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월드와이드(언론재단 발행)]“일단 게시, 수정은 그 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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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니스 윌킨스(Dennis M. Wilkins) / 세인트 보나벤처대 언론학 교수

내가 얻은 약간의 명성, 덧없는 그 명성은 그나마 3월 12일에 생긴 것이다. 언론 자유를 추구하는 비영리 단체인 프리덤 포럼(Freedom Forum)에서 펴낸 2007년도 수정헌법 제1조 달력(First Amendment Calendar)의 3월 12일자를 들춰보는 사람이라면 내가 쓴 글에서 인용한 구절을 만날 것이다.

“기자들이 없다면, 언론의 사명감이 없는 사람들이 - 부도덕한 광고주들과 정치 협잡꾼들 - ‘이야기’를 하고 있을 것이다.”
2년 전 쯤 에디터 앤드 퍼블리셔에 쓴 논평에 들어 있는 구절이다. 그야말로, 신뢰할 만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판단하는 것이 바뀌었다.

오늘날에는 어느 누구나 말할 것 또는 보여줄 것을 가지고 있다. 웹은 우리에게 그 방법을 알려준다. 어떤 이유로든 누군가에게 어떤 것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는 플랫폼이 있는 것이다. 수많은 블로그, 마이스페이스(MySpace), 프렌드스터(Friendster), 유튜브(YouTube) 등. 사람들이 세상에 말하고 싶어 하는 것은 무엇이든 이러한 곳에 사진, 비디오, 오디오 텍스트 등으로 게시되고 있다.   

시시각각 끊임없는 정보 제공

내가 맑은 물을 흐리는 사람이라고 비난해야 하는 사람들은 그 ‘부도덕한 광고주들과 정치 협잡꾼들’만이 아니다. 시선이 집중되는 곳은 어디든지, 떼를 지어 몰려들어 속이거나 혼란시키려고 하는 식인 물고기떼 피라니아들이 있다. 심지어 뉴스 매체들도 게시물을 올리기 전에 심사숙고하지도 않은 채 시시각각 끊임없이 그들의 웹사이트에 공급한다. 예전에 나의 강의를 들었던 한 학생이 쓴 것처럼, “일단 ‘게시’하고 본다. ‘수정’하는 것은 그 다음이다.”

어떤 사람은 돈을 벌기 위해 정보를 제공한다. 어떤 사람들은 고귀한 혹은 저열한 이유로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기 위해 정보를 제공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잘못된 정보나 허위 정보를 헤아리기 위해 정보를 제공한다. 아마도 언론의 사명은 대략 후자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사명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내놓는 유익한 게시물 주위에는 매우 요란하며 허접한 것들도 있다. 나는 내가 참여하고 있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동료들의 게시물을 관심 갖고 읽을 때조차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사려 깊은 블로거로서 우리가 하고 있는 작업 가운데 얼마나 많은 부분이 유익하기보다 노이즈(noise)에 불과할까? 우리는 지나치게 자주 경솔하게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혹은 우리는 지난 달에 사망한 데이비드 핼버스탬(David Hal-berstam)처럼 사명을 훌륭하게 실천한 언론인으로서 우리 자신을 지키고 있는가?’
피츠버그 포스트 가제트(Pittsburgh Post Gazette)의 편집인인 데이비드 슈리브만(David Shribman)은 최근 데이비드 핼버스탬에 관해 다음과 같이 썼다.

“핼버스탬에게는 권력, 영향력, 그리고 부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것들을 자신의 두 가지 열정을 위해 사용했다. 하나는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다른 하나는 그가 목격한 세계와 진리를 말하기 위해서이다. 저널리즘이 그 영혼의 너무 많은 부분을 잃어버리고 있는 이 시기에, 저널리즘의 위대한 화신 중 한 명을 잃어버린 것은 이중의 비극이다.”

다양한 매체 가운데 들을 가치가 있고, 읽을 가치나 볼 가치가 있는 이야기를 누가 말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다시 생각하면서 나는 편집국에서 보낸 초년병 시절에 스스로 물어보라고 배웠던 기본적인 질문들로 돌아간다.  

기본적인 질문으로 돌아가라

소문난 이야기꾼들이 감언이설로 나를 유혹할 때, 나는 다음과 같이 자문하곤 했다.

△ 그들에게는 어떤 자격이 있는가?
△ 그들은 어떤 독자들의 마음을 끌고 있는가?
△ 그들에게는 드러나지 않은 어떤 동기가 있는가?
△ 그들이 하는 이야기의 목적은 무엇인가?
△ 그들의 주장은 사리에 맞는가?
△ 자기들이 신뢰할 만하다는 것을 시사하기 위해 무엇을 제시하고 있는가?
△ 나는 자주적인 생각을 하도록 고무되어 있는가?

누가 언론인이고 누가 언론인이 아닌가를 규정하는 문제는 조만간에 풀리지 않을 것 같다.
나는 언론인인가? 그렇다고 생각한다. 언론계에서 경험을 쌓았다. 열정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마음이 순수하다. (틀림없이, 당신은 이 대목에서 웃을 것이다. 괜찮다.)

그러나 나의 게시물들을 읽는 어떤 사람이 나에 관해서 이러한 질문들을 하지 않는다면, 나는 그들을 마음대로 지배할 수 있을 것이다. ‘질문을 한다는 것’은 단지 더 이상 ‘권위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만이 아니다. 그것은 웹을 자기선전의 기회나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리라고 간주한 사람들과 당신에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법이나 믿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싶어 하는 모든 사람에게 의문을 제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심지어 나까지 포함해서 우리 모두 말이다.


<에디터 앤드 퍼블리셔 2007년 5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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