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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프로그램을 듣고 감격하여 라디오 PD가 되기로 결심한 건 아니다. 난 라디오 PD가 된다고 이런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지금도 이 방송의 애청자다? 그렇지 않다. 이제 말소린 하나도 없고 아는 노래는 반의반도 안 되는 이런 프로그램에 내 귀는 쉬이 지쳐버린다.

그러나 그래도 이 프로그램은 여전히 내게 절대적이다. 하염없이 고단하던 고교 시절, 새벽이면 다락방에 상을 펴고 앉아 조그만 휴대용 라디오에 리시버를 꽂고 한 시간 동안 이 방송을 들으며 하루를 정리했었다. 눈은 멍하니 허공에 멈춰있고 손가락은 움직이지 않고 있었을 터이지만 그 때, 내 영혼은 때론 우주 속으로 솟구치고 때론 허파 깊숙이 자맥질해가며 비로소 숨을 쉴 수 있었으니, 그 3년간 이 프로그램에 빚진 걸 내 평생 갚으려야 갚을 길이 없다.

나는 그 때 음악을 알았고 언어를 생각했고 기형도와 이성복을 만날 수 있었으며 흐느적거리는 하루하루를 단단히 부여잡을 수 있는 에너지를 얻을 수 있었다. 나는 지금도 술에 취해 택시 뒷자리에 널브러져 있다가도 문득 전영혁 DJ의 자칫 부서질 것 같은 음성이 들려올 때면 사뭇 갑자기 숙연해져서 맑은 정신으로 돌아와 버리곤 한다. 그것은 한때 내 영혼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어떤 소리에 대한 경외감이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 두고 와 버린, 회피해 버린 그 무엇인가가 보내오는 준열한 경고음이 두려워서일 것이다.”

한재희 MBC 라디오편성기획팀 PD 

25시의 데이트란?
1986년 4월 29일 첫 방송을 시작한 〈25시의 데이트〉는 현재 〈전영혁의 음악세계〉란 제목으로 KBS 2FM을 통해 새벽 2시에 방송되고 있다. 음악에 대한 깊이 있고 풍부한 이해로 청취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지난해 PD연합회가 주최한 한국방송프로듀서상 시상식 라디오 음악·오락 부문에서 수상하기도 했다. DJ 전영혁 씨는 20년이 넘도록 이 프로그램을 진행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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