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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작을 통한 정보의 전달
신체언어를 이용한 셔레이드(2)
최상식-KBS 드라마제작국장

|contsmark0|나. 제스처(gesture)제스처란 보고 있는 사람에게 시각적인 신호를 보내는 갖가지 동작을 말한다. 제스처가 되기 위해서는 동작이 남에게 보여야하며 어떤 정보가 전달되어야한다. 따라서 제스처는 넓은 의미에서 ‘관찰되는 동작’이라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우리는 손짓, 발짓, 고갯짓 등과 같은 신체 각 기관의 유기적인 움직임을 통해서 정보를 전달한다.손은 인체에서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면서 여러 가지 신호들로 복잡하고 다양한 감정표현과 의사전달을 하는 기관이다. 철학자 칸트는 “손은 눈에 보이는 뇌의 일부”라고 했고 브로노우스키는 “손은 정신의 칼날”이라고 했다.이야기를 할 때 손은 그 형태나 움직임을 끊임없이 변화시킴으로써 정보를 전달한다. 엄지와 집게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그리는 사인은 미국인에게는 ok, 훌륭하다(fine), 완전하다(perfect), 위대하다(great)라는 뜻으로 사용되지만 한국인에게는 돈을 가리키는 뜻으로 사용되고 프랑스인에게는 ‘제로’ 또는 ‘별 볼일 없다’는 뜻으로 쓰인다. 카톨릭에서 엄지손가락은 하나님의 상징이다. 교황이 반지를 엄지손가락에 끼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집게손가락은 성령을, 가운데 손가락은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유럽에서 엄지는 권력의 손가락이며 동양에선 아버지의 상징이다. 중지는 길어서 성희에 사용된다하여 음탕한 손가락으로 여긴다. 그래서 중지가 별나게 긴 사람은 바람둥이 취급을 받는다. 한국에선 새끼손가락을 걸어 약속하는데 서양은 약지가 약속의 손가락이다. 그래서 약혼반지를 약지에 낀다.엄지손가락을 세우는 제스처는 힘 또는 우열의 신호로서 사용되며 ‘좋아’라는 동의의 뜻으로도 해석된다. 영화 ‘쿼바디스’에는 네로 황제의 유명한 엄지손가락 사인이 있다. 원형 경기장에서 검투사들의 격투를 지켜보던 네로 황제의 엄지손가락이 위로 향하면 ‘살려 주라’는 은총이고 밑으로 향하면 ‘죽이라’는 사형선고가 되었다. 그리피스가 ‘인톨러런스’에서 손을 통한 심리표현을 처음 시도한 이후, 손을 이용한 의미표현은 영화에서 가장 흔하게 발견할 수 있는 셔레이드 기법중의 하나가 되었다.
|contsmark1|▷‘서부전선 이상 없다’ (감독: 루이스 스마일스톤)격렬한 전투가 막 끝나고 참호 속엔 잠시 소강 상태가 유지된다. 병사들은 무너진 참호를 보수하기 바쁘다. 문득 젊은 병사 폴의 시야에 나비 한 마리가 들어온다. 참호 밖, 임자 없이 버려진 군화 위에 나래를 접고 앉는 나비. 폴은 미소 띤 얼굴로 참호 밖으로 손을 내민다. 살그머니 나비를 향해 다가가는 손의 클로즈업. 순간 ‘탕’하는 총소리와 함께 손이 동작을 멈춘다. 그리고 서서히 굳어진다. 평화의 상징인 나비는 총소리와 함께 사라지고 그것을 잡으려던 손은 죽는다. 오직 손의 움직임만으로 전쟁의 비극성을 고발한 이 유명한 라스트는 셔레이드의 고전이 되고 있다.
|contsmark2|▷‘나생문’ (감독: 구로자와 아끼라)산적(미후네 도시로)이 무사(武士)를 나무에 묶어놓고 그의 아내를 겁탈하려 하고 있다. 그녀는 호신용 단검을 들고 격렬하게 저항하지만 역부족으로 결국 산적의 억센 품에 안기고 만다. 잠시 후 저항을 포기한 여인의 손이 스르르 풀리면서 칼을 떨어뜨린다. 이윽고 그녀의 클로즈업된 손이 서서히 남자의 등을 파고들며 애무하는 동작으로 변한다. 격렬하게 저항하던 모습과는 달리 오히려 남자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며 섹스에 탐닉하는 여인의 모순된 심리가 손을 통해 묘사되고 있다.
|contsmark3|▷‘로미오와 줄리엣’ (감독: 프랑코 제피렐리)무덤 속에 누워 죽음과도 같은 깊은 잠에 빠져 있는 줄리엣. 그녀의 손이 클로즈업되면 손가락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마치 삶을 확인하듯 주먹을 꽉 쥐어 본다. 다시 서서히 옷자락을 쓰다듬어 보며 위로 이동하는 손. 손을 따라 카메라가 팬(pan)해 가면 비로소 올리비아 허시의 얼굴이 드러난다. 제피렐리 감독은 가사(假死)상태에서 현실의 세계로 돌아오는 줄리엣의 모습을 오직 손의 움직임만을 통해서 표현하였다. ▷‘미녀와 야수’ (제작: 윌트 디즈니사)새에게 모이를 주고 있는 야수. 손바닥에 모이를 올려놓고 새를 유인해 보려하지만 좀처럼 새들이 모이지 않는다. 벨(미녀)이 다가와 새들의 마음을 얻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 벨이 뿌려놓은 모이의 줄을 따라 야수의 손바닥 위까지 올라앉는 새 한 마리. 귀엽다는 듯 새를 바라보며 미소짓는 야수. 광폭하던 야수의 심성이 어느 듯 부드럽고 착한 심성으로 변화되었음을 알려주는 셔레이드이다.
|contsmark4|발.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공학의 걸작이요, 예술작품의 극치라고 격찬했던 인간의 발은 26개의 뼈와 114개의 인대와 20개의 근육으로 이루어져 있다. 발은 머리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으므로 사람들이 대화에 깊이 빠져 있을 때는 으레 발의 존재를 잊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신체구조 가운데서도 가장 정직한 존재가 발이다. 발의 무의식적 동작들은 변덕 많은 얼굴 신호와는 관계없이 사람들의 참된 기분을 드러낸다. 따라서 발의 움직임을 잘 관찰하면 그 사람의 진정한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경우가 많다.다리. 인체의 다른 부분과 비교하면 인간의 다리는 영장류 가운데서 가장 길다. 다리는 인체의 약 절반을 차지하며 특히 길고 곧은 여성의 다리는 성적인 맥락에서 이해되어 왔다. 성적으로 가장 성숙할 때 다리가 가장 길어지므로 예로부터 다리가 유난히 길다는 것은 초월적인 성 기능을 상징하였다. 마를리네 디트리히 같은 여배우는 긴 다리를 이용한 각선미로써 인기를 누렸으며 마릴린 먼로의 독특한 걸음걸이 역시 각선미가 동원된 걸작품이었다. 빌리 와일더는 ‘7년만의 외출’에서 지하철 통풍구 위에 서 있는 마릴린 먼로의 치마가 바람에 말려 올라가게 연출함으로써 전 세계 남성들에게 그녀의 속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즐거움을 선사하였다.
|contsmark5|발과 다리를 이용해서 연출된 셔레이드의 예로 다음과 같은 작품을 들 수 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감독 : 빅터 플레밍)남북전쟁으로 남편을 잃은 스칼렛 오하라(비비안 리)는 전쟁기금 모금을 위해 마련된 바자회에 참석한다. 주위엔 화려한 댄스파티가 펼쳐지고 있으나 전쟁 미망인인 그녀는 춤 출 입장이 아니다. 검은 상복을 입고 새침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스칼렛. 그러나 카메라가 테이블 밑 그녀의 발을 포착하면 그 발이 미친 듯 댄스 스텝을 밟고 있다. 검은 상복으로 치장한 정숙한 미망인의 상반신과 춤추는 발을 대비시켜 그녀의 위장된 본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주었다.
|contsmark6|▷‘원초적 본능’ (감독: 폴 베호벤)취조실에서 형사들에게 둘러싸여 살인혐의로 심문을 받고 있는 샤론 스톤. 그녀는 당당하게 알리바이를 주장하면서 꼬고 앉아있던 다리를 풀어 반대편으로 다시 꼰다. 이때 ‘다리를 꼬는 행동 - 쳐다보는 형사들의 시점으로 본 샤론 스톤의 치마 속 - 호기심 어린 형사들의 표정 - 이를 즐기는 샤론 스톤의 표정’이 절묘한 템포로 편집된다. 샤론 스톤은 아무 것도 입지 않은 자기 치마 속을 보여줌으로써 형사들뿐만 아니라 관객들까지 뇌쇄시키면서 공범자로 끌어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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