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월드와이드(언론재단 발행)]언론 통제 극복하려는 광저우 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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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월드와이드(언론재단 발행)]언론 통제 극복하려는 광저우 시민
  • 안기덕 전 한국언론연구원 이사
  • 승인 2007.06.18 16: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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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르포는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독자들로 하여금 많은 흥미를 자아내게 한다. 현장 보도란 그만큼 호기심 있는 얘기다. 오지 국가나 공산국가일 경우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현지에서 취재활동을 하는 기자들에겐 곤욕이다. 선진국가나 민주주의 국가처럼 취재가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생활의 어려움도 있지만 더 큰 문제는 취재이다. 공산국가일수록 취재 또한 허가를 받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간섭도 무시 못한다. 이는 항상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뜻도 된다.
하지만 현재의 상황은 무척이나 달라졌다. 특히 중국이 그렇다.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간섭이 지나치게 심했던 취재활동이 올해 1월 1일부터는 어느 정도 나아졌기 때문이다. 개방화 물결 속에서 올림픽을 앞둔 중국정부가 세계의 눈이 두려워 특파원들에게 ‘취재의 자유’를 일정부분 허락한 듯 하다.

일본의 신문사들은 오래 전부터 중국 곳곳에 특파원들을 파견하고 있다. 자국의 기업들이 쉴새 없이 중국을 공략하고 여기저기 거대한 공장들을 세우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때문에 특파원 보도도 신문사마다 경쟁하듯 다루고 있다. 특히 경제신문들은 현지의 시시콜콜한 주민들의 생활이면까지 보도해 독자들의 흥미를 자아내고 있다. 다음은 중국 광저우에서 취재활동을 벌이고 있는 니혼게이자이신문(日本經濟新聞) 쓰가와라 도오루(菅原透) 특파원이 일본신문연구 2007년 2월호에 기고한 내용이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중국 지방도시

“나는 것이라면 비행기를 제외하고, 또 네발 달린 것이라면 책상을 제외하고는 무엇이든지 다 먹을 수 있다.” 이런 비유가 너무나 잘 어울리는 광동 요리. 그 본고장인 광동성 광저우시에는 닭이나 집오리에서부터 뱀, 악어 등 각종 동물들을 취급하는 시장이 여러 곳 있다. 언제나 음식업자 등 많은 인파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지만, 필자가 통역과 함께 방문한 그날의 시장 풍경은 큰 차이를 보였다.

칸칸이 이어진 상점들은 닫혔거나 한산한 모습이었다. 특히 무엇보다도 식용으로 팔리는 동물들이 자취를 감춘 것이다. 대부분의 점원들도 여기저기서 마작을 두거나 TV를 보면서 빈둥거리고 있었다. “오늘은 휴일인가.” 선량하게 보이는 점원에게 물어 보았다. “시장이 영업정지 처분을 받았어요.” 점원은 광동어로 답했다. 광동어를 이해 못하는 필자는 데리고 간 통역에게 물으면서 사정을 들었다. 우습게도 금지품목인 백비심(白鼻心, 너구리 비슷한 짐승)을 판 업소가 발각돼 시장 전체가 폐쇄를 당한 것이다.

광동성은 지난 2003년 사스(SARS)가 유행하자 감염원으로 지목 받고 있는 백비심의 취급을 완전 금지시킨 것인데, 최근 위법 판매한 점포가 발각되자 이 점포만이 아니고 시장 전체에 철퇴를 가한 것이다. 가혹한 처사 때문일까, 이야기를 듣고 있는 사이 우리 주변에는 10여명의 상인들이 둘러싸 광동어로 떠들고 있었다. 그들의 표정은 두렵기까지 했다. 한순간 불안이 엄습했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가 외국 언론기관의 기자라는 것을 인식하고 당국의 이 부당한 행위를 기사화 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몰려든 것이다. 자신들의 억울한 입장을 변호해 달라는 뜻이다.

시민들의 제보로 만드는 기사

중국 남부의 최대 도시, 광동성 광저우에 필자가 특파원으로 부임한 것은 3년 전인 2004년 3월이다. 급성장하고 있는 중국 경제의 생생한 모습을 기사화하고 싶다는 열의와 강한 의욕만을 가지고 이곳으로 날아왔다. 중국어는 이곳으로 오기 전 학원에서 몇 개월간 배운 것이 전부이다. 중국의 사회사정 또한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상태였다. 때문에 중국에서 생활하면서 기자활동을 하는 중에 중국에 대한 인식의 큰 변화를 맞게 됐다. 어찌 보면 중국에 대한 잘못된 선입관이라고나 할까, 많은 오해를 풀 수가 있었다.

그 중의 하나가 일반시민의 ‘미디어 감각’이다. 일본에서는 중국의 공산당 정권이 너무 강하게 정보나 언론의 통제를 실시하고 있어 시민들은 신문이나 TV의 보도에 어떤 기대도 하지 않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울러 미디어는 단지 공산당의 의향만을 전달해 주는 매체로 자리 매김하고 있다고 인식했다.

그런데 하루 하루 생활 속에서 표출되는 불만이나 또는 때때로 일어나고 있는 행정에 대한 불신 등을 시민들은 의외로 솔직하고 대담하게 말했다. 이는 단순히 푸념만을 말할 정도가 아니었다. 언론을 통해서 부정을 고발하고 또 밝히고 싶다고 하는 사례가 적지 않은 것이다.
그것은 지역적으로 홍콩에 접해 있고 화교들의 고향이라고 칭할 정도로 역사적으로도 해외문화와의 연결고리가 깊숙이 이어져 온 환경에 큰 영향을 받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1980년대에 중국에서 가장 먼저 개혁개방정책의 혜택을 받았고 외국인과의 교류가 제일 빨리 이뤄졌으며 경제발전 또한 초스피드로 진행된 점도 시민의 의식을 새롭게 한 요인이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실제 광저우 사람들의 미디어에 대한 높은 관심은 지역신문의 하찮은 기사에서도 엿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어느 날 지역신문에 ‘연방대원, 어른 구타’라는 기사가 게재되었다. ‘연방대원(連防隊員)’이라면 공안당국으로부터 위탁을 받아 거리 질서를 지키는 민간인 치안대원을 말한다. 중국에서는 거리나 마을마다 이러한 사람들이 치안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 눈에 잘 띈다. 그런데 민중의 편에 있어야 할 대원이 일반시민을 구타했다고 하는 자체가 심상치 않은 것이다.

기사에 따르면 그곳은 살인사건의 현장으로 공안당국이 주위를 봉쇄하고 수사를 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자전거를 끌고 현장으로 가까이 가던 이 ‘아저씨’를 대원이 위협을 한 것 같다. 지방신문은 기사와 함께 4매의 사진까지 곁들여 보도했다. 사진들은 아저씨를 걷어차고 자전거를 두드리는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 주고 있다. 진정 과잉진압행위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기사는 시민들의 제보에 의해 만들어진다. ‘시민기자’라고도 말할 수 있는 이들의 정보는 생생하고 인간미 넘치는 소재가 많다. 때문에 인기도 높다. 신문사나 TV국은 이 같은 정보를 받는 즉시 기자를 현장에 파견해 즉석에서 보도한다. 재미있게도 중국에서는 전국 각지에서 이와 유사한 취재 수법이 정착되어 가고 있는데, 광저우에서는 이미 당당한 뉴스 프로그램으로 매일 밤 방송할 정도로 열광적이다.

정보 제공은 변화의 기대 심리

물론 이러한 보도는 상업주의로 달리고 있는 현대 중국 미디어의 구체적인 한 예라고도 말할 수 있다. 정보 제공자에게는 신문사나 TV국이 건당 50~200위안의 사례금을 지불한다. 각 언론사들은 매상을 올리기 위해 앞다퉈 가면서 각종 ‘소재’를 수집하고 있을 정도이다. 하지만 모든 정보 제공자가 한결같이 미디어를 통해 부정을 폭로하고 싶다는 고상한 의지를 가지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돈을 목적으로 정보를 제공하는 사람도 의외로 많다. 그래도 필자는 시민들이 진정 미디어에 기대를 걸고 있다고 느끼고 있다. 그것은 정보 제공자들이 목표로 하는 것이 국내 미디어뿐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들은 사례도 바라지 않고 때때로 외국 기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한다. 우리를 믿고 의지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어느 날의 일이다. “XX마을에 데모가 발생했다. 취재를 해줬으면 좋겠다”라는 전화가 지국에 걸려왔다. 원인은 지방관리가 공장을 건설하기 위해, 농지를 부정으로 수용하자 분개한 농민들이 항의 데모를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급속한 경제성장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중국의 지방 도시들은 일부 정부 관리에 의한 농지의 강제 수용이 항상 문제가 되고 있다. 2005년에만 (전국에서 2004년도를 약 1만 5,000여 건이나 상회하는) 무려 8만 7,000여 건의 폭동이 발생했었는데, 토지 부정수용의 증가도 큰 원인 중의 하나였다.

행정 당국자들의 농민에 대한 폭행도 별로 이상할 것이 없다. 때로는 발포에 의해 사상자가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중국에서는 농지가 사유지도 국유지도 아닌 ‘집단소유’ 형태이다. 농민들은 오직 농지로서의 사용권을 얻어 살아가고 있다. 따라서 공장을 건설할 경우에는 국가에 허락을 얻고 개발업자가 사용권을 양도받는다. 이때 국가는 농민에 대해 보상금을 지불하도록 하고 있다.

현재 지역정부들은 너나없이 지방경제의 활성화를 위해 농업보다 공업이나 상업발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결국 많은 농지들이 ‘경제개발구’라는 명목 하에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농민들에게 지불하는 보상금이다. 국가로부터 나오는 보상금을 지방정부의 간부가 농민에게 제대로 분배하지 않고 착복하는 사례가 끊이지 않고 계속되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이와 같은 이유로 해서 매년 100만 명 이상이 농지를 잃고 있다. 이것이 폭동의 주요 요인인데, 광저우시 근교에 있는 마을의 폭동도 부패한 지방 관리에 대한 항의 활동이었다.

그렇다면 농민들은 왜 우리와 같은 외국 미디어를 선택해 정보를 제공하는 것일까. 그것은 그 지역의 지역신문들이 다룰 수 없는 ‘민감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어른을 구타한 아이들의 행위를 폭로한 기사는 있어도, 공산당 간부가 관련되어 있고 정권 불신을 초래할 수 있는 소동은, 비록 지역신문의 기자가 현장에서 취재는 할 수 있다 하더라도 보도는 되지 않는다. 특히 최근 수년 사이 중국 내 미디어의 통제를 강화시킨 현실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그래서 분에 못이긴 시민들이 최후로 기댈 수 있는 외국 미디어에 희망을 거는 것이다.
 
취재 자유를 저해하는 ‘공안의 벽’

“외국에서 보도된 기사가 돌고 돌아서 북경 공산당 지도자의 눈에 띄기를 바란다. 그래서 지방의 부패 간부를 처벌하기를 희망한다. 우리들은 진정 원자바오 수상이 알아주실 것이라고 믿는다. 때문에 기사화 되기를 원하는 것이다.” ‘농지 부정수용’에 대한 취재에서 만난 한 농부의 간절한 소망이다. 중국의 사회 안전은 서민들의 이런 조그마한 바람 속에서 이뤄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4년 전 사스가 유행할 당시 당국이 발표하는 감염자 수보다도 실태는 더욱 나빴고 숫자도 훨씬 많았다고 고백한 북경의 의사가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배짱과 용기를 가진 사람들은 지식인뿐만이 아니다. 미디어를 통해 정의를 관철시키려고 생각하는 일반인도 의외로 많다는 것을 취재를 통해 확인할 수가 있었다.

그런데 주민들의 이런 열의와는 달리 취재를 할 때에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장애도 무시 못한다. 때문에 대부분의 일본 특파원들은 중국 내에 독자적으로 취재 네트워크를 갖고 있는 홍콩 신문 등을 1차 정보원으로 해서 ‘민감한 사안’을 취재하고 있다. 정공법으로는 대부분 불가능하고 지방 공무원들의 ‘모르겠다’는 냉정한 답변만 듣기 일쑤인 것이다. 간혹 운 좋게 “그 사건을 알고 있다”라고 긍정적인 태도를 취하는 경우도 있지만, 우습게도 바로 이어진 말은 “당신은 그것을 쓰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라는 냉소적인 일침이다.

실제 자신의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현장으로 달려갈 때도 있다. 예를 들면 폭동 같은 것이다. 현장이 공안 요원에 의해 봉쇄되어 있다면 이는 틀림없이 폭동이 일어난 증거이다. 허나 특파원들이 그곳으로 들어가 취재하기는 거의 불가능한 사항이다.언제인가 반일활동 취재에서는 이런 일도 있었다. 고이즈미 전 일본 수상의 신사참배 문제로 중일관계가 냉전을 거듭하고 있던 2005년 전후는, 정치의식이 희박하다고 알려졌던 광저우조차도 ‘항일전쟁 승리기념일’ 따위에 애국단체가 재 광저우 일본영사관에 항의 활동의 일환으로 몰려들기 일쑤였다.

필자도 현장에 대기해 항의 활동을 관찰한 적이 있었다. 당시 지도자 격인 인물이 앞장서 격앙된 목소리로 슬로건을 외치면서 군중을 리드하자, 이를 찍기 위해 디지털 카메라로 접근을 시도했지만 매우 위험했다. 주위에는 사복차림의 공안 관계자들이 살벌하게 진을 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지방신문의 기자들은 자유스럽게 취재를 할 수 있었지만 우리 같은 외국 기자에게는 취재가 허용되지도 않았다.

그때 공안 책임자는 “이런 모습을 일본 쪽에 보이고 싶지 않다. 중·일 우호를 해치지 않기 위해서도 보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이러한 신사적 공안요원이라면 그래도 좋은 것이다. 통상적으로는 외국 기자라고 확인이 되면 불문곡직하고 “당신은 누구의 허락을 받고 취재를 하는가”하며 윽박지르기 일쑤였다.

우리 같이 중국에서 취재활동을 하고 있는 외국 기자들은 중국 정부의 대외 창구인 외사변공실(外事弁公室; 外弁)’의 허가를 받지 않으면, 취재를 할 수 없게 되어 있다. 이 ‘외변’은 오지의 지방 정부에도 어김없이 존재하고 있어, 취재 시에는 ‘외변’의 담당자가 동행하는 것이 기본이다. 그렇다고 일일이 하나하나 다 허가 신청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지만, 폭동 등 ‘민감한 사안’의 취재는 필히 허가를 얻고 원론적 입장에서 취재를 하는 것이 신상에 이롭다. 만일 이를 어길 경우 구속될 수도 있는 것이다.
 
올해 1월부터는 ‘취재허가’ 없이도 가능

실제 북한의 김정일 총서기가 지난해 1월 광동성을 방문했을 때, 김정일 일행이 묵은 호텔 정면 빌딩의 한 칸에 숨어 취재를 하고있던 한 외국 기자가 일시 구속되기도 했었다. 물론 이러한 ‘민감한 사안’은 ‘외변’에 취재를 신청해도 허락을 받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결국 관계자로부터 간접적으로 정보를 입수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특파원들의 이런 어려운 취재환경 속에서 극적인 변화가 찾아온 것은 바로 몇 달 전의 일이었다. 중국 정부가 지난해 말에 발표한 외국 기자에 대한 ‘신 규정’ 때문이다. 중국은 북경올림픽 대책의 일환으로, 올해 1월 1일부터 다음해 10월 17일까지 시한 조치이기는 하지만, ‘북경오륜 및 그에 관련된 사항’을 대상으로, ‘외변’의 허락을 받지 않아도 해당 정부 기관이나 기업, 또는 개인이 동의만 한다면 자유로이 취재를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올림픽에 관한 사항이라고 못을 박았지만, 실제로는 중국의 정치나 경제, 문화, 과학기술 등 다방면에 걸쳐 직접 올림픽과 관계가 없어도 괜찮다는 것이다. 광동성 ‘외변’ 담당자에게 확인한 결과, 상주 외국인 기자라도 예외는 없다고 한다. 즉 취재 상대가 동의를 하면 일일이 당국에 허가를 받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들은 한술 더 떠, 중국을 세계 속에 바로 알리기 위해 외국 기자들에게 서비스를 제대로 해야 한다고 열을 올리기도 했다.

광저우는 필자가 특파된 지 몇 년 되지 않지만, 지방 전체가 너무나 생생하게 움직이고 있음을 볼 수가 있었다. 부임할 당시만 해도 광활한 벌판이 바나나 밭으로 둘러싸여 있었지만, 남부는 이미 일본의 도요다 자동차가 진출해 이제는 최첨단 자동차 공장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2004년에 문을 연 거대한 국제공항은 외국 항공기들의 경연장이 될 정도로 분주하다.

때문에 외국 바이어들도 쉴새 없이 드나들고 돈 꽤나 있는 지역 졸부들은 부동산이나 승용차 등의 구매의욕을 높여, 소비 또한 왕성하다. 고급 승용차 렉서스가 월 150대씩이나 판매되고 있다고 하니 알만한 일이다. 고층빌딩도 하루가 다르게 들어서고 있으니 취재할 곳도 수없이 많은 것이다.

그러나 과거는 무엇하나 ‘외변’을 통해서 해야 했으니 불편한 것도 한두 가지가 아니었고 또 번번이 거절당해 제대로 취재하기가 힘들었다. 때문에 이런 자유 조치를 하루 빨리 시험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과거 번번이 취재를 거절당했던 한 국영기업에 다시 취재신청을 했다. ‘외변’의 허락이 필요 없으니 바로 그 업체에 이유를 설명하고 취재를 부탁한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바로 취재에 응해준 것이다. 너무나 신기한 일이었다. 북경 정부의 한마디가 이렇게 무서운 것인가. 다시 한번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이 다 자유스럽다는 것이 아니다. 최근 한 홍콩 신문은 ‘국가정권 전복 선동죄’로 징역형을 선고받은 한 인권변호사가 지난 1월 1일 밤 가족과 함께 북경의 자택에서 연행됐다고 보도했다. 새로운 규정에 따르면 이 또한 ‘외변’에 허락을 받지 않고서도 자유롭게 취재를 할 수 있어야만 한다. 허나 실제로는 그렇지가 못하다. 정부와 관련된 ‘민감한 사안’은 아직도 취재에 어려움이 뒤따른다고 밖에 말할 수가 없다.


편역 : 안기덕(전 한국언론연구원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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