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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넘게 라디오 DJ 생활을 한 이를 꼽으라면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과연 몇 명이나 될까? 그것도 한 프로그램에서. 올해로 21년째 KBS cool FM <전영혁의 음악세계>(연출 홍순영∙매일 새벽 2시-3시, 이하 음악세계)>를 진행하고 있는 DJ 전영혁 씨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1986년 4월 29일, <25시의 데이트>로 첫 방송된 <음악세계>는 1991년 <음악세계>로 개명된 후 지난해 4월 29일, 방송 20주년을 맞았다. 그리고 그 오랜 시간 동안 진행자석을 지킨 이가 바로 전 씨다.
“지난해 방송 20주년을 맞았을 때, 저를 가리켜 DJ 외길 20년이라고 했습니다. 비결은 특별한 게 없었어요. 그저 DJ밖에 할 줄 아는 게 없었을 뿐이죠.”
그래서일까? 전 씨는 인기에 영합해 DJ를 맡는 현실에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요즘 시대는 말 그대로 팔방미인시대입니다. 가수가 탤런트도하고 탤런트가 DJ도 하죠. 물론 가수나 연예인이 DJ하는 것이 무조건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음악을 모르고 음악과 관계없는 사람이 인기 있다고 DJ 자리에 앉는 겁니다. 사람은 한 가지만 제대로 해도 된다고 생각해요. 돈과 명예 가운데 한 가지만 선택하라고 후배들에게 조언하고 싶어요.”
이 말을 하면서 전 씨는 록에서 국악까지 음악적 지식과 경험이 풍부한 가수 김수철 씨가 DJ로 캐스팅 되지 못하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결국 ‘청취율 전쟁’이 불러온 비합리적인 결과라고 꼬집었다.
라디오와 DJ에 대한 전 씨의 애정과 열정은 프로그램에 필요한 음반 구입을 위해 전 씨가 사비 7억 2천 만 원을 들였다는 데서 잘 드러난다. 이유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전 씨는 “좋은 음악을 나 혼자 들을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라고 명료하게 답했다.
20년 넘은 DJ 생활에 있어 그의 곁을 꾸준히 지켜온 청취자들은 전 씨에게 가장 큰 재산이다. 1986년 첫 방송을 시작했을 당시 고등학생이던 청취자들이 30, 40대가 된 지금도 여전히 남아있다는 것에 전 씨는 자부심을 느낀다고.
“청취자들과 가족처럼 지낼 수밖에 없어요. 네이버에 ‘음악세계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란 카페가 있고 한 달에 한 번씩 정기모임도 갖습니다. 이들 가운데에는 현재 기자로 지내는 사람들도 있어요. 저는 이들의 경조사에도 참석해요. 끈끈한 유대 관계를 갖고 한 가족처럼 지내는 것, 다른 방송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라고 봐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DJ를 그만두겠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고 당당히 말하는 전 씨. 그의 열정과 노력은 지난해 한국방송프로듀서연합회에서 주는 작품상을 통해 인정받기도 했다. 하지만 전 씨에게는 항상 아쉬움이 있었다고. 바로 <음악세계>가 새벽 2시에 방송된다는 점이다.
“지금 새벽 2시에 방송되면서 좋은 시간대에 가지 못하는 이유는 청취율과 광고 수익 때문이에요. PD들이 좋은 방송이라 인정하면서도 현실은 다른 것 같아요. 그동안 ‘내가 그만두면 이런 음악 들을 기회가 없다. 숙명이라고 생각한다’는 심정으로 이 자리를 지켜왔어요. 방송시간이 자정 12시나 새벽 1시 정도만 돼도 좋겠어요. 좋은 음악들을 사람들이 자는 시간에 맞춘다는 것이 안타깝기만 해요.”
건강이 허락하는 한 DJ 생활을 계속 하고 싶다는 전 씨. 라디오가 소수 연예인이 나와 신변잡기 식 토크를 늘어놓는 TV 프로를 닮아가고 있다며 아쉬움을 표한 전 씨는 “<음악세계> 같은 차별화된 프로그램이 많이 나와 라디오만의 순기능과 매력을 되찾았으면 합니다”는 바람으로 인터뷰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