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일본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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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일본 친구들
  • 김민웅 성공회대 교수
  • 승인 2007.06.27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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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웅 (성공회대 교수)

5.18과 6.10 민주화 운동이 이어지면서 최근, 국제 언론인 포럼을 비롯하여 여러 국제학술 대회에 참여할 기회를 가졌다. 토론의 진행을 맡거나 발제를 하면서 우리의 현실이 이젠 국제적인 차원에서 보다 풍성한 대화의 자리를 이토록 깊게 가질 만한 지점까지 왔구나 하는 것을 절감할 수 있었다. 

우리끼리의 이야기를 넘어 세계라는 공간에서 우리의 자리를 성찰하고, 다른 나라 지식인들의 생각을 듣고 비판적 논의를 해본다는 것은 우리의 지평을 넓히는 것은 물론이요, 그 과정에서 우호적인 연대를 꾀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무척 의미 있는 자리들이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과정과 경험을 통해서 한 가지 특별하게 주목하게 되었던 것은 일본 지식인들이었다.  미국에서 20여 년간 살아오면서 비판적이고 뛰어난 지식인들과의 교류를 통해 배웠던 바가 적지 않았지만, 우리의 현실, 동북아시아의 미래와 관련해서는 아무래도 이들의 입장이나 지식, 견해에 한계가 있기 마련이었다.  자신들이 살아가고 있는 현장과 생생한 마주침이 아무래도 약하기 때문에 생긴 결과일 것이다. 이에 반해 일본 지식인의 경우, 동북아라는 현장은 곧 일본 자신의 문제이고, 이웃나라와 일본의 장래에 관건이 되는 사안이라는 점에서 그 견해의 깊이나 대응의 강도가 사뭇 비교된다.

우리가 흔히 접하게 되는 일본 우익들의 제국주의적 발상과 태도의 유산이야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바인 반면에, 일본의 진보적 지식인들이 어떤 자세로 동북아시아의 역사를 대하고 있으며 얼마만큼의 노력을 하고 있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일본의 진보적 지식인 잡지 “세까이(世界)”의 역대 편집장이야 워낙 유명하나 아사히신문을 비롯해서 각 지방대학의 교수, 문화인등이 일본의 역사를 냉철하게 보면서 한국 시민사회의 열망과 뜻을 같이하는 모습은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게 한다.

미국, 중국, 러시아 같은 이른바 대국의 나름대로 진보적인 지식인들이나 언론인들이라고 하는 이들이 우리의 입장에 이해를 표시하는 듯하면서도 결국 매우 중요한 대목에 가서는 대국주의적 자세를 취하는 것을 적지 않게 보아왔던 것과는 달리, 이들 일본의 진보적 지식인과 언론인들의 태도는 깊이 눈여겨 볼 만 하다.  속과 겉이 달라 그 진심을 짚기 어렵다고 하는 일본인들이라는 선입관을 넘어서, 그 진지함이나 겸손한 자세, 그리고 역사지식의 풍부함은 이들을 다시 보게 만든다.

전후 60년의 현실에서 과거의 역사적 죄과를 극복하고 동북아시아에서 일본이 평화의 나라로 역할을 하기 위해 이들이 고민하고 있는 바는 결코 가볍게 볼 바가 아니다.  일본에서 태평양 전쟁과 관련한 책자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상황과, 이 전쟁에 의해 직접 피해를 겪은 우리의 현실을 비교하면 머리를 들 수 없을 정도이다.  우리의 언론과 방송매체는 이러한 현실에 대해 이 사회의 각성을 촉구하는 바도 없다. 

칠십이 되고 팔십이 되어도, 여전히 현장의 최일선에서 평화를 역설하고 언론의 진로를 새롭게 모색하고 여론의 변화를 위해서 진력하고 있는 이들 노익장들의 일본 지식인들은 그런 점에서 우리에게 매우 귀중한 친구들이다. 친구들에 대한 대접이 소홀한 사람치고 괜찮은 사람은 없다. 한국과 일본, 그 가깝고도 먼 거리에 있는 시민사회가 서로 우의를 다지고 새로운 역사를 함께 써나갈 수 있는 가능성은 닫혀 있지 않다. 동북아시아의 미래를 위해, 언론과 방송이 할 수 있는, 그리고 해야 할 일은 여전히 무궁무진하다는 즐거움과 흥분이 사라지고 있지 않는 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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