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따져보기]프로그램 기획에 자료비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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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찬 대중음악연구가 

본인의 직업은 대중음악연구가이다. 해방이후부터 1980년대 정도까지의 한국대중음악이 어떻게 진행되었고 대중들은 어떻게 반응했으며 이 과정의 중심인 음악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당시의 기록, 음원, 악보 등을 수집하여 연구하고 이것을 강의, 저술 등을 통해 대중과 소통하고 이 과정에서 수입을 얻어 살아간다. ‘살만하냐?’라는 질문은 ‘팔릴만한 물건입니까?’, ‘값은 제대로 받습니까?’라고 자문해본다면 짐작이 가실 것이다.

직업이 그렇다보니 가끔 대중음악관련 프로그램제작자들로부터 자료제공을 겸한 출연요청을 받게 된다. 그동안 심혈을 기울였던 작업에 대한 결과를 보이고 수입을 얻을 수 있는 기회인 것이다. 담당 PD를 만나 인터뷰해주고 자료제공해주고 나서 인터뷰료와 자료비를 얼마나 주냐고 물어보면 인터뷰료는 없고 자료비도 원래 비용에 책정되어있지 않는데 특별히 편법을 써서 조금 주겠다고 생색까지 낸다.

생각해보라 방송이란 상품이 어떻게 만들어지겠는가? 지식과 정보라는 무형의 자산을 기획아이디어로 통합하여 다큐멘터리라는 문화상품으로 재탄생시켜 이것을 팔아 수입을 올리는 것이다. 결국 이것도 재료비를 투입해서 상품을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재료비 중에서 인건비만 책정되어있고 지식과 정보에 대한 비용은 들이지도 않고 상품을 생산한다는 말인데 봉이 김선달이 자신의 노동으로 대동강 물을 떠다가 팔아먹은 것과 다름이 없다는 얘기다.

자료를 수집해서 대중음악연구를 하는 연구자로서는 노력의 결과물을 착취당함에도 불구하고 어디에 하소연할 데도 없다. 분하고 억울하지만 이게 좋아서 일생을 걸고 하고 있으니 때려치우기 싫으면 감수하는 수밖에 없겠다. 이건 개인의 차원이니깐 잠깐 무시하고라도 이렇게 무식하게 만들어진 상품이 과연 제대로 된 상품으로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질 것인가 라는 질문에 봉착하면 이것은 국가의 장래가 걸린 엄청난 일이 된다.

국가의 장래를 걸고 이미 일을 저질러버린 FTA의 방송분야를 한 번 보자. 미국의 미디어그룹이 간접투자의 방식으로 한국에 프로그램공급자(PP)의 지위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이제 한국의 PP는 미국의 PP와 각자가 자국의 프로그램을 들고 국내송출업자(SO)의 간택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전개될 것이다. 한국의 시청자가 애국심을 발휘해서 국산품을 애용해줄 리는 없을 것이다. 이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국산 프로그램이 경쟁력이 있어야 한국의 방송망에 한국의 프로그램이 우위를 점령할 수 있을 것이다. 프로그램을 만드는데 내용의 수준을 좌우하는 재료비에 대한 비용책정이 없으니 PD의 노력과 안면으로만 제작이 될 것이고 이런 프로그램이 경쟁력이 있을 리가 없을 것이다.

이 대목에서 그간의 성적표를 살펴보자 2005년 한 해 동안 국내의 PP가 미국에 수출입한 프로그램의 금액과 편수를 비교해보면 처참하다. 우선 드라마, 다큐, 영화는 수출이 제로다 그러나 교양은 수출편수가 수입에 비해 2배, 오락은 3배이다. 그런데 금액을 비교해보면 교양은 1/2, 오락은 1/3의 수입을 올리는데 불과했다.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이제 시작이니 반도체처럼 열심히 노력해서 앞지르면 된다고? 문화산업은 제조업과 다르다.

당장에 결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미래를 내다보고 시급한 타분야 투자요청에 흔들리지 말고 꾸준한 투자를 해야 겨우 인프라가 깔리고 그때부터 진짜 열심히 해야 수입을 올리는 장기적 투자가 필요한 분야이다. 다시 개인문제로 돌아가자. 앞으로 내가 이 분야를 떠나지 않고 밥이나 제대로 먹을 수 있도록 제작자는 재료비가 공짜라는 생각은 버리고 정부는 국가적인 관심을 보이는 것이 현 정부가 그토록 자화자찬한 FTA의 장밋빛 청사진을 증명하는 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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