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KBS가 27년 숙원 해결을 위한 수순을 차근차근 밟아가고 있습니다.

이희용[연합뉴스 엔터테인먼트부장]
KBS는 사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데 이어 일반 국민과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를 끝냈습니다. 이를 토대로 6월 13일 경영회의를 열어 월 2,500원의 수신료를 4,000원으로 1,500원(60%) 인상한다는 방침을 잠정 결정했습니다. 

이 인상안은 14일 임시이사회에 보고됐으며 27일로 예정된 정기이사회 안건으로 상정됐지요. 이사회에 앞서 20일에는 미디어수용자주권연대 주최로 토론회가 열리며, 25일에는 KBS가 공청회를 개최할 예정입니다.

당초 사원들의 설문조사에서는 물가연동제 도입과 함께 수신료를 정액 인상하는 방안에 가장 많은 지지가 나왔고 인상 폭은 1,000원이 33%로 1,500원(28%)이나 500원(27%)보다 많았지요. 그동안 KBS 내에서도 ’1,000원+α’ 안이 유력하게 거론돼 왔지요.

그러나 물가연동제를 도입하려면 ’수신료의 금액은 이사회가 심의의결한 후 방송위원회를 거쳐 국회의 승인을 얻어 확정되고 공사가 이를 부과 징수한다’는 방송법 65조를 개정해야 하기 때문에 물가연동제 도입을 일단 포기하는 대신 1,500원으로 인상하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여론입니다. 지금까지 신문들의 논조는 대단히 부정적입니다. KBS 이사회와 방송위원회에는 여권이 다수여서 어렵사리 통과할 수 있다 해도 국회는 한나라당이 다수여서 승인이 쉽지 않아 보입니다.

KBS가 전문기관에 의뢰해 19세 이상 남녀 1,2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서는 수신료 인상에 찬성 57.2%(687명) 의견이 반대 42.8%(513명) 보다 많았다고 합니다. 또 언론학회 회원 216명을 대상으로 한 전문가 조사에서는 반대가 28.7%, 찬성이 71.3%여서 수신료 인상에 더 호의적이었다네요.

KBS는 이를 두고 "2년 전 조사 당시 반대가 72%에 이르렀던 것에 비하면 반대 의견이 눈에 띄게 누그러진 것"이라며 고무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조사는 면접 조사원이 27년째 수신료가 오르지 않은 상황과 디지털 전환 재원 마련의 필요성 등을 설명한 뒤 물어본 것이어서 다른 조사 결과와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조선일보나 동아일보 등은 조사에 응한 언론학자의 말을 인용해 다분히 의도적으로 조사가 이뤄졌다고 주장하고 있지요.

여론조사 문항과 분석결과 등이 자세히 공개되지 않은 상태라 섣불리 말할 수는 없지만 사실상 세금이나 다름없는 돈을 올리겠다는 데도 일반 국민까지 찬성이 많게 나타났다는 것은 정서적으로 쉽게 납득하기 힘들다는 사람이 많을 겁니다.

KBS는 수신료 인상을 최대한 밀어붙여 보겠다는 심산인 것 같습니다. 광고 수입이 정체된 데다 디지털 전환 자금은 필요하고 IPTV 등 또다른 뉴미디어의 진입을 눈앞에 둔 상황에서 더이상 미룰 수 없다고 보는 것이지요. 디지털전환특별법안이 국회통과를 앞두고 있는 것도 원군으로 생각하는 듯합니다.

그리고 제 짐작으로는 정권이 현 KBS 경영진에 호의적이지 않은 한나라당으로 바뀌고 난 뒤에 인상을 추진하는 것보다는 어느 쪽이 정권을 잡을지 모르는 상태에서 추진하는 게 한나라당의 협조까지는 아니더라도 소극적 반대 정도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여기는 것 같기도 합니다. 한나라당도 대선에서 KBS의 협조까지는 아니더라도 중립 혹은 소극적 반대나마 이끌어내야 할 처지라는 것이지요.

수신료 인상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설득하는 것은 물론 찬성하는 사람들의 힘을 빌리기 위해서라도 KBS가 국민에게 약속해야 할 것은 중립성, 공공성, 공익성, 경영 투명화와 효율화 등일 겁니다.

KBS는 이사회 의결에 즈음해 공영성을 강화하기 위해 광고 수입을 축소하고, EBS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며, 난시청 지역에 대한 수신환경 개선작업에 나서겠다는 등의 계획을 발표할 예정입니다.

수신료를 1,500원 인상하면 1조 3,000억 원 가량 되는 전체 예산 규모 가운데 약 3,000억 원이 늘어난다고 합니다. KBS는 그 대신 KBS 2TV의 광고 수입을 1,000억 원 가량 줄이고 수신료 수입의 3% 수준인 EBS에 대한 지원을 갑절로 높일 방침이라고 합니다.

2TV 광고 수입을 줄이기 위해 일부 프로그램에는 광고를 붙이지 않을 방침인데 그 대상은 시간대가 될 수도 있고 특정 장르나 프로그램이 될 수도 있지요. 우선 어린이 시간대와 뉴스 프로그램 등이 대상이 될 공산이 큽니다. KBS 관계자는 "시청률이 낮아 광고 수주율도 높지 않고 광고 단가도 낮은 아침시간대나 낮 시간대에만 광고를 붙이지 않는 방식은 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더군요.

광고를 줄이겠다는 것은 2TV의 공공성을 강화한다는 명분과 함께 광고시장을 놓고 다툼을 벌이고 있는 다른 지상파방송이나 신문, 케이블TV 등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효과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또한 광고가 없는 1TV가 저녁 9시뉴스의 시청률 다툼에서 MBC에 비해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듯이, 2TV 8시 뉴스 앞뒤의 광고를 없애면 SBS 8시 뉴스의 시청률을 잠식하는 소득을 올릴 수 있는 것을 비롯해 융통성 있는 편성전략을 구사할 수도 있을 겁니다.

EBS에 대한 지원을 늘리겠다는 것 역시 명분 쌓기에 도움이 될 겁니다. 15% 수준까지 요구하는 EBS의 기대에는 턱없이 못 미치지만 교육방송의 공적 재원 확대에는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고 있지요.

그러나 구조조정에 대해서는 아직 방침을 정하지 못한 듯합니다. KBS 안팎의 시각차가 너무 크기 때문이지요. KBS 구성원들은 건물의 노후화, 팀제 도입을 통한 간부 비율 대폭 축소, 지역국 통폐합 등을 들며 다른 지상파방송에 비해 감량 경영을 꾸준히 시도해왔으며 운용 채널수를 비교해보면 결코 방만한 경영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또한 BBC나 NHK의 예산이나 인력 규모와 비교해서도 공룡이란 말은 당치 않다고 불만을 터뜨리고 있지요.

월 수신료에 대해서도 현재 아프리카의 나미비아 수준이고 4,000원으로 올려봐야 겨우 동유럽의 체코 수준이라고 푸념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경제 규모로 보아 국가기간방송이 훨씬 더 커져야 하고, 그것도 공영방송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으려면 수신료 비중이 더 높아야 한다는 겁니다.

이와 상반된 주장은 굳이 들지 않아도 잘 아실 겁니다. 문제는 정파적으로 KBS에 반감을 갖고 있는 신문뿐 아니라 중립적이거나 호의적인 신문들까지 수신료 인상에 반대한다는 것이지요. 또 수신료 인상의 필요성에 동의하는 언론학자나 시민단체들도 과감한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지요.

4주 전 제가 소개했듯이 다른 지상파방송들도 수신료를 인상하는 대신 2TV 광고를 줄이면 광고 수주가 수월해질 것이라고 기대하면서도 수신료 문제 때문에 디지털전환 특별법이 공전되고 중간광고나 간접광고 허용까지 말도 꺼내지 못하게 될까봐 우려하고 있습니다. 일부 시민단체 관계자도 IPTV 도입과 지상파 디지털 전환 국면에서 지상파의 공영성을 확보하는 게 관건인데 KBS가 수신료 문제만 먼저 들고 나오는 바람에 안정적인 수신환경이나 저소득층 수상기 지원 등 전체적인 국면의 논의나 투쟁이 어려워졌다고 부정적으로 보기도 합니다.

20일 미디어수용자주권연대 주최의 토론회에서는 이상요 KBS 정책기획센터 기획팀장이 토론자로 참석합니다. KBS가 수신료 인상 추진을 공식화한 뒤 공개적인 논의에는 처음 당사자가 얼굴을 드러내는 셈입니다. 선수가 링에 오르지 않은 상태에서 벌이던 탐색전은 끝났고 본격적인 논쟁은 이제부터 시작된다고 봐야지요. 이날 토론회에는 그래도 KBS에 우호적이거나 수신료 인상의 필요성을 어느 정도 인정하는 사람들이 발제자와 토론자로 참석하는데, 25일 공청회에서는 반대론자들도 가세해 더욱 뜨거운 공방이 벌어질 겁니다.

일단 이 논의를 거쳐 KBS도 대국민 약속의 항목이나 수위를 정할 것으로 보이고 KBS 이사회의 태도도 결정될 겁니다. 그 다음에는 대국민 약속을 놓고, 또 구체적인 여론조사 분석결과를 놓고 2라운드가 펼쳐지겠지요.

IPTV 도입 법안 급물살 타기는 했지만

’방송통신위원회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에 대한 국회의 논의과정이 답보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과 달리 IPTV 도입법안은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현재 정부가 제출한 방통위 설립법안은 공청회까지 거쳐 법안심사소위에 넘겨진 것에 비해 IPTV 도입법안은 의원입법 형태로 이제 막 발의가 되는 상태여서 늦기는 하지만 국회 방통특위 위원들의 태도로 보아 IPTV 도입법안이 추월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과기정위 소속의 홍창선 의원(열린우리당)과 서상기 의원(한나라당)은 각각 ’광대역통합정보통신망 등 이용 방송사업법안’과 ’디지털미디어서비스사업법안’을, 문광위 소속 손봉숙 의원(민주당)은 방송법 개정안을 내놓았습니다.

소속 상임위에 따라 손 의원은 방송위 주장에, 홍 의원과 서 의원은 정보통신부 주장에 가까워 보이는데 어차피 병합 심사할 것이어서 그동안 거론돼온 쟁점을 모두 논의한 뒤 문광위 차원의 수정 법률 제정안(개정안)을 만들어내겠지요.

IPTV 도입법안의 가장 큰 쟁점은 사업자분류(3분류:2분류), 사업면허(허가:등록), 사업권역(전국:지역분할), 시장지배적사업자 시장 진입(자회사 분리:직접 참여 허용) 등이고 망 중립성, 일간신문 및 뉴스통신사업자의 소유제한 여부, 보도 및 종합편성 채널에 대한 규제 등도 민감한 문제입니다. 여기에 시장에서 직접적으로 부딪칠 것으로 예상되는 케이블TV 등 유료매체 등과의 규제 형평성이 논란으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에, 만일 별도 입법으로 IPTV를 도입하기로 한다 하더라도 케이블TV 규제를 완화하는 등의 방송법 관련 조항 개정이 불가피해 보입니다.

따라서 시급성을 아무리 인정한다 하더라도 방송위와 정통부 통합에 따르는 문제 못지않게 복잡한 사안이 얽혀 있어 각 정당의 후보 경선과 대선 등의 일정을 감안하면 9월 입법을 거쳐 내년에 시행한다는 목표도 결코 만만치 않을 겁니다.

핵심 증인 빠져 무산된 문광위 FTA 청문회

제가 지난주에 예고한 대로 18일 국회 문광위는 방송ㆍ영화ㆍ저작권 부문 한미 FTA 협상 결과에 대해 청문회를 열었습니다. 그러나 증인 가운데 일부가 불참하거나 참석 시간이 제한돼 증인이나 참고인에게 질문하나 던지지 못한 채 다음으로 미루고 말았지요.

FTA 협상의 당사자였던 김명곤 전 문화관광부 장관은 홍콩 출장을 이유로 불참했고 조창현 방송위원장은 이날 싱가포르 출장을 떠날 예정이어서 낮 12시에 자리를 떠야 했습니다. 또 김종훈 외교통상부 한미 FTA 수석대표는 먼저 증인으로 채택한 보건복지위 청문회에 출석하고 있어 오후 4시나 돼야 참석할 수 있다고 했지요.

몇몇 의원들은 "핵심 증인이 빠진 상태에서 청문회가 의미가 없다"고 문제를 제기하며 다음에 다시 열 것을 주장했습니다. 조배숙 문광위원장과 정청래 열린우리당 간사가 "어렵게 시간을 내준 다른 증인이나 참고인을 봐서라도 일단 청문회를 연 뒤 필요하면 다음에 또 열기로 하자"고 협조를 부탁했지만 결국 정회한 뒤 여야 간사 협의를 거쳐 연기를 결정했습니다.

다음에 열기로 하기는 했지만 임시국회 회기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쉽게 다음 날짜를 잡을 수 있을지, 이제 민간인이 된 김명곤 전 장관이 얼마나 협조해줄지 불투명해 보이고, 정작 의원들이 얼마나 의지를 갖고 있는지도 의문입니다. FTA 협상과정의 문제점과 대책을 단단히 따지겠다고 벼르던 당초 의욕과 달리 이날 문광위 전체회의에는 소속 의원 절반이 채 참석하지 않아 의결정족수를 채우기 위해 의원을 찾고 기다리느라 적지 않은 시간을 보냈거든요.


이희용[연합뉴스 엔터테인먼트부장] http://blog.yonhapnews.co.kr/hoprave
heeyong@yna.co.kr  


 *  위 기사는 한국언론재단과 기사제휴로 제공됐습니다.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