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TV 퀴즈쇼의 새 전략 “멍청함으로 승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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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TV 퀴즈쇼의 새 전략 “멍청함으로 승부하라”
  • 샌프란시스코=이헌율 통신원
  • 승인 2007.07.12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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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에서 퀴즈 프로그램들이 인기를 얻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미국 텔레비전에서 퀴즈 프로그램은 언제나 편성표의 한자리를 차지하는 단골 메뉴이다. 라디오 프로그램의 포맷을 그대로 따라서 시작한 초반의 텔레비전 퀴즈 프로그램은 50년대 후반의 퀴즈쇼 스캔들로 한 때 위협을 받기도 했지만 그 후 60년대부터 지금도 장수하고 있는 〈제퍼디 (Jeopardy)〉 나 〈휠 오브 포춘 (Wheel of fortune)〉같은 프로그램을 낳았다.

▲ 1960년대부터 지금도 장수하고 있는 퀴즈쇼 ‘제퍼디 (Jeopardy)’의 한 장면.

40여년간 매일 방송되는 이 프로그램들은 전국을 순회하기도 하고 참가자들을 특별한 그룹에서 뽑아 재미를 주기도 하지만 일반인이 참가해서 자신들의 지식을 겨루는 기본 형식은 변함이 없다.
세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이런 퀴즈 프로그램이 꾸준히 시청자들의 시선을 끌 수 있는 이유는 시청자들이 참가자와 자신을 동일화하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이 그 참가자보다는 더 잘 안다는 우월감을 주기도 한다는 이중의 심리적 만족에 있다.

그래서 제작사들은 어떻게 하면 더 어려운 문제를 내는가에 그 성패를 걸곤 했고 일반 참가자들은 잡학사전과 같은 것들을 보면서 아주 세세한 것까지 기억을 하려고 했다. 미국의 슈퍼마켓에 가면 매대 바로 옆에 퀴즈 책들이 종종 보이는 것도 이런 것에 기인한다.

하지만 이런 전통적인 지식겨루기식의 퀴즈쇼가 미국에서는 최근 몇 년간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다. 이런 변화는 보통 1999년에 시작된 〈백만장자 (Who want to be a millionaire)〉 라는 프로그램과 함께 시작됐다고 보는데 그 가장 큰 특징은 기본 퀴즈 포맷에 여러 가지 쇼적 요소를 넣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보통의 퀴즈쇼에서는 시간제한이 있었지만 위의 백만장자쇼에서는 참가자가 무한대의 시간을 가지고 혼잣말도 하고, 쇼 진행자와 대화도 나누는 등 쇼를 더 개인화했다. 이 쇼의 인기는 미국 퀴즈쇼의 판도를 바꾸면서 어려운 문제나 시간제한등의 전통적인 형식보다는 보는 사람의 재미를 다양하게 추구하는 방식으로 변해간다.

예를 들면, 올해 폭스(Fox)사에서 시작해 인기를 얻는  〈당신이 5학년짜리보다 더 잘 압니까? (Are you smarter than 5th grader?)〉 라는 퀴즈쇼는 어른들이 나와서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내용들을 가지고 답을 하는 정도로 문제를 쉽게 내고 있다. 게다가 어린이 탤런트들이 나와서 이들이 문제를 푸는 것을 도와주게 할 정도로 참여자들을 돕고 있다. 이런 경향들은 기존의 퀴즈 프로그램과 반대로 참가자들이 얼마나 똑똑한 가를 가리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무식한가를 보여줘서 시청자들을 즐기게 하는 것이다.

이런 종류의 프로그램으로는 〈1 대 100 (1 v. 100)〉 이라는  NBC프로그램이 있고 〈Deal or No Deal〉 이라는 프로그램에서는 아예 문제를 없애고 자신이 선택한 박스에 들어있는 돈의 액수를 놓고 도박을 한다. 아예 사람들의 지식이라는 것이 소용이 없는 것이다.이런 프로그램들의 가장 큰 특징은 프로그램 안에서 경쟁을 없애는 것이다. 언제나 참가자는 사전에 선택된 사람 하나가 나와서 자신이 성취한 정도에 맞는 돈을 가지고 간다. 빈손으로 돌아가는 사람이 없는 것이다.  결국 경쟁에서 나오는 박진감은 없는 대신에 한 개인의 퍼스널리티가 더 중요한 몫을 차지하게 된다.

두 번째 특징은 시청자의 만족은 예전의 프로그램처럼 텔레비전에 나오는 똑똑한 사람들과 지식을 경쟁하는 것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참가자들의 멍청함을 비웃는데서 나온다. 예를 들면 초등학교 교과서에나 나올 법한 ‘아르헨티나는 어느 대륙에 있나?’와 같은 문제를 내고 참가자가 고민을 하면서 횡설수설할 수 있게 많은 시간을 줌으로써 시청자들이 참가자를 비웃고 자신이 똑똑하다고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어쩌면 모두가 잘한다고 칭찬하는 미국식 교육과 상통하는 형식이다.

마지막 특징은 경쟁이나 어려움에서 오는 재미가 없는 반면에 퀴즈쇼를 더 개인화해서 참가자들은 언제나 특별한 개별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얼마 전에 한국 이민 1.5 세대가 〈Deal or No Deal〉에 나와서 가족의 이민사를 이야기하기도 하고 집안에서 최초로 대학을 간 흑인학생이 나와 학비를 벌기도 했다. 이런 의미에서는 이 쇼들은 퀴즈쇼와 토크쇼의 가운데에 있는 것이다.

이런 프로그램에 대한 미디어 비평가들의 반응은 한마디로 머리를 절래 절래 흔들면서 어떻게 이런 퀴즈쇼가 있냐고 하지만 이 프로그램의 제작자들은 다르게 접근한다. 제작자들은 문제의 질이 낮아졌다는 것을 인정을 하면서도 그것이 별수 없는 것이라고 항변을 한다. 그 이유는 일단 요즘의 교육이 워낙 다양해져서 모든 사람에게 물을 질문이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옛날에는 서양사 같은 것은 워낙에 기본이었지만 지금은 그것을 잘 모르고도 대학에 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게다가 어려운 문제에만 집착을 하는 것은 사회의 지식층만을 위한 것으로, 일반인들을 소외시키고 있다.게다가 주 시청자들인 젊은이들은 고리타분한 역사나 지리 문제보다는 탤런트나 대중문화에 관한 질문들을 더 좋아한다. 결국 시청률로 먹고 사는 미국의 상업방송으로서는 당연한 선택이라는 것이다.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서 조작을 해 대학교수가 일반인을 계속 이기게 해서 파문을 일으켰던50년대 말의 퀴즈쇼 스캔들이나 요즘의 퀴즈쇼 경향은 일맥상통한다. 시청률을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한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들의 문제는 전 사회적인 지식의 수준 저하에 있지 않을까한다. 아르헨티나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어른이 나와서 수만 달러의 돈을 가지고 가는 것을 보면서 시청자들은 아는 것보다는 얼마나 수다를 잘 떨고 잘 웃길 수 있는가를 더 주목한다. 그리고 그 재주를 가지고 어떻게 이 프로그램 오디션에 뽑힐 수 있을까를 더 걱정한다. 재주가 지식을 이기는 것이다.

 

샌프란시스코 = 이헌율 통신원 (샌프란시스코 주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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