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인기없는 채널은 BBC
상태바
가장 인기없는 채널은 BBC
  • 영국=채석진 통신원
  • 승인 2007.06.27 16: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영 오프컴, 소수인종 미디어 사용 특별보고서

누군가 나에게 영국유학을 통해 배운 가장 값진 것이 뭐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인종(Ethnic) 문제에 대해 예민하게 사고하게 된 것을 꼽을 것이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내 전공이 인종, 성, 계급 차별의 문제를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분야임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오기 전까지 인종문제는 ‘나(=한국사회)’하고는 다소 거리가 먼 ‘딴 나라 이야기’였다. 하지만 영국에서 소수인종으로서의 어려움을 몸으로 겪고 나서야 한국사회 내의 인종문제가 현실 문제로 다가왔다.

21일 발표한 영국 내 소수인종의 미디어 사용에 관한 오프컴 특별 보고서는 ‘자기반성모드’에 있는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미디어 규제기구인 오프컴은 지난해 9000여 명(800여 명의 소수인종을 포함)을 대상으로 커뮤니케이션 서비스가 다양한 인종들에게 적절히 제공되고 있는지를 조사했다. 이 보고서는 그 결과를 발표한 것으로 소수인종집단들이 TV를 비롯해 휴대폰과 인터넷 등의 미디어를 일반인과 어떻게 다르게 사용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영국 전체 인구의 9.2%(2006년 기준)를 차지하는 소수인종집단은 평균적으로 일반인보다 TV 수상기를 적게 가지고 있지만 위성·케이블 TV 수상기를 소유하고 있는 비율은 높았다.

또한 일반인들에 비해 적은 시간 TV를 시청하고 있고 지상파 TV 채널보다 비지상파 TV 채널(다채널 가구의 경우 63.5%)을 더 선호했다. 프로그램 장르별로는 어린이 프로그램을 가장 많이 시청하였는데 이는 소수인종집단이 일반인들보다 아이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아서, 이들의 TV 시청이 아이들에 의해 좌우되는 경향이 크기 때문으로 보인다.

특히 BBC는 소수인종집단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 없는 채널이었는데, 이를 두고 가디언은 “오랜 동안 BBC는 소수인종집단들에게 죽은 채널”이었다며 BBC가 그동안 소수인종집단의 이야기를 담아내려고 노력해왔지만 여전히 가야할 길이 멀다고 지적했다.

반면 소수인종집단은 일반인에 비해 적은 수의 TV 수상기를 가지고 있지만 휴대폰이나 인터넷과 같은 통신 기술을 수용하는 데 적극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일반인에 비해 적은 수입으로 생계를 유지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휴대폰과 인터넷을 더 많이 이용하고 있었다.

영국에 거주하고 있는 소수인종집단의 미디어 사용은 한국에서 인터뷰했던 외국인노동자들의 미디어 이용 형태와 대단히 흡사하다. 내가 만났던 외국인 노동자들 역시 언어장벽으로 인해 지상파 TV를 시청하기보다는 위성방송을 통해 자국의 방송을 시청하거나 같은 인종의 사람들과 소통하고 자신들의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인터넷과 휴대전화를 많이 활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현재 외국인 노동자를 포함한 소수인종집단들이 어떠한 미디어를 어떠한 환경에서 무슨 목적으로 사용하는지 등에 관한 기초적인 연구는 거의 전무한 상태이다. 이는 ‘국제결혼 14% (농어촌 지역은 35.6%, 2006년 기준)’, ‘외국인 노동자 35만 여명’이라는 통계수치가 보여주는 실제적인 한국 사회 구성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한국 방송 문화가 여전히 강력한 ‘단일민족’ 신화의 영향력 아래 있는 것을 잘 보여준다.

프로그램 콘텐츠를 생산하는 제작현장에서만이 아니라 이를 규제하고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영역에서조차 한국 내 다양한 소수인종들에 대한 고려가 거의 없는 것이다. 다른 나라의 인종주의에 대해서 비판하기 전에, 한국 방송 문화는 어떠한 지에 대해 돌아봐야 할 때다. 그 시작으로 한국 내 소수인종들의 미디어 이용에 대한 기본적인 조사를 실시하는 것도 좋은 출발일 것이다. 

참고자료 Communications Market Special Report: Ethnic minority groups and communications services

영국 = 채석진 통신원 / University of Sussex  ‘Media and Cultural Studies’ 박사과정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