만한 것이다. 중국에서는 이런 사건은 경찰의 탄압을 유발한다. 그런데 경찰의 탄압은 유괴범에 대한 것이 아니라 피해 부모에 대해서인 것이 특이할만 하다. 피해 부모를 돕지 못한다는 당혹스러움 때문인지 경찰들은 부모들이 공공연한 소란을 일으키거나 실종 벽보를 붙이지 못하게 했다. 부모들은 그들을 돕는 것이 당연한 당국에 의해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으며, 취재진에게는 불리하게도 부모들은 감시 하에 있었다.

하지만 부모들은 자신의 얘기를 해주겠다고 결심했고 우리 취재진을 만나러 호텔로 오는 위험을 감수했다. 우리는 언제든 경찰이 호텔 방문을 두드리고 방문할 수 있다는 것을 예상하면서 그들의 가슴속 사연에 귀 기울였다. 중국 언론은 납치 이야기를 보도하기에는 너무 겁에 질려있었기 때문에 우리 취재진은 부모들이 사연을 말할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이었다.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들과 다른 가족의 아이들 사진까지 가져왔다. 그들이 사진을 펼쳐 놓자 방에 있던 침대는 실종된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얼굴로 뒤덮였다.

우리는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경찰의 감시를 막기 위한 예방책을 마련했고 이는 상당히 적절했다. 전혀 외부의 방해 없이 부모들의 애타는 사연을 인터뷰했고, 쉽게 접하기 힘든 이 이야기들이 시청자들에게 전달됐다. 그들의 고통과 무기력한 분노는 무척 감동적이었고  짧은 TV뉴스일지언정 세상의 모든 부모들의 가슴에 뭔가를 안겨줬다.

촬영 방해·폭행에 구금까지

항상 누군가 문을 두드리지 않을까 하는 공포심, 중국 내 특파원들이 어디를 가든 감시의 눈이 존재한다. 중국은 가공할만한 언론통제 기구를 가지고 있고, 언론이 진정한 자유를 누리는 것을 막는 엄격한 법체계가 존재한다. 외국 특파원들은 농담처럼 취재활동을 ‘모험 취재(committing journalism)’라고 부른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이런 규율들이 완화돼 취재환경을 좀 더 편하게 한 것 같지만, 지방의 경찰들은 중앙 정부의 중재로 석방 결정이 나기까지 언론인들을 억류하곤 한다.

더 낙후된 중국의 일부지역에서는 지방 관청들이 거물급 업체 혹은 조직적 범죄단체와 결탁하기도 하는데 이는 그 지방에 일정 수입원을 안겨 주는 산업을 보호한다는 명목에 의한 것이다.   중국에서는 이같이 패거리를 동원할 필요도 없이 관료주의에 따른 병폐나 타성만으로도 동일한 효과를 낼 수 있다. 지역 외사국 수행원이란 뜻인 ‘와이반(영어 표기는 waiban으로 Waishi banchu의 줄임말)’은 관료주의 관행을 두루 보여주는데 해당지역을 방문한 취재진의 편의를 위해 각 지역 외무부서에서 지정해준다. 기술적으로 중국 내 어디를 가든 이들의 서비스를 활용해야 하는 것이다. 그들은 언론인들에게 마지막에 기댈 수 있는 ‘필요악’ 처럼 여겨진다.

현재 나는 이스라엘에서 일하고 있으며, 여전히 도전의 순간을 접하곤 한다. 3개월여가 지났는데 이전 근무지와는 전혀 다른 양상의 일들이 벌어진다. 텔아비브 벤구리온(Ben Gurion) 공항의 수하물 찾는 곳 상단에는 이스라엘의 위성사진이 붙어 있는데 처음 온 방문객들에게 ‘이 작은 곳이 많은 분쟁의 중심으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지도록 한다.

중동 사태에 대한 과대 노출이 특유의 문제를 유발하기도 한다. 중국에서 도전이라는 의미가 시청자들에게 낯설고 이국적인 것을 보이는 것이었다면, 이곳에서는 너무나 익숙한 지역에 대한 관심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서로 돌을 던지는 장면, 자살 폭탄테러와 기관총을 단 헬리콥터, 장례 행렬, 눈물 흘리는 가족들은 이미 수차례 반복해 본 것이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취재진에 대한 신체적 제약은 중국에서보다 더 위험하다. 갈등관계인 양측 가운데 어느 편도 전투상황에서 취재진의 안위와 안전에 충분한 관심을 기울일 리 없기 때문이다.

새로운 취재 환경에 적응하며

중국의 미디어들은 엄격히 통제되고 있기 때문에 가장 흥미로운 취재물 대부분은 보도되지 않는다. 연간 데모가 수천 건 벌어진다는 정부 통계에도 불구하고 거의 보도되는 바가 없다. 흥미로운 취재거리와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직접 취재원을 사귀고 뛰어다녀야 하는데 이 또한 쉽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중국에서 벗어나니 눈을 멀게 할 정도의 태양광선 안으로 온 것 같다. 중국에서는 정치적 입장이 공론화되지 못했는데 이 과정이 위험천만하거나 목숨을 걸만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반면 중동의 정치에는 각양각색의 어젠다들이 존재한다. 옳고 그름의 구분없이 모든 주장들은 수백년간 세세하게 기록된 갈등의 역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진공상태의 암흑에서 일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일하는 것을 감시당하지만 침묵이 유지되는 분위기인 것이다. 큰 뉴스거리를 터뜨렸어도 되돌아온 가장 극렬한 반응은 정부차원의 짧은 논평 정도였다. 이메일도 체크당하고 휴대폰도 도청당하고, 집이나 사무실도 감청하는 것을 알고 있다. 그들이 선호하는 방식은 뉴스 취재를 강하게 통제하는 것으로 사건 현장에서 자료를 수집하는 것을 막는 것이다.

중국 정부가 보도된 내용을 가지고 문제 삼지 않는 것은 이런 통제 방식의 실패를 인정하거나 체면을 구기는 것을 우려하기 때문일 것이라고 특파원들은 추측했다. 이스라엘에서는 이런 금지조치가 없다. 특파원의 도착 첫 주에 이스라엘군의 포탄들이 북 가자지역 거리에 떨어져 일가족 대부분이 살상됐다.

그날 일찌감치 이런 통신의 내용에 따라 보도를 했다. 주변 목격자들은 민가들도 폭격 당했다며 이스라엘 방위군을 비난했다. 난 스튜디오를 떠나자마자 이스라엘 방위군 여성 대변인에게 전화를 받았는데 “왜 우리가 민가를 폭격했다고 말하느냐”는 비난이었다. 중국에서의 기분 나쁜 침묵 대응과 대비를 이루는 이런 관심에서 이상하게도 위안을 느낀 것은 나만의 심정일까.  


편역 : 김종수(세계일보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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