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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준 높은 공익성 프로그램이 지상파에 가득할 때
미국 값싼 저질 프로그램에서 시청자 보호·문화다양성 확보 가능
 

박건식 PD(MBC 정책기획팀) 

박건식PD(MBC 정책기획팀)

요즘 시사,교양 프로그램 등 이른바 ‘공익성’ 프로그램들의 시청률이 말이 아니다. 여전히 잘나가는 프로그램들이 없지 않지만, 과거 농담조로 말했던 애국가 시청률에 육박하는 프로그램들이 적지 않게 나타나고 있다.

격심한 경쟁속에서 이들 프로그램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를 가릴 것도 없이 편성의 사각지대로 속속 내몰리고 있다. 최근에는 지상파에 광고 위기까지 겹치면서 직격탄을 맞고 있는 이들 공영 프로그램들은 생존까지 걱정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이러한 위기는 예정된 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한국 언론의 과녁은 바로 권력이었다. 87년 이후 한국 방송은 권력 비판과 감시면에서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
그러나 형식적인 민주주의나마 실현된 지금 이른바 ‘공익성’의 임무를 다해온 프로그램들은 위기를 맞고 있다. 권력을 비판하고 감시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이 있었지만, 재원 문제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본의 시대가 도래하자 언론은 당황하고 있다. 정치권력보다 훨씬 거대한 힘을 만난 것이다. 방송에서 자본의 힘을 보여주는 상징은 광고다. 현재 방송은 광고의 힘 앞에서 속속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사실 시사 고발프로그램의 경우 근본적으로 광고와  맞지 않는 측면이 있다. 고발대상이 되는 기업이나 광고주 입장에서는 이러한 프로그램이 달갑지 않다. 이러한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광고주의 압력이나 광고 외면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이미 한국에서 이들 공영프로그램에 대한 광고 외면은 놀랄 정도다. 이 상태로 조금 더 나아가면 앞으로 방송에서 이른바 ‘공영’ 프로그램이 사라지는 시대가 올 지도 모른다. 바로 시장 경쟁에 내 맡겨진 일본 민방과 미국의 상업방송이 한국 방송의 미래 모습일지도 모른다.

반면, 이들 공영 프로그램은 시장에서는 선호하지 않지만, 국민의 알권리 차원에서는 꼭 필요한 영역이다. 여기에 딜레마가 존재한다. 광고주로부터 외면받는 이들 프로그램의 생존 방법은 없는 것인가?

필자는 영국의 ‘공공 서비스 방송(Public Service Broadcasting)’ 개념을 조심스럽게 제안하고자 한다. 수신료처럼 방송사별로 지원하는 ‘공영방송’개념과 달리 ‘공공 서비스 방송’ 개념은 방송사와 관계없이 프로그램에 대해 지원하는 시스템이다.

즉 예를 들어, ‘환경스페셜’ ‘TV 책을 말하다’ ‘문화지대’ ‘HDTV 문학관’(이상 KBS), ‘PD수첩’ ‘느낌표’ ‘베스트극장’ ‘W’(이상 MBC) ‘그것이 알고 싶다’ ‘SBS스페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 ‘이적의 음악공간’(이상 SBS)등의 프로그램에 ‘공공 서비스 방송 기금’을 지원하는 것이다.
어떤 프로그램이 지원대상이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방송위원회 등에서 평가위원회 등을 구성해서 평가를 거친 뒤 지원 대상과 지원 규모를 정하면 될 것이다.

이른바 이들 프로그램에 지원할 ‘공공 서비스 방송 기금’은 수신료와는 별도로 방송발전기금(2천억원), 정보통신진흥기금(1조4천억원) 등에서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현재 방송발전기금에서 콘텐츠 진흥 명목으로 지원하고 있는 자금은 전체 예산의 10%도 안되는 미미한 액수에 불과하다. 그것도 상대적으로 열악한 독립제작사와 방송채널사용사업자, 지역방송사업자 위주로 지원되고 있는 실정이다.

방송발전기금 등 기금은 산업을 발전시키는 목적보다는 시장에서 경쟁을 통하여 제공될 수 없는 서비스나 공익을 위하여 사용되어야 한다. 그래야 ‘방송의 공적 책임을 높임으로써 시청자의 권익보호’에 이바지 한다는 방송법 1조의 취지에 맞는다.특히 최근 정부는 한미FTA로 인한 미디어계 위기를 극복한다며 지원대책 마련에 부산을 떨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방안은 ‘산업 피해’ 수준을 넘지 못하며 주로 외주사 지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한미FTA로 인한 진짜 위기는 바로 문화 다양성, 공영성의 위기다. 수준 높은 공익성 프로그램이 지상파에 가득할 때만이, 바로 미국의 값싼 저질 프로그램으로부터 우리 시청자를 보호하고 문화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한미FTA와 광고제도의 변화로 공영 프로그램의 생존이 위기를 맞고 있는 지금 우리가  ‘공공 서비스 방송 기금’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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