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하기 좋은(?) 나라 회장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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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하기 좋은(?) 나라 회장님 이야기
  • 김기슭 SBS PD
  • 승인 2007.06.26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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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슭 SBS PD 

열두 살 된 아들놈이 있잖아요? 그 놈이 참 똘똘해요. 지지난번 구속되기 바로 직전에 주식이랑 집이랑 재산 왕창 넘겨줬거든, 아 근데 이놈이 이번에 1대주주가 된 거라. 아버님 재판도 끝났으니 계속 회장님 하시면서 경영에 매진해주세요 뭐 이런 속마음 아니겠어요?

사실 재판도 그래요, 따지고 보면 회사에 투입된 공적자금 그거 뭐 주인이 있는 돈도 아닌데 좀 빼 썼다고 난리들이야. 나 좋은 게 회사 좋은 거지. 덕분에 집도 성북동에 아담하니 새로 짓고, 애들 유학비 모자라서 좀 보탰어요. 이놈의 나라는 집값 교육비 때문에 허리가 휘어져요

그냥. 게다가 시비 거는 놈 없이 하는 일마다 잘 되라고 절에 시주 좀 하고, 조카나 손주들 매달 용돈 얼마씩 쥐어 줬어요. 식구가 많아서 합치니 2백 몇 억이지 한 사람당으로 치면 얼마 안 되지. 큰 회사서는 감독원이다 뭐다 때문에 번거로우니까, 그냥 이름뿐인 트럭회사 하나 대충 만들어서 거기서 빼 썼어요.

아니 그거 잘못이다 뭐라 그러는데 오로지 ‘회사를 잘 운영하기 위해 부득이하게’ 저지른 거예요. 결과적으로 ‘국가경제에도 나름대로 기여’ 했잖아요. 건설회사하면서 ‘서민들 위해 집도 많이 짓고’, 무역회사 하면서 ‘수출도 많이 해 외화도 많이 벌었’잖아요? 뭐, 현지 별장 사는 데 좀 쓰긴 했지만. 보세요, 딱히 ‘도박죄 강제추행죄로 벌금 선고 받은 거 말고 전과도 없’거든요. 어려서 ‘어려운 가정형편에도 불구하고 자수성가해서 굴지의 그룹으로 만든 거’ 이거 제대로 평가해 주셔야죠. 그러다 사업이 잘 안 풀려 내 ‘재산도 손실 많이 입어서 정신적 충격 받고 당뇨도 도지고’ 그랬어요. 뭐 이런저런 사정 자상한 아빠 같이 잘 이해해 주실 거라 믿습니다. ‘다른 기업인들하고 형평성’도 있고, 그렇죠?

뭐 특정경제가중 어쩌고 법에는 5년 이상 무기징역까지라는데, 아니 우리가 뭐 강간치상범이에요 특수강도에요? 그게 가당키나 해요? 이게 다 근거 없는 반기업정서때문이에요. 그러니 국가경제를 걱정하셔서 기술껏 잘 깎아 집행유예 정도 주시면 할 일 잘 하신 거예요. 대충 어렵게 쓰면 일반인들 판결문 이해도 못하잖아요. 집행유예 정도야 뭐 기업하다보면 다는 훈장이라 생각하죠 뭐. 그래도 행여 이번엔 여론 눈치 좀 보여 안 된다 그러시면, 섭섭하긴 하지만 조금 기다릴 테니 이번엔 사면 좀 일찍 때려줘요. 경제가 위기다, 경제 살려야 된다 그렇게 겁 좀 주면 웬만큼 먹히는 거 아시잖아요.

어휴 그나저나 그나마 미국서 안 태어나서 다행이지, 미국 법원 애들은 인간미가 너무 없어요. 물어보니까 나 정도면 징역 최하 15년에 경영권은 다시 못 가져온대요 글쎄. 기업인을 이렇게 죽이자니 이거 빨갱이 속셈이지 뭐요. 오죽하면 여기 미국상공회의소 회장했다는 양반도 우리 법원이 ‘매우 인간적’이라고 말했겠어요. 캬! 외국인들도 감동 먹은 거지, 제대로 인간적인 건 맞거든.

아 참 분식회계 뭔지 아시죠? 회사매출은 신고만 그렇게 부풀려 하고 실제 매출은 얼마 안 되는 거 아시잖아요. 국세청에선 실질과세 원칙에 따라 많이 낸 세금 어서어서 돌려주세요. 저쪽 그룹은 저번에 수월찮게 돌려받았더구만요. 기대할게요. 알라뷰!  

* 이 글은 지난 9일 SBS에서 방송된 <그것이 알고싶다 : 누가 회장님의 죄를 가볍게 하는가>편에 나온 실제 기업범죄 판결문과 취재내용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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